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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자들

고양이의 이상행동

다른 말로는 치매라고도 하는 모양. 

이상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해봤으나 나온 게 없다. 몸은 하여간에 겁나 건강하다는 결과만 나왔으니 몸이 아파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건 아니라는 뜻. 병원에선 애가 얌전해지는 약을 먹이라는데 진정제는 먹일 생각이 없다. 나는 내일 죽어도 내 꼴리는대로 살다 죽겠다는 쪽이기 때문에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진정제를 먹지 않을 거임. 원래 치매 걸린 사람도 안 힘들어. 주변 사람이 힘들지. 하지만 나는 힘든게 싫으므로 얘를 내보내기로 했다. 어디로? 옥상으로.

 

내 고양이는 현재 햇수로 꽉 채워 열살이다. 막 세살이 됐을 때 나한테 왔는데 내가 이 녀석을 키우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애가 훈련이 이미 되어 있고 얌전하고 말을 잘 들어서'였다. 실제로 키우면서 어려움이란 걸 경험해본 적이 없다. 손톱은 장난으로라도 세운 적이 없고 실수로 그러면 즉각 지적했다. 그럼 손톱을 다시 숨기는 애였다. 목욕도 양치도 손톱 깍는 것도, 약을 먹이는 것도 좋아하진 않았지만 해야할 땐 그냥 얌전히 당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얌전할 수록 빨리 끝난다는 걸 고양이도 아는 것 같았다. 내 정신승리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랬던 애가 일년 전부턴가 자기 의지를 꽤 보이게 됐다. 그래봐야 하악대는 정도였는데 그걸 나한테 한다는 게 문제였지. 그래도 방어적인 하악질이라 그냥 내버려뒀다. 어차피 덤비진 못하고 뭐가 마음에 안 들면 하악하면서 피하는 정도였음.

근데 한달 반 전에 똥을 엉덩이에 묻히고 나와서 씻기려고 했더니 쌩 난리가 났다. 하악대고 으르렁대고 손톱을 세우고 덤볐는데 이 고양이를 키운지 8년만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키우는 동물이 나에게 덤비고 무엇보다 집안에 똥을 묻히고 다니는 걸 두고 보는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후드려 팼다. 나는 아직도 의문인 게, 4킬로 짜리를 60킬로짜리가 후드려 팼는데 타격이 없는 것이었다. -_-? 물론 혹시라도 뼈 상할까봐 엉덩이 쪽만 때리긴 했지만 좀 아파하고 멍이 들면 절뚝 거리고 해야하는 거 아냐? 멍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아무리 혼내고 때려도 애가 기력이 떨어지지 않아서 되려 쥐어 패는 내가 나가 떨어진 셈이다. 흥분한 녀석을 케이지에 넣고 베란다에 내놨다. 

근데 2-3일이 지나도록 케이지 안에서 있으면서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더라능. 뭐지... 이 체력. 

 

그 똥을 닦지 못한 채였으므로 좀 굶었다고 집에 풀어놓을 수도 없었다. 이미 도망다니고 후드려 패면서 온 집안에 칠해놨던 똥을 닦은지 이틀밖에 안 지났다고. 똥파티를 할 수는 없었으므로 케이지에서 꺼내려면 화장실에서 목욕을 해야했고 그러면 다시 그 공격성을 보이는 상태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 먹이를 줄 수가 없어서 츄르를 줬는데 무슨 게눈 감추듯이 먹더라능. 보통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렇게까지 흥분을 하면 입맛이 없는데 얘는 그것도 아니었다. 으르렁대면서 추르를 흡입하는 고양이라니...=_= 그게 또 너무 웃겨서 동영상까지 찍어놨다. 

 

그래서 일단 고양이가 자기 구역이라고 생각하는 집이 아니라 옥상에 애를 내놨다. 여전히 케이지에 넣어서. 두달 전이니까 꽤 추웠는데 추위가 신경 쓰여서 한두시간 만에 데리고 내려오니 다시 그 상태였다. 그래서 12시간 이상, 혹은 밤새 밖에 내놨더니 그제야 좀 진정이 되었다능. 

그래서 데려와서 후딱 씻기고 정리를 하는데 이번엔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 애가 다시 미쳐버렸다. 왜 이제와서 청소기를 싫어하는 건가... 

 

처음 똥파티를 하고 한 열흘정도는 이 짓을 매일 했다. 하루에 한번은, 기분이 좋았다가도 무언가에 트리거가 되서 흥분하면서 오줌을 지리고 내가 잡으려고 하면 공격하고 그럼 다시 나한테 후드려 맞고, 그럼 또 무섭다고 오줌이랑 똥을 싸면서 막 뛰어댕긴다. 그러면서 물건 다 쓰러뜨리고 깨부시고 벽에 똥 칠하고 아주 버라이어티하게 집안 일을 시키더만. 

그래서 흥분하면 무조건 케이지에 넣고 옥상에 올려놓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내가 직접 만지지만 않으면, 지도 맞긴 싫은 건지 케이지로 들어가란 말은 정말 잘 들었음=ㅠ= (치매 맞능가.) 

 

병원에 가서 온갖 혈액검사, 호르몬 검사를 했더니 몸은 정상이라고 했고 진정제 먹이라는 처방을 받은 겁니다요. 인간도 치매에 걸렸을 때, 치매의 증상이 공격적이거나 흥분을 하는 거면 항불안증 같은 진정제 종류를 먹인다. 솔직히 그런 걸 먹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이든 고양이든. 

 

나의 결론은 안락사 아니면 가둬놓고 키우는 거였는데, 생각해보니 흥분하면 왠지 오줌 똥을 지리는데 집 안에 가둬놓고 키우다 사고치면 꺼내서 씻기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가둬놓고 키우는 건 패스. 안락사는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몸'이 건강한 경우는 안 해준단다. 정신이 안 건강한 걸 질병으로 안치는 건 인간이나 동물이나 같네요. (솔직히 한심하다고 느낀다.)

 

여튼 결론은 옥상행이었고 옥상에 올라간지 이틀만에 완벽적응을 해서 밥을 겁나 먹는다. 그러니 살도 찌고 물도 겁나 많이 먹고 싸기도 겁나 싸대는 울트라 반야생고양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열번씩 올라가서 확인을 했는데 너무 잘 살아서 지금은 하루에 서너번만 올라가서 밥 주면서 확인을 한다. 하루에 한번은 안아서 집으로 데려와서 투어를 해주기도 하는데 화장실만 들어가면 발작하는 중. 풀어주면 바로 옥상으로 도망간다. 공동주택 옥상인데 완전 지 집으로 생각하는 모냥--;; 

하긴 이제는 중형 비닐하우스까지 설치해놓고 그 안에 스크래쳐, 집, 밥그릇 물그릇, 캣타워, 화장실까지 완벽 구비를 해놨으니 자기만의 집도 있고 놀이터도 겁나 넓어진 거 아닌가. 게다가 양치도 목욕도 빗질도 안해도 되는 천국이여. 옥상이 더 좋은 게 당연한가?

 

안 위험하냐고? 위험하다. 다른 사람이 위험한 게 아니라 고양이가 위험한 짓을 해서 위험하다. 옥상 난간 위에 올라가서 세상 구경을 하고 있는 걸 몇번 봤으니까. 잘못하면 추락사의 위험이 있는 것이다. (처음봤을 땐 개쫄았네.) 그렇다고 빌라 옥상 전체에 펜스를 칠 돈도 없고 솔직히 돈이 있어도 그걸 과연 할까 싶다.

안전한 집에서 똥칠하며 지지고 볶는 게 나은 건지, 혹은 진정제 먹이고 고양이는 안전하고 나는 편하게 키우는 게 나은 건지, 아니면 위험한 옥상에서 고양이 꼴리는대로 사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왠지 옥상에서 살면서 더 건강해져서 좀 당황한 것도 사실임. 잇몸이랑 이빨 상태도 양치를 매일 할 때처럼 좋당께. 아이러니다. 도대체 나 없을 때 위에서 뭘하고 있는 건지 알수가 없으. 그리고 이런 상태를 보면 정말은 치매가 아니라 그냥 나이가 들어서 성격이 변한 것 같다. '내가 인간 나이로 치면 환갑이 넘었다, 이년아. 이젠 하기 싫은 건 안하고 살련다'하는 강력한 의지만 보임=ㅠ=

 

다행인 건 나님이 평소에 이웃들에게 잘해놔서 고양이 치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고양이가 어쩌다 빌라 복도로 나와서 헤매고 있으면 애 돌아다닌다고 연락이 온다. 애 잃어버릴 일도 없을 듯. 껄껄. 

 

 

결론 1. 옥상이라고 해도 두집살림은 힘들다. 청소할 공간만 늘었음. 

 

결론 2. 동물을 키우려면 사용가능한 넒고 쓸만한 베란다가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여차하면 거기에 격리를 시켜도 되고 아니면 집을 만들어 줄 수 있응께. 그래서 나의 다음 집은 넓은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인 걸로. 문제는 당장 이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최소 2-3년은 기다려야 한다. 저 고양이 년이 좀 더 안전한 옥상으로 가는데 2-3년이 걸린다는 말이고 나는 저 년이 죽을 때까지 두집살림을 해야한다는 뜻.

 

결론3. 의지를 갖고 있는 고양이 혹은 치매에 걸린 고양이는 주인을 조금 피곤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