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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지하다

타이카 와이티티, 러브앤썬더. 두번째.

이 아저씨는 아마도 천재일 것이다. 너무 잘해서, 월등이 뛰어나서 천재라기 보다는

세상을 보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과 현격하게 다른데 그 다름을 잘 다듬어서 보통 사람들이 잘 알아먹게 이야기를 해준다는 점이 천재적이다. 자신의 색깔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대중이 들어먹게 하거든. 좋아죽갔네 진짜... 

그래서 타이카 와이티티의 새 영화나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챙겨보고 쪽쪽 빨아먹는 겁니다. 좋거든요.

 

물론, '대중이 알아먹게 한다'에는 약간 일반화가 있긴 함. 여기서 대중은 어느 정도는 제 정신인 사람에 한해서거등;; 

조조래빗을 보고 나치가 나오는 영화를 코메디로 만들다니 나치를 미화한다!라고 반응(발작)하는 애들도 있었다. 난감합니다, 진짜. 물론 이렇게 아무데서나 발작하는 사람들 말고도 타이카 와이티티의 영화를 못 알아먹거나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들은 의외로 좀 있다. 왜냐하면, 

 

타이카 와이티티의 영화는 대부분, 뒷부분이 더 좋다 = 영화(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더 좋다. 결말도 좋음. 

타이카가 대본을 쓰는 방식이 엔딩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오프닝을 쓰고 그 사이사이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식이라는데 그래서 엔딩이 더 좋지 않나 싶다.

보통은 그랜드한 오프닝을 먼저 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나 대체로 오프닝에 힘을 잔뜩 주고 시작하고 끝은 개똥같이 끝나는데 반해, 이 인간 영화의 시작은 힘이 빠지다 못해 대체로 헛소리나 헛소동, 농담으로 점철되어 있다. 러브앤썬더의 앞쪽 절반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이는 농담으로 떡칠을 해놨는데 정신차려보면 그 헛소리와 헛소동 안에 주제가 있고 캐릭터의 빌드업이 있고, 복선이 있는 식이다. 그 덕분에 '병원에서 이러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고 말하는 제인에 '내가 널 사랑하잖아.'라고 말하는 토르가 이해가 가고 이 둘의 관계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이다. (참고로 러브앤썬더에서 농담이 대상이 아닌 게 두가지 있었는데, 제인의 암과 고르의 고통과 딸의 죽음이었다.) 

 

여튼 이런 이유로 앞 부분을 멍때리고 보면 뒷 부분이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가볍고 즐겁고 웃기지만 중요한 복선과 캐릭터 빌드업이 차곡차곡 진행되는데 이 앞부분에 집중을 못하면 중요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후반부를 즐길 수가 없다. 

 

(그리고 번역 말인데, shitty를 '마음이 아프다'같은 정제된 언어로 번역하면 우짜나요. (글고보니 애들이 보는 영화치고는 shit을 연발하긴 한다 ㅎㅎ) 사랑을 해서 기분이가 shit 같아도 그래도 사랑을 하겠다는 거 아임까. 사랑하는 여자가 죽을지도 몰라서, 혹은 내 눈 앞에서 죽어가서 기분이 shitty 하다는 건데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그런 상황과 현실을 외면하기 보다는 그냥 함께하면서 사랑하겠다고. )

 

어쨌든 이 영화의 엔딩도 마음에 든다. 엔딩부분이 이렇게 좋게=만족스럽게 빠지기는 쉽지 않으요.

물론 제인이 죽고 토르는 싸움에서 졌지만 그게 결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 영화의 결말은 토르는 고르를 죽이겠다고 설치기 보다는 담담하게 '네가 이겼으니 (세상의 모든 신을 죽이는 쓰잘데기 없는 복수 같은 건 하지 말고) 네가 사랑하는 딸을 살려내'라고 말하고 사랑하는 여자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겁니다. 딸은 살려냈지만 그 절절하게 사랑하는 딸과 함께 할 수 없게 된 고르는 딸에게 사과를 한다. 그리고 남겨진 두 사람이 사랑하고 모험을 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인 거라고. 러브앤썬더는 정말 사랑에 대한 영화였다ㅠㅠ 

 

메시지는 굉장히 단순하고 영화가 비교적 짧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최초 편집본이 4시간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크리스찬 베일이랑 나탈리 포트먼이 잘려나간 씬 이야기를 해주고 있거든. 정신없는 건 실제로 정신이 없으니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님다. 덧붙여 팬들이 아무리 지랄을 해도 내 생각엔 감독판이 나올 것 같진 않슴다. 왜냐면 일단 타이카가 ㅈㄴ 바쁘고 타이카 와이티티의 작업방식을 아는 사람은 이게 바로 감독판이라는 걸 알것이다. 이게 최종 감독판이여. 덧붙여 타이카 와이티티한테 강압적으로 뭘 하라는 둥 하지 말라는 둥 할 수 있는 스튜디오는 현재로선 없다고 볼 수 있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현재, 자기가 원하면 뭐든지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거등. (리저베이션 독스는 미국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고 아워플랙민스데스는 게이해적에 대한 이야기다. 왓위두인쉐도우은 아직도 하고 있고, 게이해적 시즌2도 나오기로 결정났다. 이 와중에 중간중간 배우 알바도 했다. 스타워즈도 감독한다고 한다는 둥 프로젝트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고=ㅠ= 하는 족족 평이 좋거나 흥행이 되거나 못해도 둘 중 하나는 되니 현재 헐리우드에서 제일 잘나가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음. 왜냐고?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으니까.)

 

여튼, 짧다고 느끼는 건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아쉬움의 발로로 보이기 때문이다. 캐릭터를 너무 잘 만들어서 캐릭터를 더 보고 싶게 만드는 거시다. 제인을 더 보고 싶게 만들고, 고르를 더 보고 싶게 만들고, 발키리를 더 보고 싶게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무언가 결여를 느끼게 된다. 토르, 제인, 고르 각각의 아픔에 공감을 더 하고 싶은데 자꾸 농담으로 넘어가는 거. 

"씨발, 애새끼들이나 보는 것처럼..." 덕후들 입이 댓발이 나왔음. (그리고 나는 그 부분이 좀 즐거움.)

 

짜증나게 '바보같은 농담이 너무 많다'는 말을 비평이랍시고 하고 자빠졌다 진짜.

토르, 제인, 고르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어. 제인이 그동안 2개의 토르 영화에서 나름 여주였고, 1개의 영화에서는 카메오로 나왔는데 크래딧까지 꽉꽉 채워서 두시간이 약간 안되는 영화에서 더 많은 캐릭터 성장과 매력을 보여준다고. 그걸 모두가 인정하고 아는 바임. 고르의 서사도 좋다. 러브앤썬더는 싫지만 고르는 타노스 다음으로 좋다는 마블팬도 의외로 많다. 출연시간이 아주 짧은 거에 비해 캐릭터가 굉장히 좋음. 물론 크리스찬 베일이 엄청 잘하기도 했지만 아주 많은 좋은 배우들이 MCU에서 조연이거나 빌런이었다. 모두가 이렇게 좋은 캐릭터를 얻진 못했음. 

염소, 웃기죠. 

 

영상과 색감 화려하고 음악 좋고, 전반적으로 눈과 귀가 굉장히 시끄러운데 그 와중에 또 캐릭터에 애착이 가고, 서사에 감정이입이 된다고. 최루성 영화가 아니고 그런 연출도 안했는데 왜 마음이 움직이는 건지 요 부분을 생각 좀 하라고. (앞에서 다 쌓아놔서 그렇다. 그래서 앞부분에 헛소리 농담 나온다고 대충 보면 영화 후반에 감정이입을 못한다. 그냥 뜬금포일 뿐.)

다 좋은데 유머가 망쳐놨다고 말하지 말고. (물론,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가 웃기다고 느낄 한국인/아시안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나는 하다못해 토르가 되도 않는 스피치를 해대며 그랜드한스피치를 농담으로 만드는 것도 좋았다. 나는 캡아 스피치를 진짜로 싫어하거등.)

 

누군가 로만 폴란스키의 초기작을 보고 '아름다운 망작(beutifully fucked up)'이라고 했는데 굳이 이 영화를 비평하고 싶다면 그런 식으로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나는 러브앤썬더가 망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와이티티 영화 최애리스트에 상단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물론 MCU 안에선 상단에 있음 ㅋㅋ 

 

다만, 이 영화가 아동영화 같긴 하다. 뭐랄까, '아빠에게 애를 맡기면 일어나는 일'같은 인터넷 밈처럼. 애가 같은 단어를 웃긴다고 계속 반복적으로 말하는 걸 아빠가 같이 하는 느낌이 있긴 있다. (그리고 이 지점을 덕후들이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덜이 애새끼일 적에 만화책을 보면서 느꼈던 희열을 현재의 아이들이 느끼게끔 만들어놓으니 늙어버린 덕후들은 재미가 없는 거죠.)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도 굉장히 직설적이고 단순화되어 있고 반복적이다. 어떤 부분에선 약간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 같은 느낌. 다만 사용하는 어휘가 비속어일 뿐 ㅋ 

그래서 러브앤썬더를 10살짜리 꼬꼬마가 보면 아주 재밌게 볼 것이라는 건 농담이 아니다. 토르의 힘을 받고 인형을 무기로 삼는 아이를 보면서 짜릿함이나 원초적인 즐거움을 못 느꼈다면 이 영화가 재미있을리가 없다. 러브 부분은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썬더부분이 대체로 다 꼬꼬마의 상상력과 농담으로 이뤄졌거등. 그러니 조카나 아들이나 딸을 데리고 한번 가보면... 가보면? 한글 자막이 ㅈㄴ 재미없는게 문제다. 북미 꼬꼬마들은 클라이맥스 전투씬에서 환장을 한다고 했음 ㅎㅎ 애들이 보기 쉽게 더빙이 있으면 좋을텐데. 러브앤썬더는 아이들이랑 봐야한다고ㅠㅠ!! 

 

 

이 영화는 나름대로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이 영화를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반응을 보니 그렇게 보인다. 

천오백년을 산 강철몸뚱이를 가진 토르가 항상 세익스피어 연극처럼 말하고 늘 진지하고 늘 멋지고 상남자고 만사를 심각하게 보길 원하는 사람은 이 영화가 재미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좋아할 거임. 실제로 괜찮은 영화고 나도 그 영화(의 액션씬을) 좋아함. 여튼 윈터솔져 같은 거 보면 됨. 아님 진짜 세익스피어 비극을 보등가. 토르는 천오백년을 살았고 강철몸뚱이를 갖고 있고 신이라고 추앙받지만 그 잘난 천둥의 힘으로 여친의 암을 고치진 못한다. 그래서 울먹이면서 '(네가 아프고 그래서 나도 기분이 ㅈ 같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므로 우리 같이 있자'고 말하는 그냥 신급으로 잘생긴 평범한 옵빠임. 

 

이 영화에 애새끼가 너무 많이 나오고 심지어 무슨 역할을 하고 지랄이고 게이를 자기 코 앞에 들이민다고 발작하는 인간은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가 없다. 토르와 마이티 토르가 빼박 이성애자고, 빌런도 이성애자로 보이는 영화인데 도합 20초 정도 발키리하고 코르그가 게이라는 걸 드러냈다고 들이미니 뭐니 씨바거리냐. (아직도 발키리에 흑인인 테사톰슨을 캐스팅했다고 징징대는 인간이 있다;;; 시간이 4년 전에 멈춰있는가봉가.) 

 

고르가 제인에게 '레이디토르'라고 하니까 제인이 '마이티 토르 아니면 제인 포스터라고 불러라 이색히야'하는데 그걸 갖고 페미니즘을 들이민다고 하는 인간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자는 백인 중년 남자임--;;) 나도 레이디가 어떤 뉘앙스를 갖고 있는지 감정적으로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아가씨 혹은 처녀가 어떤 뉘앙스인지 알지. 나라면 레이디토르를 아가씨토르 혹은 처녀토르라고 번역했을겨. 그러면 왜 제인이 그렇게 반응하는지, 여자라면 즉각적으로 (감정적으로) 알 수 있을 거거등. 그걸 남자가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남자들이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그런 단어가 어떤 뉘앙스로 사용되는지 그래서 어떻게 들리는지 설명하기도 어렵고 솔직히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음. 그냥 그 단어가 어떤 느낌인지 여자들은 알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장면은 너를 위한 장면이 아닌데 왜 만사에 코멘터리를 달고 싶어하냐고. 그냥 숀 코네리 액션영화를 보랑께? 

 

https://youtu.be/g9n_UPyVR5s

전형적인 타이카 와이티티식 진담과 농담

나는 타이카 와이티티를 계속 빨아먹을랑께. 이 사람이 이야기를 구축하는 방식이나 그걸 전달하는 방식이 항상 매우 대단히 흥미롭거든. 메시지도 좋아함. 겁나 성실하게 계속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다규. (30대 초반까지 가난했기 때문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말했다 ㅋㅋㅋ 말하는 걸 보면 언제든 영화를 못 만들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덧. 코르그 종족은 돌로 만들어져있다. 코르그 종족의 신은 가위로 만든 의자에 앉아있다. 코르그는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팜플렛을 충분히 인쇄하지 못해서 실패했다. 영화 두 편에 거쳐 가위바위보(락페이퍼시져스) 농담을 하는 집요함. 그냥 오타쿠 같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진짜로 어지간한 편집증이 아님.

아, 그리고 코르그 남친 이름이 드웨인인데 이게 안 웃기냐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