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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자들

애완이든 반려든

사실 둘 다 아니다. 뭐라고 지칭하든 상관없지만 둘 다 입에 감기는 단어는 아니다. 그냥 내 고양이, 내 화분임. 정확히는 화분에 심어진 식물이지만.

 

난 딱히 내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계가 별로 평등하지가 않아서. 나는 집사가 아니라 내 고양이의 주인이다. 식물도 꽤나 키우고 있는데 그 식물도 반려는 아니다. 그냥 내가 키우고 싶어서 키우는 거지 얘들이 내가 좋아서 같이 살자고 막 덤비고 그랬던 게 아니다. 특히 고양이는 원래 주인이 못 키우게 돼서 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게 오게 됐다. 나는 플랫메이트가 고양이를 키운 경우가 여러번 있어서 기회가 되면 고양이을 키우고 싶었고 기회가 와서 그냥 받아들였다. 내 고양이는 아마도 세 살 때쯤부터 나랑 살기 시작했고 4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그 사실이 너무 싫었던 고양이는 처음 일주일 동안 밥도 안 먹고 피아노 뒤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애완이라고 하기엔 뭔가 내가 막 얘들을 사랑하고 귀여워하진 않거등. 꽃이 피면 좋지만 그건 내 기분을 위한 거지 나의 꽃나무가 건강해서 꽃을 많이 피웠다고 깨춤을 추진 않는다. 고양이도 애정이 있지만 그건 달리 다른 선택지가 없던 고양이가 먼저 나에게 관심을 주고 사랑을 주고 내가 거지 같은 보호자라도 받아들여서 나도 이 애를 좋아하게 된 거다. 그것도 뭐 내 우울증이 심해지면 좋아하는 감정과는 상관없이 잘 챙겨주는 게 힘들다.

 

외국 생활을 할 때 가끔 나에게 '한국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는데 진짜냐'고 물어보곤 했다. 나는 딱히 이런 걸 창피해하거나 하는 인종은 아니라, '고양이를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개는 전문식당이 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한국인에게 개와 고양이는 pet이 아니라 animal이라고.' 그리고 개를 좋아하는 것과 먹는 거는 또 다르다. 개를 키우고 싶어 하지도 않고 별로 관심도 없지만 개를 안 먹는 사람도 있고, 개가 옆에 있으면 귀여워하지만 개를 먹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인간이라고 뭐든지 다 먹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뭐든지 다 먹을 수는 있다. 누가 막는 것도 아니니께. 손쉽게 키울 수 있고 경제성이 있는 걸 먹었던 거고 한국인에게 개는 키우기 쉽고 평소에 집을 지키는 등 이용할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는 일종의 비상식량 같은 거였다. 지금도 한국 사람은 개를 교육하거나 훈련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별로 없다. 조선시대 선비 중에 동물을 훈육해서 생활(?)에 이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말이나 새 말고도 레알 취미로... 근데 그 경우에도 (적어도 내가 본 텍스트에서는) 동물을 훈육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 같은 느낌이지 요즘처럼 '발 줘봐 했을 때 개가 발을 주니 주인이 기쁘더라'하는 둥물의 재롱에 기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도 내 고양이에게 딱 한 가지, 사람에게 발톱을 세우는 것 이외에는 아무련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화장실은 안 가르쳐도 자기 스스로 잘 봤다.)

 

인간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영락없는 관심종자라 자기가 딱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생명체에도 관심받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또한 인간은 본전 생각의 동물이라 내가 얘한테 이걸 해줬으니 얘도 나한테 이만큼은 했으면 하길 바란다. 여기엔 내가 너에게 밥을 먹여줬으니 너는 내 밥이 되어라 하는 1대 1 교환적 사고방식도 있고 동물원에 가서 내가 기껏 입장료 내고 들어왔는데 왜 쳐 자냐며 동물에게 돌이나 동전을 던지며 관심과 재롱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내 돈 주고 샀으니 이 동물은 내 소유이므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본전 생각+관심종자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인 거지.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도시화될수록 자본주의 사회가 될수록 심해진다. 그리고 시골에서 동물은 종에 상관없이 도구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인간은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에 한가지 요소가 더 있는데 동식물은 만만하다. 동물은 죽여본 적이 없지만 나도 곤충류는 꽤나 죽여봤고 본의는 아니지만 꽤나 많은 식물도 죽여봤다. 그게 별로 자랑스럽진 않지만 키우던 식물이 죽었다고 가슴이 막 찢어지거나 죄책감에 절어서 폐인이 되진 않는다. 동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미 내 고양이가 아플 경우, 그 정도에 따라 어디까지 치료를 지속하고 언제쯤에 포기할지 정해놓았다. 내 고양이가 삶을 지속하고 싶어 하든 말든 나는 알 수가 없고 내가 그동안 키웠고 병간호도 내가 할 것이고 내 고양이니까 내가 결정한다.

 

지식이 없던 상태에서 고양이를 입양해서 나름 너무 이뻐한 나머지 이틀만에 새끼 고양이를 죽게 만든 사람을 안다. 이틀을 울고 불고 그 뒤로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고양이에 대해 공부하고 온 동네 고양이를 키우는 고양이처럼 매일 물고 밥을 챙겨주고 쉘터를 만들어주고 아픈 애를 보면 약도 타다 주는 사람이다. 이 경우는 정말 트라우마가 컸던 경우다. 보통은 동물을 좋아해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거든. 하지만 동시에 그 새끼 고양이가 인간 새끼였다면 이틀 울고불고하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그러니, 동물은 아무리 동물권을 떠들어봐야 그 생명의 무게가 인간이나 특정한 목적이나 이익이 결부된 동물과 같을 수가 없다. 상대적으로 심리적 부담이 없는 거지. 인간 잘 못 키웠을 때랑 키우는 개나 고양이 잘 못 키웠을 때의 후폭풍이나 감정적 무게도 다르다. 다른 게 당연함.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말고는 정말 현실적인 문제다. 이상적으로 약자니까, 동물도 함께 지구에 살고 있으니까 하는 운운은 내가 보기엔 정말 쓸데없는 소리로 느껴진다. 동물은 인간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인간에 의해 멸종된 동물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사람에 잡아 죽여서 멸종된 게 아니라 단지 인간의 생활습관 때문에 멸종된 동물이 정말 많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원 동물이 잘 못 관리 됐을 때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소리는 뭘 몰라도 어지간히 모르고 하는 소리다. 돌아갈 자연이 있기는 한가? 돌아갈 자연이 존재할 수 있게끔 환경친화적인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어? 아니면 국민은 지꼴리는대로 살 거지만 행정부 혼자서 자연환경을 막 보호하고 숲을 만들고 해야 하나? 국가란 어차피 인간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민'이 많아니지까 반려동물에 대한 논의나 법령이 생기는 거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왜 이상적인 법령을 못 만들겠어. 그런 이상적인 소리를 할 수 있을 만큼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고 나서 막장스러운 일이 더 많이 일어나면 그때 마지못해 만들어질 것이다.

 

동물을 키우는 모든 인간이 동물을 인간 자식처럼 살뜰하게 보길 바라는 건 내 보기엔 별로 현실성이 없다. 아니, 한국의 청소년 자살율을 보라고. 과연 한국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식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사는 공간이고 그런 문화를 갖고 있을까? 한국은 굉장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문화인데도 200-400자 정도 되는 기사만 보고 사형을 하네 마네, 추방을 하네 마네 하면서 인간을 대하는데 '동물도 생명이니까 잘 대해야 해요. 생명은 소즁하니꽈. ♡'가 되겠냐고. 나랑 썩 친하게 지내는 이웃집 할머니는 밑도 끝도 없이 짐승이 싫다고 하고, 없는 말까지 지어내며 길냥이한테 밥 주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거기다 대고 내가 '어맛, 어떻게 생명에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면 내가 미친년이 되지 그 이웃들이 매정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동물 좋아한다고 좋은 사람 아니고 동물 싫어한다고 나쁜 사람 아니다. 히틀러도 자기 개는 끔찍이 아꼈다. 사람을 판단하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하고 단면만 봐도 안 된다.

 

보통 동물을 키우려면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동물은 돈이 많이 들고 털도 많이 빠지고 시간을 들여서 놀아줘야 한다는 둥 이야기를 한다.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이건 주어를 잘못 붙였다. 뭔가를 키우면 그게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내가 어떤 인간이지 알게 해준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동물에 대한 게 아니라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 대한 거다. 나는 본전 생각을 하는 인간인가 안 하는 인간인가, 나에게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는가, 나에게 동물에게 쏟을 시간과 정성과 관심이 있는가, 나는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 사람인가, 나는 사랑 받기만을 원하는가 아니면 줄 수도 있는 인간인가, 나의 설레발은 어느 정도인가, 나의 관종 지수는 얼마인가, 나는 끌려다니는 인간인가 끌어주는 인간인가, 나에게 생명과 삶을 짊어질 체력과 의지가 있는가 등등. 내가 충분히 좋은 인간이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무언가를 키우기 시작해도 머지않아 나라는 인간의 현실(바닥)을 보게 되어 있다. 낭만이나 러블리 따위 1도 없음. 나는 주변 사람이 '동물을 키워보면 어떨까' 상담을 하면 생명을 키우고 돌보고 사랑하는 게 인간의 정서에 좋으니 괜찮은 편이라고 말해주는 편이다. 동물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동물이 나에게 기쁨을 주고 하는 짓이 귀엽고 예뻐서가 아니라 돌보고 사랑을 하는 데서 만족을 느끼게 하는 매개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돌보는 기쁨이나 사랑을 하는 감정을 모르는 사람은 키워봤자 별 의미가 없다.

 

 

 

덧.

사료를 제공하긴 하지만 나는 캣맘이 아니다. 그리고 고양이가 싫다는 사람을 대할 때는 대부분 회유를 하고 가끔 자연스럽게 내 고양이를 보이면서 고양이가 도깨비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가끔 참을 수 없는 거짓말을 하면 나는 마치 그 거짓말을 백퍼 믿는 것처럼 행동하며 에둘러 협박을 한다. 이럴 때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게 사회적 지위(위치)라는 거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