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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지하다

노멀 피플

웬종일 틀어놓는데,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경고) 스포일러 겁나 많음.

 

일단, 딱 내가 좋아하는 러브스토리다.

두 찐따가 찐따같이 굴면서 찐따같이 사랑하고 찐따같이 행동해서 서로 상처 주고 상처를 받는 이야기. 나는 다른 사람이 반대하고 가로막아서 연애가 안되는 이야기엔 흥미가 없고 '서로 너무나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 때문에 관계를 망치는 연애스토리'엔 환장한다. 그러다 헤어지고 '난 쓰레기야 잉잉' 하면서 등신같이 굴면 더 좋아함. 마음이 찢어지는데 왠지 더 좋음=ㅠ=

섹스앤더시티에서 사만다가 스미스랑 헤어지는 이유가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하지만, 나는 나를 더 사랑해서 나의 본성을 죽이고 살 수는 없다'는 거였고, 어쨌든 스미스랑 헤어지는 건 마음이 아픈 일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성 폭식을 하는 사만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 해필리에버에프터는 개뿔.

 

 

2. 내가 성장물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건 정말 잘 만들어진 성장물이다.

두 찐따가 번번히 울고 짜고 쪽팔려하고 괴로워하면서 느릿느릿 성장하는데 그게 불쌍하고 안됐고 마음이 아픈데 (이런 걸 애달프다고도 한다.) 어쨌든 성장을 하니까 마음이 왈랑왈랑 훈훈하거든. 영앤스튜핏은 울림이 있다. 그게 젊음의 유일한 프리빌리지라고 할 수 있슴다. 여러분. 영앤스튜핏을 즐기되 올드앤스튜핏 되지 않게 노력하세요.

 

성장도 찐따들의 연애 관계에 대한 것만은 아니고, 물론 두 사람이 친구로서 혹은 연인으로서 관계를 발전시키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긴 한다. 하지만 캐릭터가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 남에게 보여지는 방식으로 콘트롤 하고 싶어하는 모습,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등 성장과 인간관계에 관한 걸 안 그런 척 하면서 다 쓸고 지나간다.

그래서 이렇게 울림이 있는 거겠지.

 

 

3. 남주 삼각근 좀 보소.

아니, 당연히 몸이 전반적으로 좋고, 딱히 삼각근이 특히 더 크거나 더 두드러 지는 건 아니다. 중하부승모근이랑 광배근도 훈늉한데 자꾸 삼각근을 보면서 저 삼각근 좀 보아라 'ㅁ' 이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함. (헬창으로 한발 더 다가감.)

 

 

4. 남주 엄마가 존멋임. 아, 이런 멀쩡한 어른 캐릭터 너무 좋아합니다. 나의 판타지라고요.

 

 

5. 대사가 훈늉하다.

제이미 ; 너랑 걔랑 고삐리 때 같이 놀았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마리안 ; 그렇진 않았어.

제이미 ; 그래, 그렇겠지. // 걔... 뭐야, 똑똑해?

마리안 ; 나보단 똑똑하지. // 실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해.

 

이 대화에서 제이미랑 마리안은 대화를 하지만 서로 소통을 하고 있진 않다. 왜냐면 서로 말 속에 다른 의미를 담고 있거등.

제이미는 우리같은 금수저인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마리안이 코넬처럼 구질구질한(못 사는) 애랑 노는 게 상상이 안 된다는 거고, 마리안은 스스로를 못 생기고 괴팍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잘 생기고 똑똑하고 배려심 깊은 착한 인간인 코넬이랑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를 담고 저런 대화를 한다.

노말 피플의 캐릭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 솔직하다. 그래서 극 자체가 간결하다. 거짓말도 없고 음모도 없다. 안그래도 인생 ㅈㄴ 꼬이거등요. 대사에 이중적인 의미나 거짓말, 트위스트가 없어도 서로에 대한 관념과 인식이 틀어져 있응께.

물론, 솔직히 말을 해도 그 속 뜻을 구구절절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때로는 선택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런 데서 오해 혹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레 짐작을 한 상태에서 말을 하고 들으니 제대로 된 대화가 될리가 있나. 이런 대사 느무 좋으네요.

 

 

6. 주연 캐릭터 둘.

코넬은 고삐리 때부터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는 리안 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애초에 스스로 책을 읽는 예민한 문학 소년인 걸 보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마리안이랑 "허구헌날 떡을 치면서도 학교에서는 인사조차 안하는" 세상 개쉐같은 짓을 했고 그래서 한번 마리안을 잃었다. 무엇이든 강하게 어필하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캐치하는 걸 어려워하는 코넬의 성격 + 마리안에 대한 죄책감이 적당히 믹스가 된 상태에서 코넬은 마리안을 사랑하지만 마리안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가 애매모호하고 자기가 원하는 걸 말한다 한들 그걸 마리안이 받아 줄지 확신하지도 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기 때문에.)

 

마리안은 누구(부모)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걸 당연하다고 내재화 시켜버린 경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하찮게 대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차라리 그걸 편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리안은 자기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아는 편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등등. 리안이 먼저 코넬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코넬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꼴불견이거나 욕 먹는 짓도 기꺼히 할 생각이 있고 실제로 행하며, 코넬이 원한다면 뭐든 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코넬은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모르...)

 

그래서 마리안은 코넬이 무슨 말만 하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으므로 코넬이 떠나려고 하는 건 당연해서' 자길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니까 이 두 사람은, 서로 찬 적이 없는데 결과적으론 겁나 자주 헤어지는... 세상 쪼다같은 짓을 반복한다.

이렇게 예민한 캐릭터를 이렇게 섬세하게 잘 그린 드라마 흔치 않다. 진짜로.

 

 

7. 조연 캐릭터.

조연 캐릭터가 꽤 디테일하게 만들어졌다. 물론 우리 섬세하시고 똑똑하신 두 주인공님들에 비해 멍청하거나 나대거나 관종이거나 무신경하지만 그건 뭐 조연이라는 태생 때문에 그런 것 같고(정확히는 드라마 자체가 주연공의 입장에서만 연출되서 그렇슴), 각각의 캐릭터가 다른 성격과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좋았다.

물론, 조연 캐릭터가 주연처럼 행동하는 경우는 아니고 이런 각각의 캐릭터가 주인공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를 굉장히 잘 보여준다.

 

코넬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코넬을 좋아하고 아끼면서도 코넬이 어떤 인간인지 자체에 대해선 관심이 별로 없다. 그리고 코넬은 그걸 적당히 좋아한다. 마리안의 대학 친구들은 부유층이라는 면에선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이 비슷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마리안을 좋아하고 배려하지만 다들 자기 자신에 너무 빠져있어서 (ㅋㅋ) 그리고 주인공들이 자꾸 밀어내기 때문에 상호적인 관계를 만들진 못한다.

물론 아무래도 조연이 더 찐따처럼 나오긴 하지만 내 보기엔 이 주인공들 진짜 문제가 많다. 조연들도 피해자인 면이 있어요. 주인공도 애새끼지만 조연도 애새끼거등. 더불어, 주인공 주변에 좋은 인간이 있지만 이렇게 상호적인 관계를 못 만드는 인간들과 더 많이 붙어 있는 걸 선택하는 것도 주인공임. (개찐따새끼들...)

 

 

8. 연출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연출을 하기도 했지만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표현 방식은, 그냥 보여주는 것이었다. 캐릭터의 사고방식이나 감정을 까발리는 나래이션도 없고 인물이 지금 어떤 상황이라고 외치는 듯한 극단적인 연출도 하지 않는다. 시청자는 인물의 생각과 감정 성장을 거의 비슷하게 따라가기 때문에 앞에서 무수히 힌트를 봤음에도 놓치고 있다가 뒤로 갈 수록 이거 왤케 마음을 때리지? 이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섹스신이 꽤 많다. 10대 후반, 20대에게 강추하는 드라마이지만 부모님이랑은 볼 수 없다는 뜻이져. 따로 봐, 따로.

여튼 첨엔 좀 쓸데 없이 많다고 느껴스킵했는데 세번부터는 섹스신도 뜯어보고 있다. 베드신이 많은 이유는 마리안과 코넬이 가장 자연스런 상태(=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그나마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가 사실상 섹스할 때 밖에 없거등. 계속 상대방이 이 행위를 좋아하는지, 기분이 어떤지를 확인하고 한 사람 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욕망을 함께 채우는 상호적인 관계를 맺는다. 아니,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나게 훈늉한 섹스이긴 합니다만 평소에도 그렇게 커뮤니케이션 좀 하게 하라고...라고 하기엔 마지막회에선 그렇게 되긴 한다. 아흙 훈훈해 ㅠㅠ

 

여튼 둘이 섹스하고 벗고 들러붙어 있을 때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완전히 자기자신을 노출한 채 있는 모습이 약해보이기도 하고 그렇슴. 그리고 그런 모습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좌충우돌하며 쌓아가는 관계가 결국 서로를 개찐따에서 조금 나은 찐따로 만든다는 것 같다. 연출이 그렇댐.

 

 

9. 좋았던 건 아니고, 좀 의외? 아연실색 한 부분이 있다.

배경이 현대 아일랜드, 더블린인데, 이 드라마 기본적으로 여자가 밥 하고 집안 일 하고 그런다. 마리안은 남친에게 집안일과 청소 따위를 하며 헌신을 보여주고 어디 놀러가도 밥하는 건 여자들임. 코넬이 유일하게 좀 도와줄까?라고 물어보는 남자임. 거의 늘, 항상 괜찮다고 해서 안 도와줘도 되지만 ㅋㅋ;;  

마리안 엄마는 전문직 여성이자 남편에게 가정폭력 당한 피해자이고 딸이랑 친하게 지내면 아들이 짜증내서 딸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걸 선택한... 무슨 가부장의 화신이자 피해자이자 개또라이임. 불쌍한 면도 있지만 올드앤스튜핏이라 짜증난다. 

 

 

10. 이외에도 모든 캐릭터와 1회부터 12회까지의 모든 대사, 모든 연출, 모든 연기를 다 뜯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 같아서 일단은 이 정도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