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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뉴질랜드는 왜 그럴까

0. 싸움 구경이 세상 제일 재밌다고 하지만...

의사들 싸움 정말 재밌다. 요즘 제일 재밌음=ㅠ=

그 싸움을 하다 보면 점점 흥분해서 더 흥분하고 더 흥분하고 그래서 애초에 왜 싸움이 났는지 기억을 못하는 일이 많잖아? 약간 그런 느낌인데 단체로 그러니까 재밌다. 근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싸움이 난 이유가 '왜 내 말 안들어, 내가 전문간데, 빼액'이니까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1. 본론으로 들어가서, 뉴질랜드에서 한국 외교관이 성추행한 사건 말이죠. 내가 이 뉴스를 보고 막 웃고는 까먹고 있었는데, 뉴질랜드는 이거 절대 안 까먹을 거다. 그리고 실제로 뉴질랜드에선 이게 무지막지하게 엄청나고 큰 일이 맞다.

 

내가 뉴질랜드에 2001년에 가서 일년 정도 있었는데 그 때도 들었던 말이 뉴질랜드는 경제적으로는 이미 옛날에 망했어야 하는 나란데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청렴해서 유지되는 이상한 나라라고 했었다. 이런 말을 뉴질랜드 사람이 했냐면 그런 게 아니라 이민자들이 했다. 지지고 볶는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일 수록 미치도록 조용하고 평화로운 뉴질랜드가 신기했던 모양. 뉴질랜드 사람들은? 그냥 저냥 느긋하게 잘 살고 있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조용하고 일자리 없는데선 못 살겠어! 이러면서 뛰쳐나오는 모양이지만.

 

예를들면 2001년에 봤던 뉴스가,

놀러 갔다가 물이 불어서 몇시간? 정도 고립되었던 가족이 멀쩡한 모습으로 구조되는 뉴스가 그날의 헤드라인으로 떴고 (화면을 보면 위험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 게다가 날씨도 졸라 좋음.)

뉴질랜드 국회의원이 싸울 일이라곤 '국회에서 더 좋은 자리에 앉겠다고 경쟁'하는 게 다고, 이것도 뉴스에 며칠씩 나오면서 국회의원을 비웃었다. (허허.)

 

내가 있을 땐 중도당의 여성이 총리였고, 지금은 진보당의 여성이 총리다. 집권당이 과반수가 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거의 항상 소수정당과 동맹을 맺고 같이 의회를 장악(?!)하는데, 그 때 하는 로비과정 조차도 다 공개하는 식이고, 나 있을 땐 집권당과 녹색당이 손을 잡았다. 녹색당이 크진 않은데(=지지율이 그렇게 높진 않은데) 뉴질랜드 사람들의 정서상 녹색당의 정책을 좋아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집권당이 녹색당 선택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

 

그 이후에도 크라이스트 쳐치에서 지진이 났을 때 우리나라같으면 빨리 피해복구에 집중했을 텐데 뉴질랜드는 '우리의 무관심과 무성의' 혹은 '돈에 미쳐서 개발만 했기' 때문에 지진의 피해가 더 커졌다며 피해공간(=크라이스트쳐치의 중심가)을 그대로 두고, 앞으로 여기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두고 대토론회에 들어갔다. (...)

국제적인 개발업자와 호텔프랜차이즈가 '우리가 복구를 도와줄테니 고층빌딩 짓게 해죠' 했지만 뉴질랜드는 '싫어' 했져. 그래서 크라이스트쳐치 시민들이 희망하는 바와 개발업자가 원하는 바를 지방정부가 조율하고, 그걸 토대로 도시디자이너가 설계를 하는... 도대체가 백날천날 걸려서 숨이 막힐 지경인 속도로 의사결정을 하고 디자인을 하고 다시 동의를 얻고 그 다음에 공사에 들어가는, 한국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거기선 일어나고 있는 거시다. 물론 이런 행정속도를 '정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느려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근데 그런 일련의 과정을 싫어하거나 동의하지 않는게 아니거등. 그냥 너무 느려서 싫은 거지.

 

이렇게 평화롭고 시시하고 아무 일도 없는 나라에서 외국의 외교관이 성추행하고 토끼고 그걸 그 나라 정부에서 막 감싸줌. 뉴질랜드가 그런 일을 잊어버릴리가 있겠냐. 그 뉴스 없는 나라에서 이게 얼마나 큰 뉴스인지 한국 사람은 이해를 못할 것이다. 이 정도면 헤드라인 뉴스로 며칠씩 도배될만한 뉴스여.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총기난사 사고나 그걸 해결하는 방식, 그게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뉴스를 점령했던 걸 보면...

 

국가 간에는 사과를 막 하는 게 아니라고? 꼰대가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난다. 인간들이 쪽팔린 걸 몰라. 아니면 한국에 살다보면 쪽이 없어지는 걸지도.

 

 

1-2. 뉴질랜드에 관한 사소하고 소소한 사실.

동성결혼을 발의하고 통과하게끔 설득하고 다닌 사람은 보수당의 이성애자 중년남성 의원이다.

총기난사 사건이 있을 때 의회에서 총기소유에 관한 규제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총기를 반납하기도 했다.

이미 2001년에 비건 메뉴가 카페든 레스토랑에든 꼭 하나씩은 있었다. (유럽에도 2010년대 초반에나 이런 유행이 돌았다.)

영화감독 타이카 와이티티가 뉴질랜드 출신이다. 피터 잭슨도 뉴질랜드 출신이다. 

뉴질랜드 총리 재신더 아더는 남친이랑 동거 중이고 결혼을 안 한채로 아이가 있다.

타이카 와이티티가 재신더 아더를 굉장히 좋아한다.

뉴질랜드 농담은 대체로 말라비틀어진 느낌. 영국의 시니컬하고 건조한 유머도 바짝 말려버릴 정도로 건조하다.

뉴질랜드나 호주나 영국, 미국에서 들어오는 양질의 TV쇼가 겁나 많아서 자체 제작은 잘 안/못 하지만 지역색이 강한 자체제작 드라마가 꽤 재밌긴 하다. 한국에 수입은 안되지만, 거기 있을 땐 챙겨봤던 기억이 난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모두 영국 연방인데, 딱히 영국 왕실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나이 많은 분들은 여왕은 좋아하는 편) 총리가 실정을 했을 때 여왕이 '총리를 한방이 짤라버릴 수 있다'는 관념을 갖고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ㅋㅋㅋ 근데 이거 진짜 맞는지 모르겠다. 이런 설문조사가 있었다고 했는데 내가 직접 보고 확인한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