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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마스터클래스

피아노 마스터클래스를 즐겨보는 편이다. 특히 바렌보임-랑랑, 쉬프-바틀렛 마스터 클래스는 스트레스 받을 때 보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로 좋다. 현실은 잊고 천상계에서 음악을 논하는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그게 나만의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마스터클래스는 음악 쪽에만 있는 특이한 수업이자 공연이다. 

수업을 공개적으로 하는데 음악을 연주하니 공연의 성격이 있기도 하다. 오픈클래스라고나 할까. 다만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위에 있는 사람 한명일 뿐이다. 애초에 학생의 연주를 먼저 듣고, 그 연주를 평가/비판하고 대가가 해석하는 방식으로 연주하게 하는 1:1 개인수업이거등요. 그래서 보는 사람은 능력에 따라 무언가를 얻을 수도 못 얻을 수도 있다. 

 

대가가 가르치는 마스터클래스는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1. 너무나 진지하고 진지하여 겁나 재미없음. 

2. 대가가 학생을 가학적으로 대해서 재미없음.

 

이런 상황이 발생되는 제일 큰 이유는 대가의 마음에 들 수 있는 학생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일단 대가님이 대체로 속이 터진다. 그래서 1번 = 어떻게든 애정을 갖고 그러나 기계적으로 가르치려는 경우가 있고(이런 속이 넓은 대가님이 많지 않다는 사실), 혹은 굉장히 대놓고 학생을 구박해서 2번의 상황을 유발한다. 

 

여기서 학생을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대체로 바렌보임이나 시프같은 대가에게 공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건 이미 피아니스트란 뜻이다. 학생이라면 그 음대에서 잘하는 애를 고르고 골라 뽑아서 몇달씩 마스터클래스를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무대에 나온다. 그냥 좀 잘하는 애 데려다 띡 올려놓는 게 아니라는 거임. 한국 음대에서 이런 '급'의 마스터를 데려다 클래스 하는 일 없죠잉. 유럽이나 미국의 대표 음대에서나 할 수 있는 짓이여. 돈도 허벌나게 든다고. 

 

그리고 재밌는 사실. 

청자는 쉽게 대가나 평가하는 입장에 앉는다. 학생보다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쪽에 감정이입을 한다는 뜻입죠. 

그래서 선생이 학생을 좀 가학적으로 대해도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난 몇달간의 준비와 연습이 밴 손꾸락 움직임을 한방에 내던지지 못하는 매너리즘을 욕하는 건 참 쉽죠잉. 

대중의 이런 습성을 너무나 잘 알아서 2018년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시프-바틀렛 마스터클래스 홍보영상이 시프가 바틀렛을 구박하는 영상이다 ㅋㅋ 내가 해당 마스터클래스를 다 봤는데 전체적으로는 아주 좋았는데 그 중에서 하필이면 대가가 학생을 구박하는 장면만 딱 골라서 올린 거임. 그 홍보영상의 댓글도 가관임. 다들 대가님들이셔. 

 

여기서 함정이 있어요. 

시프는 확실하게 바틀렛을 이뻐하거등. 왜냐면 바틀렛이 잘하니까. 

바렌보임이 랑랑 가르칠 때도 보면 도중엔 완전히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있다고 느낄 정도이다. 아주 이뻐 죽는다고.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랑랑이 지휘를 바렌보임한테 배운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랑랑은 뭐, 에센바흐한테 배워도 되고... 에센바흐-랑랑도 협연할 때 보면 지들끼리 아주 좋아 죽어요. 

 

물론 시프가 바틀렛을 대하는 게 바렌보임이 랑랑을 대하는 것과 같냐하면 그건 아님. 하지만 가르치는 기쁨 혹은 척척 알아듣는 학생을 만난 것에 대한 즐거움이 분명히 있거등.

근데 왜 이걸 못 보는 거지=_=? 시프의 마스터클래스를 받을 실력도 없고, 그 페스티벌을 가거나 마스터클래스를 돈주고 결제해서 볼 돈도 없고, 뻔히 보이는 이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읽는 눈치도 없는 중생들이여. 이런 건 동서가 없구나. 다 등신이여. 

 

 

덧. 

시프는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바렌보임 공연은 세번정도 실제로 봤다. 엉뚱한데서 박수치는 관객에게 하지 말라고 '지휘'를 할 정도로 꼰대력이 높은 할배였다. 래틀같은 말랑말랑함 따위는 개나 줘버려. 근데 이런 할배가 랑랑이랑 연주만 하면 눈빛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