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는 진지하다

타이카 와이티티, 러브앤썬더

1. 내가 몇년간 홀딱 빠져있는 아조씨. 스타일이 좋고 소재도 좋고 영화장르에 따라 선택하는 제작, 판매방식도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것도 매우 마음에 든다. '세상이 ㅈ 같이 심각한데 영화까지 ㅈ 같이 심각할 필요가 없음. 우리에겐 스투피드한 망작이 필요해.'라고 말하고 실제로 구질구질하거나 심각한 주제를 실리하게 표현해내는 감독이다. 

 

국내외에서 타이카 와이티티가 너~무 좋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보이, 헌트포더윌더피플, 조조래빗 등 이 인간의 최고작은 안 보고 그런 말을 하면 도대체 라그나로크하고 팀토르만 보고 타이카를 좋아한단 말인가. 물론 이 영화도 엄청 좋고 잘 만들긴 했다. 라그나로크도 너무 웃겨서 싫다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러브앤썬더는 대략 끔찍할 듯 ㅎ (그러면서 왜 자꾸 타이카 와이티티는 좋다고 하는거지=ㅠ=?)

 

 

2. 그래서 나의 감상 (스포일러) 

나는 낄낄대며 재밌게 잘 봤음. 그리고 어느 장면에선 눈물이 좀 났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캐릭터에 인간의 하찮은 요소를 잘 넣는다. 내 생각엔 타이카 와이티티가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인 것 같다. 라그나로크에서 토르, 헐크, 로키는 그들의 결함과 관계적 특수성을 유머로 풀어내면서 이전 영화에서 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점프업을 했다. 그리고 새 캐릭터인 발키리, 그랜드마스터도 엄청났죠잉. 특히 그랜드마스터는 이디엇과 에솔의 적절한 조화...=ㅠ=ㅋ 

러브앤썬더에선 제인 캐릭터를 완전 뜯어고쳐놨다. 토르랑 연애하던 귀요미 제인, 전남친 앞에서 쿨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제인, 질병에 지기 싫은 제인 그러면서도 구질구질하게 병원에서 병든 모습으로 있기 싫은 제인, 마이티 토르를 잘 해내고 싶어서 헛발질하는 제인, 하지만 결국 잘해내는 제인. 제인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입니다ㅠㅠ 

 

물론 제인은 주인공이 아님. 결국 토르에선 토르가 주인공이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주인공이 누군지 항상 확실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 나오기 전에 주로 백인인 아저씨양덕들이 '나탈리 포트만은 근육을 키워봤자 쪼꼬미라고. 토르 역에 안 어울려'라거나 '이렇게 여자 토르를 만들어서 크리스 토르를 밀어내는 거지'하면서 징징댔는데 여혐러들이여, 걱정할 것이 없다. 토르의 주인공은 여전히 팔뚝이 나탈리 포트만의 머리통보다 큰 크리스 햄스워스다. 타이카 와이티티가 토르를 감독하는 이상 토르의 주인공은 오직 토르일 것이다. 

 

물론 타이카 와이티티가 온 이후로 토르를 계속 전투에선 이기고 전쟁에선 지고 있긴 하다. 이번엔 전투에선 지고 전쟁에선 이긴 케이스인가? 남자답게 이기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토르. (이 영화에선 엔간해선 죽지 않는 토르의 몸을 멋진 남성성으로 승화시키기 보다는 '웃기는 전투씬'을 만들기도 했다. 80~90년대 안토니오 반데라스, 실베스타 스텔론 스타일...;;) 

여튼 라그나로크 때도 헬라를 이겨 먹은 건 토르가 아니라 서터였고 그 댓가로 자기 고향을 날려먹음. 그리고 백성을 몽땅 다 피난민으로 만들고 심지어 그 중에 반은 또 못 지키는...;; 절대왕정이 아니라면 백번 실각하고도 남았겠죱. 프랑스였으면 단두대형이여. 이번에도 고르에게 진다. 스아실 타노스에게도 졌죱. 

 

심지어 토르가 점점 바보가 되는데 나는 왜 그게 좋은 거죠. 토르가 똑똑했던 적도 없지만... 토르는 대체로, 지구에 있을 땐 '뭍에 나온 생선'이고 우주를 돌아 다닐 때는 동네 바보형같다.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가까히 하고 싶지 않은 동네형=ㅠ= 근데 그 얼굴에 그 능력에 머리까지 좋을 필요가 있겠나. (심지어 토르는 영화가 거듭될 수록 무서울 정도로 몸뚱이가 커지고 있다. 삼각근, 이두박근, 삼두박근 그 라인보소. 타이카 와이티티 머리통 만함.) MCU에서 그루트 말을 하는 사람은 로켓하고 토르밖에 없다규. 소리지르는 염소를 닥치게 하는 것도 토르 정도임 ㅋㅋ 토르는 딱히 똑똑할 필요가 없고, 똑똑한 척을 할 필요도 없다. 

 

덧붙여 이 영화는 애들이 참으로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10살 전후의 시끄럽고 정신없는 애들. 토르 힘을 받고 '딱 하루'만 받고 그걸 즐길 수 있는 애들. 난 그런 애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10살에 봤다면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좋아한다규요. 왜냐면 그 나이에 이해 못했던 그런 행동을 오히려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거등. 여전히 관찰자지만. 

 

 

3. 음악. 

타이카 와이티티가 스타일이 좋다고 느끼는 건 특유의 영상 스타일도 있지만 음악도 크게 차지한다. 러브앤썬더에도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나는 개그보단 음악이 과했다 싶다. 

영화 전반에 80년대 히트곡으로 떡칠을 해놨다. 라그나로크도 그랬고 가디언즈도 그랬지. 근데 거의 모든 전투씬에선 기타리프가 강한(혹은 오버하는) 락뮤직을 깔고, 조금 치지한 장면에서는 아예 엔야의 노래를 깔아버리는 겁니다. 음악까지 개그 요소로 활용하다 보니 그 지점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요. 그니까, 음악이 쿨하고 스타일이 넘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왜냐면 타이카 와이티티가 집착하는 게 몇개 있다. 유머, 멋짐, 쿨, 스타일 뭐 이런 거. 하찮고 웃기는 소재를 멋지고 쿨하게 만드는 게 이 인간이 특히 더 잘하는 거라고. 알콜중독자지만 멋진 발키리, 남의 집 벽 사이에서 숨어살지만 쿨하고 집주인 아들을 협박할 줄 아는 엘사라든가. 구질구질하면서도 웃긴데 멋지고 스타일 있는 캐릭터를 잘 만들고 그걸 계속 하고 싶어하거든. 

 

그리고 그 스타일을 살려주는 게 음악이었다. 타이카 영화는 항상 음악이 좋았고 찰떡이었는데 이 영화는 이상하게 음악이 너무 과해. 따로 들으면 다 좋은 음악인데 특정한 음악과 특정한 연출이 만나니 스타일을 살리기 보다는 오직 농담으로만 표현되는 느낌이었다는 감상. 

 

 

4. 라그나로크나 러브앤썬더나 쓸데없이 너무 웃겨서 별로라는 리뷰가 많다. (한국에서는 반대일 것이다. 한국에선 이걸 웃기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오늘 볼 때도 대체로 나 혼자 웃었음 ㅠㅠ 내가 웃고 남이 안 웃던 장면을 보면 대체로 번역이 너무 정제된 장면이거나 내가 마블덕이라 웃겼던 장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데릴이 나왔는데 아무도 안 웃다뇨ㅠㅠ? ) 

 

팀 토르. 데릴 모큐멘터리가 무려 3편까지 나옴.

나는 웃겨서 별로다라는 게 이해가 잘 안 가는 편. 웃긴 건 좋은 거 아닌가. 억지로 웃기는 게 아닌 이상 뭐가 문제죠. 다만, '어떤(심각한)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 게 좀 싫다는 사람은 이해가 가긴 한다. 이를테면 친구에게 '네가 가면 나도 간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전투 중에 죽어야 발할라에 갈 수 있어. 지금 죽어봐야 넌 못 가."라고 말하는 거. 이런 식으로 대충 영화적으로 무시하고 지나가는 장면은 디테일하게 잡고, 정작 다른 영화에서 디테일하게 잡는 장면은 휙 넘겨버리는 거죠? 이런 연출 방식 자체가 웃기다고 느끼면 재밌는 거고, 아니면 쓸데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긴 하다. 코메디에서 이런 걸 더 많이 살리긴 하죠. 타이카 와이티티는 코메디가 전문이긴 하고요. (실제로 스탠드업 코메디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리지르는 염소가 나올 때마다 웃음이 나왔는데, 그 소리 자체가 어디서 들어봤다 했거든. 그냥 소리지르는 톤이나 표정도 웃기지만 뭔가가 익숙했다규. 그리고 찾아버림. 

 

너무 웃깁니다 ㅠㅠ

 

 

5. 그리고 다음으로 넘길 이야기.

타이카 와이티티가 잘 하는 또 한 가지가 슬픔과 개그를 적절하게 섞어서 균형이 잘 맞게 표현하는 것인데, 이건 다음 기회에... 오늘 아침부터 너무 많은 걸 했더니 피곤하다. 

 

아워플랙민즈데스도 보고 싶으다. 근데 도대체 구할 수가 없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