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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지하다

2021년을 맞이하며 느낀 상대적 박탈감

나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근데 돈이나 부모나 주변환경으로는 안 느끼고 그냥 나의 존재와 특징(혹은 개성 혹은 장단점 혹은 성격)을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피트 닥터인지 뭐시긴지 픽사에 소속된(?) 애니메이션 감독이 이번에 소울도 감독했다. 이 인간 이전 작품은 인사이드아웃이고 그 전엔 업을 만들었다. 그 유명한 도입부분이 이 작자 작품이다. 세 작품이 연달이 이렇게 좋다니 미친거 아니냐고. 내 기준에선 ㅈㄴ 나쁜 새끼다. 왜냐면 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니까. (내가 나의 창의력을 위해 개뿔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건 생각하지 않고) 질투에 눈이 멀 것 같으다. 근데 작품이 너무 좋아서 인사이드아웃은 일년에 한번씩은 보면서 질질 짠다. 업도 앞부분만 가끔 찾아보는데 볼때마다 미친거 아냐. 미친거 아니냐고. 이러고 자빠졌음. 소울도 좋다. 이 사람이 가진 소재를 발굴하고 이야기를 구축하는 방식, 굉장히 흔하고 뻔한 메시지에 감성과 감정을 묻혀서 가공하는 방법이 정말 좋다=ㅍ= 너무 좋아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음. 

 

아는 등단 작가 중 한 명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보다는 출판사에서 해달라는 작품을 몇편 쓰며 몇년을 지냈다. (울 나라 출판사는 문학작가에게 딱히 내용(이나 주제, 컨셉)을 추천하진 않는다. 다만 청소년 소설을 써주시겠어용. 이런 식으로 의뢰가 왔고 그게 잘 되서 계속 그것만 쓰게 됐음.)

이 친구랑 대박이란 무엇인가 하며 이야기를 하는 일이 가끔 있다. 내 생각엔 결국 그랜드한게 팔리는 것 같그등. 실제 말하고자 하는 거랑 상관없이 표현이나 배경이 그랜드하면 잘 팔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걸 깍아내리는 건 아니다. 연출이 그 갭을 메워야 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그런 쪽으로 재능이 있어야 하고 연습도 해야한다. 

 

나도 쓸데없이 그랜드한 걸 보고 듣고 즐긴다. 그러나 나도 그 작가도 그랜드함과는 거리가 있는 인간들이라 맨날 대화가 그 자리에서 빙빙 돌고, 결정적으로 작가는 감정을 다루는 걸 쓰고 싶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트 닥터를 나보다 더 좋아한다. 이런 걸 하고 싶어하니까. 문제는 감정을 다루는 일이 그랜드함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렵다는 거다. 모두가 알고 있는 걸 잘 다루는 건 더 어렵다. 서예로 비교하면, 정자체인 해서체를 잘 쓰는 게 제일 어려운 것과 같다.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제일 많이 보는 서체라 서예를 잘 몰라도 못쓴 해서체는 귀신같이 알아볼 수 있거등. 

 

그리고.

이렇게 재밌는 걸 놓쳤을 정도로 나는 2020년을 그냥 날려버렸다. 

 

 

 

 

아... 너튜버도 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구랴.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 도피로 치는 건지, 우울증을 관리하기 위해 치는 건지 정확하지 않지만 여하튼 거의 매일 치고 있다. 그렇게 5년이 지나면서 실력은 원하는 만큼 늘지 않는데 비해 연습과 노오력은 계속 해야하는 게 재미가 없어서 작년엔 레슨도 안 받고 연습도 많이 안 했다. 쳐도 집중이 잘 안 됐다. 근데 이게 또 묘하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킴. 그래서 오랜만에 투셋바이올린을 몰아보며 모티베이션을 충전하고 있다. 하루에 40시간을 연습하는 그 노력과 재능과 열정의 그랜드함을 개그와 사소함으로 깔아뭉개는 가벼움이 좋으다. 그리고 어제 피아노 연습은 확실히 잘 됐다

 

이제 피아노를 겨우 좀 연습하게 됐으니 다른 것도 하나씩 다시 원상복귀 시켜야 한다. 다 집에서 혼자 하는 거라 팬데믹을 이용해서 더 많이 했어야 했는데 도리어 전혀 안했다. 그리고 실행하기는 귀찮고 2021년에는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일 없이 그랜드한 플랜을 무지막지하게 세워놨다. ㅋㅋㅋ 지난 13일 동안 투셋바이올린을 보며 피아노 연습만 겨우 본 궤도에 올려놓은 걸 봤을 때, 연말에 또 그랜드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지만 노오력은 하겠습니다. (이 쪼다새끼...)

 

그리고 에단 호크가 말하는 창작. 

 

 

그랜드 하지 않고 작고 소소하지만 좋은 연기와 연출과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에단 호크. 물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영화도 있다. 그렇게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