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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지하다

눈알 배우

눈빛이 좋다는 배우들이 있다.

 

보통은 눈이 촉촉하거나 뭐 그런 류를 이야기하더라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눈알이 원래 촉촉한 케이스가 아니라 눈으로 감정표현을 하는 배우인데 이런 배우 많지 않고 무엇보다 이걸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 사람들이 이걸 모른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 눈에 촛점 없는 배우가 있는데 사람이 눈에 촛점이 없는 상태로 연기도 하고 예능에도 나오고 광고에도 나오는데 모르더라고 ㄷㄷ

 

내가 촛점없는 3대장이라고 부르는 배우 셋은, 이상하게도 모두 남자배우에 비슷한 나이대이고 3대장 모두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왔다. 그리고 세 명은 각각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바보(?) 역할을 했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이 그 기이한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 아는 줄 알았다. 근데 내가 말하기 전까진 모르더만. 카메라를 보는 것도 아니고 상대배우를 보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디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약간 동공이 열려있는 느낌. 멍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약 먹은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그냥 촛점이 없다고 한다.

 

물론, 촛점이 없다고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니다. 알 파치노는 여인의 향기에서 내내 촛점없이 연기를 한다. 촛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눈동자를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혹은 그걸로) 오스카 받았지. 물론 알 파치노의 눈알연기를 못 본 팬들은 여인의 향기의 연기보다 다른 작품에서의 연기가 훨 낫다고 하지만 나는 별 생각없다. 내가 무슨 알 파치노 연기의 우열을 가리겠어 ㅋㅋ

 

어쨌든, 눈알 배우. 한동안 한국드라마와 영화를 보지 않아서 한국배우는 기억이 안 나므로 일단 기억 나는 외국배우만 이야기 하겠다.

올리비아 콜먼, 톰 홀랜드, 마우라 티어니, 알 파치노. 당연히 네 명 모두 굉장히 좋아한다. 이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거 자체가 즐겁다. 알 파치노는 하도 어렸을 때부터 봐서 정확히 언제 눈알 연기를 발견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머지 세 명은 처음 눈알 연기를 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톰 홀랜드는 더 임파서블에서, 고아가 모여있는 텐트에서 엄마가 죽었다고 직감하면서도 그걸 부정하면서 애가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데 그걸 눈알로 보여주더라고. 톰 홀랜드가 여기서 겁나 어렸는데 그걸 하다니. 첨 봤을 때 엥?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를 다시 찾았을 때도 기쁨과 약간의 원망을 보여준다거나 엄마가 다리 수술하러 들어갈 때, 삶을 포기한 것 같은 엄마를 보는 괴로움+걱정+그러면서도 잘 될 거라는 표정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자식의 표정을 보여주는데 감동적이었다. 연기가. 애새끼의 연기가 느무 감동적이었다. 더 임파서블 영화 자체는 그냥 그런데 가끔 톰 홀랜드 연기를 보려고 이 영화를 꺼내본다.

 

 

마우라 티어니는, 이알에서 발견했다. 이알을 마지막까지 본 이유도 마우라 티어니 때문이었다. 이 언니는 눈알에 사연이 담겨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그냥 타고나길 눈빛이 좋다고도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눈알도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흔히 눈빛이 흔들린다고 하잖아? 이 언니는 눈알을 흔들어서 눈빛이 흔들리는 걸 표현한다. 멀쩡하게 잘 사는 것 같으면서도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느무 표현을 잘 했다. 인썸니아에서 알 파치노와 대화하는 씬을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눈알 배우 둘이 눈알 연기를 하고 있엉 ♡

 

 

인썸니아 (2002) 

 

피로와 죄책감과 용서 혹은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 홀가분해지고 싶은 욕망+수면욕 등이 믹스 된 눈알 연기를 펼치고 계신 옵빠와 이 할배가 잠을 못자서 정신이 나갔나 하다 곧 '웁스 유명한 형사님이 나에게 중요한 사실을 털어놓네' 하는 순간적인 당혹스러움+형사 이야기에 느끼는 순수한 흥미+겉으로는 형사의 이야기를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속으로는 평가하면서 잠시 자기 과거를 회상하는 언니. 한 명만 이래도 환장하는데 두 명이 공격을 해대니 덕심이 폭발한다. 그리고 이 인간들 힘 하나도 안 들이고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물론 둘 다 무지막지한 노력파임.)

 

 

올리비아 콜먼은 요즘 승승장구 하는 중이다. 영화,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매번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음. 처음 본 건 브로드쳐치. 이 드라마에도 연기를 엄청 잘하는 배우가 많이 나온다. 드라마 자체도 잘 만들어졌고 내용도 좋았는데 눈알 배우까지 발견. 시즌1 마지막회던가 범인의 정체를 알고 콜먼 캐릭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분노, 절망, 상대에 대한 혐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막 뒤섞인 눈알 연기를 한다. 보면서 나도 '헉, 허억' 했는데 범인의 정체 때문이 아니라 이 언니 연기 때문이었다능. 데이비드 테넌트 나왔대서 보기 시작했다가 올리비아 콜먼한테 반해서 나온 드라마. 안소니 홉킨스 함께 촬영한 더 파더라는 영화가 곧 나오는데, 이거 볼 듯.

 

눈알 연기는 별거 아닌 장면에도 캐릭터에 깊이(캐릭터의 과거)를 부여한다. 물론 누구나 나름의 눈알 연기를 하겠지만 보는 사람이 저 사람의 눈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알아먹기는 쉽지 않거등. 일단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눈알만 보고 있기가 쉽지 않으니 감독이 이 사람 눈알 봐라~ 이러면서 보여줘야 한다. 물론 보는 사람도 그걸 잡아채야 하는데 어지간히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는 이상 즉각적으로 알아먹기가 쉽지 않다. (그니까 애초에 깊이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고, 그런 캐릭터라는 걸 이해를 한 배우가 그에 걸 맞게 연기를 해야하고, 그 연기를 감독이 잡아서 보여줘야 하고, 그걸 보는 사람이 읽어내야 한다. 결국 연기 잘하는 배우만 있으면 장땡인 게 아니다.)

 

 

인간은 평생 남의 눈을 보고 살기에, 눈빛을 읽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입말을 사용하면서도 음악이라는 언어를 따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눈으로 하는 말도 알아 듣긴 하지. 특히 부부나 부모자식간에 하는 대화가 있잖슴. 밖에서 큰 소리 낼 수 없을 때 눈알로 '집에 들어가서 보자'라고 말하는 건 다 알아먹잖아.

 

다만 언어라는 건 일종의 코드이기 때문에 정해진 코드로 확실하게 표현을 해야한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인 사람끼리만 눈알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코드를 알고 있으니까. 음악도 코드로 이뤄져 있다. 음악이론은 몰라도 대부분의 인간이 음악을 듣고 평생을 살아가니 음악언어(코드)를 해석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까 음악을 듣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하는 거 아니겠음둥. 그래서 눈알 연기도 코드로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배우라도 감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보는 사람은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상대방이 알아들을 코드로 말을 해야한다. 더 쉽게 말하면 떠먹여줘야 한다. 그 떠먹여 주는 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야하는 거임.

 

그러니 배우는 대중이 어떤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걸 코드화해서 인지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한 다음에 그 코드대로 표현을 해야한다. 눈알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자기 감정이 풍부해서 눈알로 레이져를 쏠 수 있는 배우가 아니다. 그런 배우는 대중이 감정을 어떤 식으로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에 가깝다. 그리고 그걸 눈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터득한 사람이다. 결국 표현은 테크닉의 영역이라 뭘 어떻게 배우고 익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테크닉이 훈늉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톰 홀랜드가 신기. 애새끼가 이런 걸 어떻게 아냐고. 알 파치노가 삼십대 초반에 대부를 찍었는데 그것도 엄청 어린(!) 거였다. 물론 마이클 꼴레오네와 피터 파커는 캐릭터의 질이 다르긴 하지만... 여기서 다시금, 본래 캐릭터 자체가 좋아야 그걸 표현할 수 있는 폭과 깊이가 부여된다는 자명한 사실. 물론 저는 피터 파커를 좋아하고 매우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요.

 

 

덧.

눈알 배우라고 눈알로만 연기를 하는 건 아니다. 올리비아 콜먼, 톰 홀랜드, 마우라 티어니, 알 파치노 모두 얼굴과 몸을 굉장히 잘 활용한다. 아주, 매우, 엄청나게 정말 잘 활용한다. 온 몸으로 연기를 하기 때문에 이런 배우를 가져다 대갈치기만 하거나 롱샷으로만 찍어놓으면 짜증이 난다. 찍는 사람도 편집하는 사람도 최대한으로 활용을 해야하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