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뉴질랜드가 처음부터 마오리랑 사이가 좋았냐면, 아닙니다. 아니고요.
마오리어는 문자가 없었는데 알파벳으로나마 구전되던 이야기와 역사를 기록해놓기 시작한 때나, 초등학교에서 마오리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때가 대략 20년에서 30년 전이다.
내가 있던 2000년대 초반엔 마오리 사람은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크고 운동만 잘한다는 식으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많기도 했다. 다만, 마오리끼리 마오리 지역에서만 살진 않았다. 호주에선 애보리진을 캐나다에서는 북미원주민 만난 적도 없는데 비해 뉴질랜드에선 내가 일하던 카페 사장이 마오리라던가, 직원으로 같이 일하기도 했고 길바닥에서 지나치기도 하고 그랬다.
당시에 봤던 뉴질랜드 드라마가 아직 기억이 난다.
엘리트변호사인 여자주인공이 하루 종일 미친듯이 바쁘게 다니다가 집에 잠깐 들렀는데 남편이 남자랑 바람을 피고 있었다. 그리고 일만하고 산 자기가 잘 못 살았다고 깨닫고(ㅋㅋ) 이혼하고 일도 때려치우고 여자 손님을 위한 남자스트립클럽을 만든다. 그리고 거기서 스트리퍼로 일하던 젊은 친구랑 연애도 하고 그러는 내용이었는데, 그 스트리퍼가 마오리였다. 생긴 건 주연답게 잘 생겼고 성격이 다른 스테레오타입의 마오리랑 다르게 굉장히 친절하고 똑똑한 친구로 나왔었다. 연애는 시작했는데 남친에 대해 잘 모르고 '스트리퍼로 일하는 마오리'라는 편견에 박힌 언행을 하다 남주한테 쫑크를 먹기도 했지. 잘은 기억이 안나는데(당시에 영어를 잘 못하기도 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인지 대학원 학비 때문인지 스트리퍼 일을 하고 있는 거였다. (물론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언니들도 좋아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선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데 (한국에선 아님. 한국에선 아직도 겁나 선진적인 내용이다.) 저 드라마가 방영된게 20년 전인 걸 생각하면, 대다나다. 이 때 미국에선 인종보단 성차별을 극뽁하려는 드라마가 더 많았다. 여성이 느끼고 경험하는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잡은 섹스앤더시티가 대표적인데, 주인공 캐리의 절친 중 하나가 게이라던가 그런게 많았다. 윌앤그레이스도 게이라이프에 대한 드라마이기도 함. 물론 이성애자 여성이 가진 게이라이프에 대한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너무나 게이스럽긴 하지만 윌역의 에릭 맥코맥도 이성애자 남자다. 이후에 퀴어애즈포크, 엘 워드가 나오면서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정점을 찍고 그 다음엔 그냥 소재로 거의 모든 드라마에 스며들게 된다. 그런 면에서 뉴질랜드의 저 드라마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마오리 인종문제를 같이 다룬다고 할 수 있져. 훈늉해여.
뉴질랜드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인종차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내가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경험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내가 뉴질랜드에서 처음 본 인종차별은 한국인이 중국인 차별하는 거였다.) 내가 있을 때도 마오리는 소외계층이었고 지금도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긴 힘들 수 있다. 특히 뉴질랜드 경제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을 걸 생각하면, 삶이 팍팍할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지금은 마오리들이 꽤 평범하고 재밌고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이 마오리라는 것이 싫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뉴질랜드 백인들도 딱히 하카를 하거나 키아오라하고 인사하는 마오리를 보고 진저리를 치지 않는다. (애초에 9시 뉴스에서 하는 인사가 키아오라임 ㅋ)
나이가 좀 있는 마오리는 젊은 애들이 마오리 전통문화보다는 미국(혹은 외국 혹은 현대) 문화에 빠져있다고 하는데, 어느 나라 젊은이들이 미국 문화에 안 빠져있겠어=ㅠ=
그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이 좋아지긴 한다. 다만, 바꾸려고 노오력을 해야한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막하는 노력 말고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해야함. 물론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그냥 모른 척 하고 살아도 된다. 왜냐면 모른척하다보면 진짜 모르게 되거등. 나는 '내가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성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여자 사람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에서 아서 덴트가 지구가 없어진 걸 인지하는데 그런 말을 한다. '뉴욕. 뉴욕이 사라졌다. 아냐. 애초에 뉴욕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어본 적도 없어. 맥도날드. 맥도날드가 없어진 거구나!!'라고. 내가 본 적 없고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대다나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