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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지하다

돌고 도는 덕질 with 알 파치노

노멀 피플에서 빠져 나오려면 다른 걸 봐야 했다.

그래서 다른 틴무비도 보고, 재밌는 연애물도 보고, 야시시한 만화책도 좀 보고 했는데 결국 다시 노멀 피플로 돌아가서 뭔가 특별한 게 필요했다. 건너뛰기를 하거나 1.2배로는 볼 수 없는 것. 오로지 배우의 연기와 대본,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연출 기법만 쓴 영화. 그래서 오랜만에 대부랑 아라비안로렌스를 보려고 했다. 근데 대부 1만 보고 노멀피플에서 빠져나옴. 거참... 무시무시한 영화구먼.

 

문제는 대부를 보면 알 파치노 퍼레이드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2, 대부3를 당연하고 독데이에프터눈, 스카페이스도 봐야 하고 프랭키와 자니도 보고 애니기븐선데이, 히트, 여인의 향기, 대니 콜린스도 보고 이것저것 오만걸 다 봐야 한다. 아직 못 본 아이리쉬맨도 이번에 봐야것구먼.

 

알 파치노가 갖고 있는 멋이 좋다. 그가 갖고 있는 카리스마는 피지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눈깔(이나 입술)을 까부려서 나는 게 아니다. 옷을 잘 입거나 말을 잘해서 나는 것도 아니지. 알 파치노는 지금이나 젊었을 때...라봐야 사오십 대에도 말을 잘 못했고 옷도 잘 못 입는다. 나이들면서는 그니까, 환갑이 넘은 후부터는 침대에서 굴러 나와 바닥에 뿌려놓은 옷 아무렇게나 걸치고 나온 것처럼 하고 다님;; 자세도 정말 안 좋다. 디스크가 열댓번은 터졌을 것 같은 자세로 살고 계심. (허리가 아픈 게 뭔지 분명히 알고 있다라고 느낀 게, 험블링이라는 영화를 보면 허리가 아파서 절절 매는 씬이 있는데 세상 웃기고 너무 현실적임 ㅋㅋㅋ)

 

그래도 그냥 멋이 있다. 피지컬이 좋은 것도 아닌데,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고 있는 씬인데 멋있어. 연출로 어떠냐! 잘생겼지! 멋있지! 몸매 죽이지! 너 이런 거 좋아하지! 이러면서 들이대지 않아도 멋있다. 당연히 연기를 참 잘하는데, 워낙 카리스마와 아우라가 강하다보니 40~50대 사이엔 소리 지르거나 눈을 부라리는 방식으로 연기를 하게 만드는 감독과 대본을 많이 선택했다.

하지만 젊었을 때 연기한 마이클 꼴레오네나 토니 몬타나 캐릭터를 보면 인물의 내적갈등과 인간성이 변하는 과정 같은 내면연기를 무시무시하게 잘하거등? (토니 몬타나는 내내 악에 받혀서 소리를 질러대긴 한다.) 옛날부터 잘했고 지금도 잘한다. 히트에서도 드니로와 커피숍에서 가만히 앉아서 대화하는 씬이 더 멋지고, 여인의 향기에서 탱고씬이 제일 좋다고들 한다. 왜냐면 프랭크가 탱고를 추면서 삶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글고 나는 우리 할배가 실실 웃는 걸 좋아해서 그 장면을 좋아한다. 퍼킹 챠밍하니께. 잘 생겼쪄...ㅠㅠ

 

예전에는 문화평론가라는 것들이 드니로가 낫네 파치노가 낫네 하며 꼴값도 많이들 떨었지. 참으로 쓸데없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을 안하면 인생이라고 할수없죠. 그러니까 후진 영화라도 알 파치노가 나왔다면 다 쓸어보는 겁니다요. 실제로 구린 영화가 꽤 많다고.

 

 

추천 ;

대부는 뭐... 그냥 보면 된다. 옛날 영화가 영 취향에 안 맞는다고 해도, 영화를 좋아한다면 대부1은 한번쯤은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것도 보고 나서 결정해도 될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훌륭한 대본과 훌륭한 연기, 쓸데없는 겉멋을 부리지 않은 연출. 순수하게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마이클 꼴레오네의 서사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마이클이 타락하는 여정이 너무 잘 그려져서 마음이 뻐렁침.

마피아 영화를 이렇게 잘 만들어냈으니 사람들이 안 좋아할 수가 있나. 요즘 히어로물을 비하하던 사람은 그 시절에도 마피아물을 비하했겠지. 그래도 대부는 봐야했을 거다. 히어로물 싫다는 평론가가 좋든 싫든 인피니티워랑 엔드게임을 봐야 했던 거랑 마찬가지 ㅋㅋ

 

대부2가 더 좋다고들 하지만, 갠적으론 마이클이 변하는 과정이 좋아서 대부1을 더 즐긴다. 마이클도 마피아가 되고 싶지 않았고 비토도 마이클이 마피아가 안됐으면 했는데 결국 어쩔 수 없이 마피아가 됐고 해보니 겁나 잘해. 아주 냉철하고 잔인한 마피아가 된다. 그게 동정심도 들고 마음이 아프다.

대부2는 그런 마이클이 잃게 되는 것들을 그린다. 마이클은 그걸 알면서도 멈추질 못하는 내용인데 여기선 또 하나도 안 불쌍. 이 천치색히는 왜 브레이크를 못 밟는가. 왜 살인이라는 제일 손쉬운 방법으로만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가하는 답답함이 좀 인다. (근데 그게 또 존멋인건 어쩔 수가 없... 멋있게 찍었놨다고.)

2에선 마이클의 아버지 비토 꼴레오네의 뉴욕정착기도 나온다. 비토와 마이클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여주는데 비토는 패밀리를 꾸리고 마이클에겐 비지니스만 남고 패밀리는 잃는다. 하긴 아부지랑 아들이 성향만 비슷하지 마이클이 좀 더 막나가긴 했잖여. 갠적으론 비토가 마이클 보다 더 딱히 인간적이고 가족과 친구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영화에선 그렇게 표현한다. (납득할만한 살인과 납득못할 살인을 나눠서 뭐하건디. 어쨌든 영화는 영화.) 프레도 캐릭터도 정말 좋다. 세상 둘도 없는 등신인데 마음이 아파ㅠ

기본적으론 세트라 대부1을 보면 대부2를 보니까 굳이 뭐가 더 좋은지 따질 필요는 없지. 

 

대부3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 생각엔 자기들의 영웅이 늙고 병들고 구차하게 용서를 구하고 홀로 죽는 게 싫었던 것 같다. 근데 난 이런 거 좋아하지=ㅠ= 크하하하, 네가 한 짓을 생각해봐라, 넌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 이 시키야, 나는 이런다고. 물론 마이클 딸이 소름끼치게 연기를 못해서 번번히 거슬리긴 한다. 분량도 겁나 많은데... (대부1에서 코니도 진짜 연기 못한다. 알고보니 두 배우가 코폴라 감독의 딸과 여동생이었다;; 딸의 경우엔, 원래 계약한 여배우가 촬영직전에 안한다고 파토내서 급하게 땡빵으로 넣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쉽긴 하지. 동생도 별로 넣고 싶진 않아했다고 하는데 더 찾아보기 귀찮아서 관둠.)

 

마이클 딸 역의 배우가 잘한 건, 그 사람 자체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표정(얼굴) 자체가 순진함과 멍청함이 함께 공존한다. 애초에 캐릭터 자체가 그래서 뭐 그냥저냥 넘길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아쉬운 건 오히려 알 파치노임. 분장도 잘했고 제스쳐도 좋은데(=연기는 잘하지만) 대부3의 마이클이 극중 나이가 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설정에 비해 젊다고 느낀다. 아마 눈알 때문에 그럴 거다. 70대가 되고 나서야 느낀 건데, 이 할배 눈알이 좀 과하게 선명하고 생기가 있다. 건강한 것 같지도 않은데 백내장도 안 오나? 아님 백내장 수술이 겁나 잘 됐나. 흰자위는 왤케 하얀지 ㅋㅋ 최근 몇년 간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문득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 (과할 정도로) 선명한 촛점이나 눈빛은 젊을적 그대론데 껍데기는 나이가 들어서 미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여튼 뭔가 젊어 보이는 알 파치노(50대 초반)가 늙은 마이클을 연기하는 거나 연기를 겁나 못하는 주연급 여배우만 빼면 대부3도 괜찮다. 

 

눈알이 젊으시다.

 

 

프랭키와 자니도 훌륭하다. 재밌고, 훌륭한 러브스토리고, 관계맺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사가 좋다기 보다는 뉴욕의 후진 식당에서 일하는 가난뱅이들의 삶이 꽤 유쾌하게 표현되었고(쓸데없이 동정하거나 과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프랭키의 슬픔이나 자니의 외로움 같은 게 굉장히 잘 표현되어있다. 내가 또 이런 디테일 쩌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겠음. 프랭키의 고백이나 조니의 '이게 어려운 일이면 안 되는건데, 왜 매번 이렇게 힘든지.'하는 대사도 좋았고.

 

알 파치노 필모에 러브스토리는 별로 없는데 이 작품 보면 왜 그런지 감이 잡힌다. 애교 떨고 귀엽고 장난도 치고 다 하는데, 그럼에도 카리스마가 너무 강하다. 프랭키가 하는 대사에도 있다. '그렇게 뚫어지게 보지 마요. 그렇게 빤히 모면 긴장하게 된다고요.'라고. ㅋㅋ 미셸 파이퍼는 어느 때보다 여자다운(?) 여자를 연기하는데 상대역이 알 파치노여. 생각해보면 알 파치노는 거의 항상 여자에게는 잘해주는 역할을 했다. 근데 저 얼굴에 저 눈빛에 여자한테 강압적으로 구는 캐릭터면 아무리 영화라지만 무서워서 보겠냐. 세상 잔인한 마이클 꼴레오네가 마누라에겐 굉장히 성차별적으로 겁나 잘해줬는데, 그게 무너지는 장면이 대부2에서 나온다. 마이클이 상처를 받아서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은 감정적으로 이해가 가거등. 근데 나중에 애와 애 엄마 사이의 문을 말 한 마디없이 닫아버리는 장면은, 마이클이 상처입은 게 눈에 뻔히 보이는 데도 진짜 무섭다. (비토도 마누라에게 성차별적으로 겁나 잘해줌. 근데 비토 마누라는 그거에 만족하고 남편이 총에 맞든 자식이 총 맞아 죽든 말든 끝까지 남편에게 헌신하며 살았고 케이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하여간 저런 눈알을 갖고 있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밀어붙이는 타입의 조니가 로맨틱하거나 부드럽지라도 않으면 안 되는 거시다.

 

 

TMI ;

히트는... 뒤늦게 알았는데 내가 이 영화를 두 개로 쪼개서 기억하고 있었다. 왠지 알 파치노 캐릭터 서사의 일부를 완전히 새 영화로 만들어 기억하고 있었지 뭐야. 가타카 때도 이런 짓을 했었다. 꽤 오랫동안 주드 로를 거의 서브남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캐릭터와 서사가 너무 좋아서 주인공의 서사를 눌러버리고, 히트도 알 파치노나 발 킬머 캐릭터가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그 캐릭터로 따로 소설을 쓴 거시었다. (참고로 드니로 러브라인은 개구림.) 이런 영화, 드라마, 만화가 얼마나 많을지 ㅋㅋ 아, 히트에서 알 파치노 겁나 잘 생김. 진짜로. 진짜 무시무시하게 잘 생겼다. 항상 잘 생겼다고 생각했고 배우니까 어느 영화에서든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오지만, 히트에서 유난히 예쁘다. 대부에서도 잘 생겼고 매력적이지만 예쁘진 않았거등. 쌜쭉거릴 때 아주 기가 막힘 ㅋㅋ 그리고 감독이 알 파치노를 좋아한다. 우리 형아 멋지고 예쁘게 찍어야징~ 하는 게 보임. (나중에 인사이더에서도 알파치노를 빨아먹다 못해 산채로 잡아먹게끔 찍어놨음.)

그니까 나는 히트를 세 종류의 다른 영화로 기억하는 거다. 알 파치노 얼굴이랑, 알 파치노 캐릭터, 발 킬머가 귀요미 찐따로 나오는 액숑영화 feat 드니로, 파치노. 이 정도면 좋은 영화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