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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섹슈얼리티

얼마전에 월경박람회랑 월경페스티벌 포스터를 봤다. 여성행사로서 월경은 자극적이기도 하고 나쁘지 않지만 인권행사로 봤을 땐 좀 철이 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근데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아직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여튼 여성주의가 생물학적 여성을 벗어나면서 성과 관련하여 무지하게 많은 단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주로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한국에 수입되는 식인데 유럽에서도 성평등운동이 있지만 미국처럼 섹슈얼리티에 집중하는 것 같진 않다. (이를테면 '시스젠더'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는 상태는 아닌 것 같으다. 그렇다고 미국에선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한국은, 섹슈얼리티가 정확히 무슨 뜻인데? 하는 사람도 많은 상태인 것 같다.

 

섹슈얼리티는 성에 기반한 정체성이다. 내 몸의 성별(sex)이 무엇인가, 몸과 상관없이 내가 생각하고 원하고 느끼는 성별(gender)은 무엇인가, 내가 성욕을 느끼는 몸은 남성형인가 여성형인가 혹은 둘 다인가 혹은 둘 다 아닌가, 내가 매력을 느끼는 젠더는 어느쪽인가 등등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여기에 전자 두 개는 성정체성, 후자 두 개는 성지향성이란 이름이 붙여지는데 나는 이게 다 정체성의 하위분류라고 본다.

그리고 사고방식도 섹슈얼리티에 들어간다.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한다거나 한국여자가 어쩌고, 한국남자가 어쩌고, 성별이 다르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등 성에 기반한 사고방식도 섹슈얼리티다. 결국 그 사고방식이 행동방식으로 드러날테고 그런 말과 행동에 따라 성에 기반해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섹슈얼리티가 정체성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소수자에게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나 성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 밖에 안 된 애의 스타일과 하는 행동이 여자나 남자에 확실히 들어가지 않아서 몇 달을 궁금해서 돌아버리다가 결국 그애 담임선생한테 아이 성별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에 상관없이 내가 보기엔 성에 과하게 집착하는 사람이고 그게 그 사람의 섹슈얼리티이다. (얼마전에 내가 실제로 들은 이야기. 당사자는 스스로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음. 웃고 싶다.)

그리고 성에 과하게 집착하는 사회도 있다. 보수적인 문화권일 수록 성에 기반한 사고방식이 확고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고 차별하고 억압한다. 기준도 그렇지만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것도 사회와 시대와 개인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다. 한마디로 기준이란 게 없음. 그래서 섹슈얼리티를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정확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게 없으니까.

 

(안 그런 나라나 사회가 어디있겠냐만은) 미국사회도 성이 사회생활에 굉장히 큰 팩터가 되는 나라이다. 미국의 젠더운동은 '네 맘가는대로 네 섹슈얼리티에 이름을 붙여라'가 되고 점점 세분화 되는 것 같다. 나는 '개념어'가 너무 많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자기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고민에 이름이 필요한 사람도 있으니까.

자신의 섹슈얼리티 때문에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면 젠더공부를 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