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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핸드메이즈테일

시즌 4를 보았다. 

시즌 5도 나온다는데 좀 이따 볼 걸 싶기도 했지만... 일 없이 시즌 1부터 3까지 싹 보고 나니 시즌 4를 안 볼 수가 있나. 

 

이렇게 열심히 파멸로 뛰어가는 여주라니... 진짜 준을 보내버리려고 드라마를 쓰는 것 같으요. 근데 이런 내용에 준을 안 죽이고 전범인 닉이랑 남편인 루크랑 두 딸이랑 햄볶으며 잘 살게 되었어요~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냐능.

 

마음이 아프다. 준은 닉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처지와 닉의 처지 때문에 여기에 더해서 닉이 전범이기에 그와 함께 하는 건 애저녁에 포기했다. 캐나다로 와서는 루크와 함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못한다. 아니, 안 한다. 모든 걸 다 잊고 좋은 엄마가 되어서 니콜에게 밥해주고 집 청소하며 소소하게 밥 벌이를 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딸을 그렇게 직접 키우는 것보다 딸들과 함께 있지 못하더라도 혹은 살인을 해서라도 자신의 한을 풀고 니콜과 한나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한다. 그게 준이 원하는 거고 더 잘하는 일이다. 복수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복수를 안하고는 참을 수가 없는 핸드메이즈도. 그래서 복수 장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음. 아니, 속이 시원한데 뒤가 구리다고 할까요. 

 

마음이 찢어지게 슬픈데 되게 좋음=ㅠ= 

난 원래 이런 러브스토리를 좋아한다. 서로 막 좋아 안달이 났어. 근데 자기자신 때문에, 혹은 상대방도 사랑하지만 그만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고 관계가 잘 안 되는 것, 그리고 관계유지를 못하는 자기자신을 탓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좋아한다. 

닉도 준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길리어드에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 루크도 준을 사랑하지만 준이 과거에서 못 벗어나서 폭력적으로 구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준을 무조건 따르다가 혹은 으리를 지키다가 죽어없어지는 마사들과 핸드메이드들은 별로였다. 4시즌 초반에 너무 많은 여자들이 준의 스토리라인 때문에 죽어나가니까 확 재미없어지더라고. 리더님을 따르겠어요 하는 것도 어느 정도껏 아님꽈. 모든 하층계급이 다 대의와 선의를 위해 죽어없어지는 것도 좀... 아니 살아있어야 운동을 하든 복수를 하든 지랄염병을 하든 할 거 아니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쉽게 죽는다는 것도 드라마의 재미를 죽인다. 1-2시즌에서는 확실히 충격적이었는데 뒤로 갈 수록 등장인물도 죽음에 무뎌진다. 당연하다. 인간은 쉽게 적응하는 동물이고 처벌이 무서운데도 한계가 있다. 일제 때도 풀었다 조였다 했음. 계속 조이면 더 들이 박으니까. 게다가 길리어드는 인력이 부족한데 만날 사람을 죽여댄단 말이죠. 노동력과 가임기 여성을 잘도 픽픽 죽여버림. 그러면서 어떻게 군사력이 강한거져. 핵폭탄이 있어도 그걸 날릴 사람이 있어야 할 거 아니요. 

 

 

나는 이 드라마를 (많은 10-20대 여자아이들처럼 ㅋㅋ) 거의 준과 닉의, 그리고 기타등등 여러 사람들의 러브스토리로 보고 있다. 

이 녀석들이 서로에게 친절한 게 너무 보기 좋거등. 준과 모이라도, 준과 루크도. 루크와 모이라도. 모두가 서로에게 나름의 방법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친절하다. 물론 대놓고 핸드메이드 하나를 왕따 시켜 죽게 만들기도 하고 닉의 어린 와이프나 조셉의 와이프를 부추기기도 하지만... 최소한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에게 친절하다. 댓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증명을 원하지도 않고 그냥 친절하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다고. 

 

많은 사령관들이 자기 나름대로 각각의 여자들에게 잘해준다. 지가 생각하는 친절을 일방적으로 베풀고 '고맙다고 해야지?'하거등.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하나(많이) 있다. 이렇게 대놓고 '너는 왜 나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지? 내가 너에게 이렇게 베푸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글쎄, 나는 '나에게 베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너에게 친절을 베풀고 헌신하고 희생하고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걸 보통 사랑이라고 하나? 현실 인간이 그냥 조금 친절하기는 힘든 모양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겁니다! 서로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나오니꽈 말입니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여성주의자(혹은 인권운동가)들이 나오는 것도 재밌다. 물론 안여성주의자인 여자들도 많고, 여성주의자 중에서도 온건파 급진파가 나오는 게 재밌음요. 대놓고 똘똘한 딸은 골칫꺼리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재미없지만, 목표하는 바는 같으나 달성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려고 싸우고 부딪히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헤어지고 다시 뭉치고 하는 게 좋다. 드라마니까 결국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기도 하지요. 

 

 

진짜 덧.

글고보니 한 4년 전에 나에게 '여자가 재주가 많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던 피아노학원 선생이 있었다. 나이가 들만큼 든 여자가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 낳고 피아노 배운답시고 깝치는 걸로 보였던 모양? ㅋㅋ 근데 나는 사랑을 하고 주고 싶은 타입이지 사랑을 받고 싶은 타입은 아닌 걸로 안다. 사랑을 받아도 별로 기뻐하거나 감사하질 않는 배은망덕한 인간이더라고. 

 

또 덧.

카페에서 옆 테이블 아줌마들이 '애 낳고 키우는 건 자기 자신이 아닌가? 그걸로는 자기를 발전 시킬 수 없는 거야?' 뭐 그런 말을 해서 터지고 말았다. 여자라고 다 여성주의자란 법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냥 현실적으로다가. 그럼 출산 육아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아줌마가 애 한 열명쯤 낳고 키우면 되지 않겠슴? 인구절벽 문제도 없어지잖소. 그리고 애 열명을 제대로 사랑을 주면서 키우면 그 사람은 산채로 열반에 들 것이야. 눈 뜨고 천국갈 수 있다고.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는 보통 인간은 애 한명도 제대로 사랑을 주면서 키우는 게 어렵다는 거겠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