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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내적갈등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이라는 드라마를 뒤늦게 보게 됐는데...

너무 웃긴데 동시에 너무 창피해서 못 보겠다. ㅋㅋㅋ

예전엔 '스스로 진보라고 말 하지만 하는 짓은 아니라 바보짓을 반복하는 (혹은 쪽팔린 짓을 계속하는) 캐릭터'가 그냥 웃기고 재밌어서 좋았는데 요즘은 나까지 덩달아 창피해져서 잘 못 본다. 드디어 나 자신의 실체를 바라 볼 수 있게 된 걸까?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실제의 나가 다른 예는 (나를 포함해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트럼프는 곧 죽어도 인종차별 안 한다고 하고, 한국의 민주당은 지네가 여성친화적인 당이래. 동물을 좋아하지만 책임지는 건 싫어서 개나 고양이를 어렸을 때만 키우고 1년이 지나면 내다 버리거나 '시골'에 보내는 사람도 많다.

이건 그래도 백인이 유색인종 차별하고, 인간이 동물을 함부로 다루고, 남성성(민주당)이 여성성을 차별하는 거라고 쳐서 이해할만 하지만(?) 유색인종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일도 겁나 흔하고 여자가 여자 차별하는 일도 발에 치인다.

 

개인만 그러냐면 전혀 그렇지 않죱. 인간이란 종 자체가 그런 경향이 있다. (고 생각한다.)

요즘 날씨 미쳤는데, 날씨가 미친 건 대체로 사람 때문이거등. 날씨가 미쳐서 갈때까지 가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는데 지구는 그런 걸로 멸망 안하고 인간의 멸망이 지구의 멸망도 아니다. 기껏해야 인간이 멸망하는 거겠지. 그러니 딱히 지구에 미안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날씨가 미쳐서 인간이 억울할 일은 없잖아? 근데 인간은 에어컨 빵빵 틀면서 지구가 미쳤다고 억울해 한다. =ㅠ=ㅋ

인터스텔라에 나오잖슴. '우리는 지구를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구가 우리를 버렸다.'고.

 

소수자가 느끼는 내적갈등은 이보다 자잘하고 그래서 우습게 생각되고 그래서 돌보지 않는다.

꽤 예전 일이지만, 낢이라는 웹툰 작가가 결혼을 하고 신혼 때 여성이 느끼는 내적갈등을 그린 적이 있었다. 물론 페미니즘으로 풀진 않고 그냥 '공감가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하고 그린 것 같았는데...

여튼 내용이 '남편이나 그 누구도 부탁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못하는 밥을 하느라고 힘이 들어서 울면서 남편이 직장에 가져갈 도시락을 싸는 낢'이었다. 그때 만화를 보던 여자들한테 죄없는 남편까지 싸잡아서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결국 소송전이 되고 어쩌고 저쩌고 그 뒤로는 낢으로는 웹툰을 안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이름으로 한다는 건 아니다. 낢의 근황은 모름.)

 

'나도 대학 나왔고 나도 돈 벌고 나도 금전적으로 꿀릴 것 없고 그러니까 나는 (하찮은) 전업 가정주부는 아닌데 왜인지 전업 가정주부 혹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깨볶는 신혼부부의 모습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나'를 그렸다면 뭔가 달랐을까?

애초에 왜 깨 볶는 신혼부부의 모습이 마누라가 맛도 있고 보기에도 좋은 도시락을 싸주면 남편이 쑥쓰러워하고 매우 고마워하는 모습인지 고민하는 웹툰이었다면?

 

나는 별로 그렇게 생각 안한다. 나는 득달같이 달려가서 짖어댄 자칭 페미니스트들도 다 그런 내적갈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난에 '왜 너처럼 잘 나가는 년까지 구질구질하게 도시락을 싸고 자빠졌어'라는 뉘앙스가 있었거덩=ㅠ= 그건 내가 가진 내적갈등을 외부에서 봤을 때 느껴지는 껄끄러움과 짜증스러움을 해석하지 못하고 앞에 있는 사람에게 풀어낸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소수, 그 만화를 본 한남들이 마누라에게 '낢처럼 돈 잘 버는 여자도 이렇게 하는데 너는?' 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긴 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낢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냥 그 한남남편이 등신 아닌가. 딱히 낢이 욕 먹을 일은 아니져. (그런 새끼를 사귀거나 결혼한 니가 문제지.)

 

그 짖어댄 애들을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지징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키워진 사람이라면 느낄만한 내적갈등에 대한 해석없이, 분풀이를 아주 엉뚱한 사람에게 했기 때문이다. 메갈로 촉발된 분노한 꼬꼬마 페미니스트들이 머리를 채우기 전에 감정으로 밀어 붙인 사건이다. 그 때 동조하지 않았던 여성들도 '뭔가 양쪽 다 이해가 가긴 가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간 뭔가 미묘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낢 잘못은 아닌 거 아님?' 했던 것 같다. 이 사람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려나?

이렇게 네편 내편이 아닌 일이 생기는데, 네편 내편으로 나눠서 박터지게 싸우면 사건이 된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보기에 한국은 내적갈등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일단 덮어놓고 내편 네편으로 갈라치고만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