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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남한테 관심이 없다

1. 내가 왜 이 모양인지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그걸 한방에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얼마 전에야 발견했다. 

나는 남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사는 꼬라지, 내 몸의 상태, 내가 나를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게 내 관심사다. 나는 남이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꼬라지로 사는지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가쉽에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을 때는 거의 멋지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할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을 때 뿐이라 좋은 점을 발견했을 때 더 찾아보는 편. 나보다 못난 인간이 존재한다고 내가 잘나지면 그런 인간만 보고 살겠지만=_= 쓸데없는 데 우월감을 느끼느라 시간을 쏟는 건 결과적으로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 (물론 나도 어렸을 땐 이런 짓을 꽤 했다. 하지만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긴 인간에게 시간낭비는 여러모로 치명적이다.) 

 

썸을 탈 때도 비슷했다. 니 인생 니가 알아서 살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되 약간의 접점에서 만나면 거기서만 즐겁고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애인데 이상하게 연애를 하면 상대방의 과거와 미래와 인생과 성격과 성질을 다 나누고 제어하고 싶어하고 제어당하고 싶어하드라고. 근데 나는 제어하고 싶지도 않고 제어당하고 싶지도 않다. 

썸이 연애로 못 나가는 결정적인 이유임다. 나와 있는 시간 이외에 뭘 하고 있든 크게 관심이 없... 약간의 생활을 나누는 건 가능하다. 직장 상사 욕이라든가, 회사 동료 뒷담이라든가. 어느 정도까지는 들어줄 수 있다. 근데 나는 이런 소리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일 이야기 그 자체는 좋아하고 재밌어 하고 오래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왜인지 보통 인간들은 이런 걸로 오래 대화하지는 않드라고. 

 

근데 솔직히, 현실적으로다가, 도박하는 사람한테 내가 도박하지 말란다고 도박 안하겠음? 업소 다니는 사람에게 업소 다니지 말란다고 내말을 듣겠냐고.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해야하는지 '현실적으로다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남에게 어떻게 살라 마라 하는 건 취향에 안 맞는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대굴빡 터짐. 남의 인생과 행동과 생각에 떠드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일을 할 때 이런 성향은 꽤 좋게 작용한다. 

나는 나의 거래처와 직원과 손님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상손님이 원래 어떤 인간인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먹튀를 잡을 때 묻지도 않은 먹튀의 국적을 추측하는 말도 이해가 안갔다. 먹튀는 먹튀다. 국적은 상관없다. 그리고 한국인이었음. 젊었고 부모였고 애들도 데꼬와서 친구들과 함께 먹튀했음. 덧붙여 먹튀가 한국인에 젊은 부모에 애들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에 대한 이미지가 더 나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관심이 없... 나는 처드신 값만 내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사과 받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네가 실제로 어떤 인간이든 나는 너를 먼저 인간답게 대해주며 친절할 것이고, 너는 그에 맞게 나를 인간답게 대해주면 된다. 인간관계는 선만 잘 지키면 누구하고나 괜찮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분 나쁘지 않게 그렇다고 자꾸 생각나지도 않게 서로 인간답게 잘 대해주고 잘 헤어지면 끝이다. 천년의 사랑이나 천년의 우정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해주세요.

 

이것도 백번 성장한 거임. 나는 원래 내가 먼저 남에게 잘해주는 타입이 아니었다. 남이 잘해주면 그제서야 잘해주는 똥멍청이였다고 ㅋㅋㅋㅋ 

 

 

2.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을 좋아한다. 베토벤이 서른아홉엔가 쓴 곡이다.

그리고 즐겨듣는 버전 중에 하나가 에센바흐와 랑랑의 협연인데 이때 랑랑이 서른이었다. 다행히도(?!) 에센바흐는 할배였다. 지금도 할배임. 근데 이 할배는 지휘도 잘하고 피아노 연주도 잘한다. 죽을 때까지 잘할 기세.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도 좋아한다. 누군들 안 좋아하겠냐만은. 이건 모차르트가 서른살에 썼음. 레퀴엠은 서른다섯에 썼다. (정확히는 쓰다 말고 죽었다.) 

 

내가 지금 40대 초반이거등. 아니 뭐 역사에 길이 남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거나 거장이 되거나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럴 능력도 안되고. 근데 인간적으로다가 그동안 연습한 게 있는데 어떤 의미로든 끝은 봐야하지 않겠음?

 

그래서, 골드베르그변주곡 15번까지 연습하다 손 놓은지 1년이 넘었는데 다시 시작한다. 나머지 절반을 뚱땅거리는데만도 1년은 더 걸릴 듯=_= 그리고 나면 레슨을 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나서 베토벤 소나타 31번, 그 다음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의 2악장,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의 2악장을 연습할테다. 레슨도 받을테다. 

 

취미생의 장점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할 수 있다는 거.

단점은 자신의 후질구레한 연주를 계속 들어야 한다는 거. 가끔 레알 개빡침. 너무 못 쳐서 빡치는 게 아니라 이 못난 연주를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게 진심으로 괴롭다. 취미가 셀프 귀고문인 셈. 

 

 

3. 셀프 고문하다 괴로우면 드라마를 봅니다. 

브리저튼 2를 봤는데, 이 시리즈는 역시 인종다양성이 훈늉한 K-드라마여. 한국드라마에 야한 장면을 초큼 넣은 거죠. 그런 지점이 너무 재밌어서 보면서 몇번이나 폭소하며 스트레스 해소했다. 게다가 에드위나 느무 예뻐서 세상 흐뭇하게 봤다. 이럴 땐 울 엄니가 잘생긴 배우 나오는 막장드라마를 보는 이유를 알겠당께. 그리고 앤소니도 참으로 챠밍하다. 얼굴 구기고 있으면 별론데 웃거나 새침하게 있으면 기냥 프린스 챠밍이네요. 

 

드라마에 똥멍청이만 나오는 데다 모든 게 헛소동 느낌이라 내용을 말할 게 없다;;; 어느 현명하신 분이 너튜브에 '브리저튼가문 사람들은 뇌세포 하나를 공유하는데 상황에 따라 그 뇌세포가 여기저기 왔다갔다고 한다'고 댓글을 달았더라고. 내가 할 말을 세상 사람들이 다 해주는 시대네요. 심지어 앤소니가 업소언니를 비롯해서 여러 여자랑 자는 걸 보고 STD(성매개감염증)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님 생각이 바로 내 생각. 케이트는 시즌3에서 매독에 걸린 채로 임신할 가능성이 크........=ㅠ=

 

난 현대물이 좋아! 아무 현대물 말고 콘돔을 쓰는 현대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