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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님아, 공원 앞에서 살지 마오

집 앞에 몇만평되는 공원이 있다. 

공원의 한가운데 앞쪽에 있기 때문에 사이드에 있는 집보다 경치도 좋다. 장점은 이게 끝이다. 경치가 좋다. 공원이 있으면 공기가 좋을 줄 알았으나 기본적으로 인간이 풀썩 거리면 공기가 좋을 수가 없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으면 차라리 산밑이나 인간이 잘 안 오는 곳에서 사는 게 제일 좋다. 실제로 산 밑에서 살면서 없어졌던 가래가 공원 앞으로 이사오고 이틀만에 도로 생겼다. 

 

무엇보다 소음이 문제다. 

지금처럼 선거철이 되면 하루종일 되도 않는 뽕짝과 가요를 들어야 하고 기독교인이 삘 받으면 단체로 모여서 똥꼬 타령을 하는데 그걸 가만히 듣고 있어야만 한다. 특히 쉬는 주말에 더 난리임. 이걸로 끝이냐면 아니죠. 밤마다 취객들이 떠드는 소리가 또 들림. 층간소음 벽간소음은 어떻게 이웃이랑 잘 이야기를 해서 풀 수나 있지 매일 바뀌는 취객이나 정치꾼이나 개독들을 어떻게 감당하냐고. 

 

제가 약간 편집증이 있걸랑요. 듣고만 있으면 뭐하겠음. 나름 또 취객들의 패턴을 나눠서 분류를 하는 고다. 

시끄러운 취객은 대략 남남, 남여로 나눌 수 있다. 남남은 친구사이가 시끄럽고, 남여는 주로 썸을 타는 애들이 시끄럽다. (사귀는 애들은 싸울 때 진짜 엄청나고 무지하게 시끄러운데, 소음의 빈도로 따지면 썸 타는 애들이 더 많이 자주 소음을 일으킨다.) 

보통 순수하게 즐거운 사람들의 소음은 사실 그렇게 오래가질 않는다. 순수하게 즐거운데 우리집까지 말소리가 다 정확하게 들리게끔 떠든다는 건 사실상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건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 자체가 힘이 드는 일 아니겠슴둥? 순수한 즐거움에 그런 에너지를 쓸리가 없잖여. 내가 말하는 소음은 단발마로 들리는 웃음소리 같은 게 아니라 진짜 30분 이상 들려오는 말소리와 웃음소리 기쁨의 비명(?!) 같은 거거등. 

 

그래서 이들의 소음에는 보통 어떤 의도가 들려있는 경우가 많다. 남자친구끼리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서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 기싸움이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진짜 많다. 단순히 내가 너보다 게임을 잘한다 뿐 아니라 내가 너보다 쎄다, 인간적으로 더 뛰어나다, 하는 정말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가 많음. 애초에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서 게임을 하는 주제들끼리 쎄면 어쩔 거고 더 뛰어나면 어쩔 거냐고. 거기서 거기지. 그래도 뭐 이건 좀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여자랑은 다른 종류의 기싸움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거등.

 

내가 제일 싫어하는 패턴은 썸타는 애들인데, 남자가 내는 '나는 멋지고, 화통하고, 아는 게 많고 하여간 훈늉한 숫컷이다'를 어필하는 웃음 소리가 있다. 절대 일상에서는 내지 않는 화통한 웃음 소리 같은 게 있음. 말할 때도 더 오버하고 더 과장해서 말을 하거등. 그리고 여자는 내가 너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ㅈㄴ 바쁘게 리액션을 하면서 '너는 정말 재밌어, 멋져, 그리고 나는 매력적인 암컷이지'라는 의미가 담긴 웃음 소리를 낸다. 고음인데다 소리자체가 굉장히 날카로움. 내가 말이쥐 어쩌고 저쩌고 하하하하하는 웃음 소리와 어머 정말요? 깔깔깔 이런 소리를 5분 이상 듣고 있으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성적 매력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근데 이게 보통 20분 30분까지도 이어짐. ㄷㄷㄷ 

 

물론 여자가 더 시끄러운 경우도 있긴 하다. 여자가 완죤 꽐라가 되서 주정과 발정 사이를 오가며 살짝 미쳐 날뛰는 상태인 경우를 몇번 봤음. 이럴 때 남자가 조용히 그냥 받아주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역시 섹스는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런 미친년하고 하기 위해 저걸 참아주다니. 한남의 인내심이 훈늉한 건지, 섹스에 대한 욕구가 높은 건지 여튼간에 대단함. 물론 섹스가 하고 싶을 때 ㅈㄴ 취해야 하는 여자라는 것도 참... 

 

로맨스와 성애가 없는 인간으로서 (이걸 각각 A로맨스 A섹슈얼이라고도 한다. 이걸 합친 용어도 있는데 까먹음.) 섹스라는 단순한 행위를 하기 위해 쏟는 에너지와 시간과 정성과 기싸움과 소음이 참으로 소비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네여. 그냥 해, 쫌. 그냥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