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뭐라고 번역해야 하나, 사회적 위치? 계층? 계급?
이젠 법적으로 계층과 계급이 없지만 사회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계층과 계급이 아직 남아있는 현실에서 필요했던 단어... 물론 운동권은 여전히 계층과 계급이란 말을 쓰긴 한다. 하지만 의외로 권력, 계층, 계급이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특권층이 그러더라고?
사실 특권도 전통적인 특권과는 다른 게 자기가 가진 포지션과 특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소셜 포지션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남자고 나이 많고 백인이고 돈이 많아서 무조건 권력이 넘치고 사람들이 꼬이는 건 아니라는 거임. 이건 권력이 내가 소유한 고유한 물건이 아니라 남에게 얻어오는 거라 그렇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권력을 부여하지 않으면 나는 권력을 누릴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알아서 따르게 하는 힘'을 흔히 카리스마라고도 한다. 카리스마가 돈이나 성별이나 국적 인종 등 정치, 사회, 문화적 팩터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 개인이 가진 성격적 매력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보통 인간은 이런 영향력을 계속 교육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돈이나 나이가 많거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힘이 세거나(몸이 좋거나) 외모가 출중한 사람, 그리고 남성에게 일단(자기도 모르게 원하든 원치 않든) 권위와 권력을 부여한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한국은 나이가 벼슬인 나라이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노인이 고립되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은 노동자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그러면 돈이 없고 그러면 사회문화적 가치가 떨어지는 식이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므로 문화적 인정도 받지 못한다. 사회의 가치관은 변했는데 인간의 가치관은 변하질 않으니 세대마다 격차가 생기기 마련이고 거기서 오는 충돌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길바닥에서 살해를 당하거나 후드려 맞거나 욕을 먹거나 모난 눈으로 보는 일은 없다. 하지만 노인의 자살률을 보면 이 집단이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은연중에) 고립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노인은 기득권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약자가 된다.
무 자르듯 기득권 특권층 약자 등등이 딱딱 나눠지면 얼마나 쉽겠냐만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약자=선한 사람이라고 인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약자는 약자고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약자 중에도 나쁜 놈이 있고 기득권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다. 자신이 어떤 인간이 되는가는 배경이나 소셜 포지션과는 상관없이 그 개인이 어떤 인간이 되고 어떤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행하는 거다. 여자라고, 어리다고, 유색인종이라고 다 약자도 아니고 다 착하지도 않다. 그 안에서도 끝없이 계층과 계급을 만들어서 서로를 구분짓고 옆에 있는 사람보다 위에 서려고 하는 게 인간이 하는 짓이다. 남자만 이 짓을 하는 게 아니라 여자도 그런다. 다만 하는 방식과 드러나는 양식이 다를 뿐이다.
어쨌든 기득권이면 더 쉽게 좋은 사람 행세를 할 수 있긴 하다. 그리고 조금만 착한 척을 해도 더 많이 칭찬받고 인정받는다. 그러니까 내 말은, 기득권이라면 그 알량한 사회적 우위를 최대한 이용하라는 거고 기득권이 아니라면 이딴 거에 속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권력을 이양하기 시작하면 그냥 거기에 안주하게 된다. 이게 또 나름 편한 면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권력을 주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스스로의 에이전트가 되면(주체적인 인간이 되면) 인생이 훨씬 쉽고 편하다. 타고난 사회적 위치나 주어진 현실이 어떻든 자기 권력은 최대한 자기가 갖고 있는 게 좋다. 여자는 뒤웅박 팔자라 남편 따라 인생이 좌지우지된다는 것도 그 여성의 가진 권력을 남편에게 이양하고 남편의 사회적 권력에 따라 인생이 이리 날리고 저리 날려서 그런 거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님. 그렇게 못 배웠으니 사회 탓 부모탓 학교 탓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못 배웠으면 과외라도 받으면 된다. 애초에 사회나 학교는 그런 걸 가르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박근혜 정부를 보면 (그리고 요즘 한국당 하는 짓을 보면) 남이 어떻게 보든 말든 발악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선 뭐라도 해서 권력을 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추하게 보여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권력을 잃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먹고 죽을 카리스마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떤 내용이든, 남에게 해가 되든 말든 그 말을 죽어도 해야겠다면 해도 된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고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보장되는 권리니까. 하지만 그 말로 인해 카리스마를 잃거나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다른 권리와 권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걸 감수할 만한 배짱도 있어야 한다. 진상은 있는 대로 다 부려놓고 인정받고 싶어 하면 진짜 등신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