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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지하다

팔콘 윈터솔져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볼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주연보다 버키 배우가 연기를 잘하네...? 물론 크리스 에반스에겐 멋진 몸매와 각진 턱과 선량한 눈빛이 있긴 하지. 근데 나는 아무리 봐도 캡틴 아메리카에 매력을 못 느끼는 인간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싫지만 괴롭힘은 싫다며 전쟁에 자원하고 엔간한 생명체의 목을 자를 수도 있는 '방패'를 공격용으로는 쓰지만 총은 안 갖고 다니므로 무슨 비폭력의 화신처럼 구는 것도 별로였다. 물론 이게 캐릭터가 가진 내적갈등으로 생각하면 매력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 요소가 캡틴 아메리카 자아나 정체성을 괴롭히는 갈등요소는 아니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대체로 거의 항상 자기가 옳다고 믿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였다고. (물론 캡틴 아메리카는 늘 거의 항상 옳다. 캡틴 아메리카가 옳다고 믿어서 옳은 게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가 옳은 걸 선택한다는 설정임. 물론 난 이것도 마음에 안 들어 ㅋㅋ)

 

여튼간에 세바스찬 스탠.

연기를 잘하는 세바스찬 스탠. 표정의 변화가 드라마틱 하진 않은데 그 안에 많은 감정을 담아내는 능력을 지닌 스탠. 점점 더 잘하는 스탠. 열일하는 스탠. 

윈터솔져 캐릭터가 좋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약간 (변태만화) 베르세르크의 그리피스가 좀 생각나는 스타일이긴 했다. 굉장히 멋지고 호남인 애가 고문으로 망가지고 다시 원래 자아를 찾으려고 한다는 서사는 주인공 같긴 함. 얘가 주인공이고 캡아가 조연이었으면 더 재밌었으려나=ㅠ=? 여튼 캐릭터에 별 매력은 못 느꼈지만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저 배우 괜찮네 했고, 스티브 에반스 영화는 찾아본적 없지만 세바스찬 스탠 영화는 곧잘 찾아봤다는 이야기. 

 

팔콘 윈터솔져는 사실 그닥 관심이 없었다. 일단 캡틴이랑 브로맨스 찍었던 베프 둘이 다시 브로맨스를 찍겠다고 붙여 놓았으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건가. 일단 그 구심점인 캡아를 안 좋아했고, 캡아랑 버키 관계도 별로였거등. 팔콘이랑 캡틴 관계도 뭔가... 친구라기엔 근본적으론 상하관계라 '타고나길 여자'(혹은 아싸)인 나는 그런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팔콘 배우인 앤소니 마키는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긴 한데 그 사람이 구사하는 유머가 차별이나 편견에 기반한 경우가 꽤 많았다. 떠들게 내버려두면 한번은 꼭 실수를 하더라고. 근데 주변에서 괜찮다 재밌다 해주는 것 같고 가끔 분위기 싸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본인도 그걸 못 느끼는 모냥? (혹은 농담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겠지.)

 

여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세바스찬 스탠이 나와서 볼 생각은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은 없었던 팔콘 윈터솔져. 뚜껑을 열어보니 재밌네=ㅠ=ㅋ 완다비전이 현실에서 도피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이건 생생한 현실을 그려낸다. 세상을 구한 영웅이지만 팔콘이나 윈터솔져가 살아가는 현실은 생활감이 가득차있다. 여기에 '미국인이 보기에 불편한' 인종갈등과 먹고사니즘(?) 서사를 때려박아놓았다. 헐. 

 

그리고 버키는 거의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눈깔에 힘준 상태인 무표정인데 그 얼굴로 피곤 짜증 의문을 다 담아내면서 웃기는 데 그게 느무 좋은 거다. 씩 웃는 장면에서는 그 짧은 프레임에 웃으면서 떨떠름한 감정을 보이고 짜증을 다 넣는 것도, 그 모든 게 캐릭터에 마즘.  

새로운 캡아인 워커도 흥미롭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상징에 짖눌리는 일반인, 대중 앞에서 호남형 전쟁영웅, 실제 전투에서도 능력자, 장교로서 보이는 자심감과 그에 따라오는 오만함이 다 담겨있단 말입니다. 워커는 정부가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서 내세운 사람이므로 자격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자격이 있다고 맞는 사람은 아닌 법이거등. 여튼 캐릭터 잘 만들었음. 

 

그리고 이자야. 한씬 나왔는데 카리스마 쩌는 할배. 국가에 이용 당했으면서도 국가를 위해서 일했고 그럼에도 다시 국가에 이용당하고 결국엔 버림받은 (마블의) 초창기 슈퍼솔져 중 하나로 나온다. 

만화에서는 '백인'에게 슈퍼솔져 세럼을 실험하기 전에 흑인 군인들에게 먼저 실험을 하는데, 대체로 다 실패하고 그 중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이자 첫번째 캡틴 아메리카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미 성공한 실험을 이자야에게도 한 걸로 나온다. 스티브 로저스가 빙하인지 뭐시긴지에 갇혀있을 때 활동했던 익명의 슈퍼솔져였던 것. 이자야도 군대와 슈퍼솔져 프로그램에 자원했을 것이다. 물론 스티브 로저스와는 다른 이유로.

 

미군의 전력에서 유색인종이나 하위계층은 없어선 안될 존재라고나 할까여. 군인일 때는 안정적인 월급이 나오고 퇴역하면 약간의 지원금이 나온다던가 연금이 나오는 식으로 (혹은 시민권을 준다던가, 동등한 권리를 준다던가 하는 떡밥을 던져서) 말단 보병인력을 채우걸랑요. 부자 백인들이나 국가를 위해 대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여하간 자기가 믿는 무언가를 위해서, 혹은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영국 왕실의 경우 ㅋ) 군대에 간다. 사회적 약자나 가난뱅이들에겐 군대가 계급상승의 수단이 된다. 백인 가난뱅이도 마찬가지임. 그럼 군대 안에선 제대로 된 대접을 받냐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거시 문제이고 그걸 상징하는 캐릭터가 이자야인 거임. (흑인 군인들이 실험대상이었던 건 실제 미국사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팔콘 윈터솔져의 주제가 나오네요. 팔콘의 (미국 흑인 히어로의) 정체성 찾기와 윈터솔져의 속죄와 재기. 요즘 나오는 작품이 대체로 정체성을 다루는 건 MCU 페이즈 1과 같은데 그때보다 더 세련되고 더 섬세하다. 더 다양한 건 말할 것도 없지. 하여간 캐릭터 하나는 허벌나게 잘 만든다. 

완다비젼과 팔콘윈터솔져도 이렇게 좋은데, 로키는 얼마나 좋은겨=ㅠ=? 얼마나 좋길래 프리미어도 안하고 시즌2를 하겠다고 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