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그걸 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나는 이상은 없고 현실만 있는 인간이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무엇을 갖고 있는지,
내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사회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최소한 이 정도는 파악해야 현실에 대응을 할 수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이 바꼈으면 좋겠다면,
그렇담 내가 원하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그걸 위해서 해야하는 일이 뭔지, 그 일을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여서 진짜로 할 생각이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 과정 중에 뭐 하나 쉬운 게 없다는 사실이 다들 알만한 함정인 거임다.
그래서 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마음에 여유도 없고 하여간 이러저러그러한 이유로 아무것도 안/못 할 거지만 남이 세상 바꿔주면 땡큐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게으르거나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대체로 그렇게 돌아간다. 뭘 하네 마네 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게 정확하게 뭔지 그리고 그걸 위해서 뭐가 정확하게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게 현실이다.
그 왜, '하루에 10분만 이걸 하면 건강해집니다.' 혹은 '이것만 먹으면 몸이 좋아짐.' 등 이런 걸로 혹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했나? 사는 게 쉬웠나봐.'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기사나 블로그 글, 너튜브 제목만 보면 살 빼는 게 쉽고, 공부하는 게 쉽고, 돈버는 것도 쉽고, 건강을 지키는 것도 쉽고, 사랑을 지키는 것도 쉽고 하여간 세상이, 삶이, 인생이 허벌나게 쉬움.
그리고.
조 뭐시기 성범죄자의 미국송환이 불발 되니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구는 한녀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너네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같은 거 맞음? '국가나 법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음. 이젠 세상 혼자 사는 거임.' 하는 말을 들어도 '이걸 이제 알았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오히려 놀라게 된다.
아니, 그럼 한국 사법부가 피해자와 여성들의 원성을 듣고 범죄자 인도를 허락해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겨우 '야동 만들어서 유통'한 사람한테? 애초에 1년 6개월이면 충분히 벌 받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선고했자나. 이미 판결이 난 거 아니야.
1년 6개월만에 한국 천지가 개벽할 만한 사건이나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법부 내용물들이 싹 바뀐 것도 아니고, 한국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바뀐 것도 아니고, 행정부도 안 바꼈고, 국회는 바꼈지만 민주당이 새누리보다 훨씬~ 더 성중립적인 당은 아니다. 쬐끔은 나으려나=_=? 여튼간에 내 기준엔 그런 적 없는 당임. 아니, 애초에 여성문제를 잘 다루는 당 자체가 한국엔 없음.
게다가 사법부 정도면 미국 교도소가 이러니 저러니 하는 건 믿지도 않겠지만, 굳이 죗값을 다 치룬 사람을 다시 벌 받으라고 험악한 곳에 보내진 않겠지. (한쿡 마이 컸네.)
(미국 교도소가 무슨 무법 천지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웃겼다. 한국 교도소는 대체로 법무부가 운영하고 공무원이 관리하지만 그 쪽은 대부분 민간이 운영한다는 정도가 다를 뿐 생활 수준, 한방에 몇명이 낑겨 사는가 하는 걸 보면 그쪽이 나은 것처럼 보인다. 거기나 여기나 수감인원에 비해 교도소 공간이나 관리 인력이 모자라는 건 매한가지다. 100년 때려봐야 일찍 나올 가능성도 크다고. 자리가 좁으니까.
특정 범죄가 특히 더 나쁜 대접을 받는다는 건 글쎄올씨다. 그럼 더 대접받는 범죄도 있겠구먼. 경찰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면 괴롭겠지만 그건 교도소 밖 관계가 안에서도 연장이 되서 그런 거고요. 게다가 '덩치 좋은 흑형'이 손모씨를 죽을 때까지 예뻐해줄 거라는 건, 인종차별적이고 그 인종차별적인 인상도 다 드라마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된 거거등.)
현실적으론 당장 사법부가 내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길 바라는 것보단,
당장은 성범죄나 차별관련 해서 기소라도 제대로 잘 되게끔 계속 신고하고 또 신고하고 자꾸 신고하고, 일처리가 제대로 되도록 민원 넣고 또 민원을 넣는 것이다. 맘에 들든 안 들든 법 기준에 맞는 선고라도 받게 해야한다는 거임.
그리고 장기적으론 사법부 구성원을 어떻게 하면 내 입맛에 맞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법을 만드는 곳이 국회고 만들어진 법을 실행하는 게 행정부인 것도 생각해야 한다. 뭐, 하나 한번에 되는 일 없으니 장기적으로 보고 하나씩 바꾸는 수밖엔 없다. 이런 일은 질긴 년이 이기게 되어있다. 포기 안하고 계속 하면 됨.
동시에 지금 나의 현실과 성향을 바꿀 필요도 있다.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이쪽이 더 쉽고 즉각적일 수도 있다. 성폭행 가해자의 리스크가 몇개월 감옥 가는 게 아니라, 뚝배기 깨질 각오 정도는 하고 성폭행을 시도해야 한다는 '인식'이 '모두'에게 박혀야 함. 그 옛날 성폭행범의 혓바닥을 잘라버린 멋진 언니처럼.
사실 이것도 참 힘든 게, 성격이란 게 쉽게 변하지가 않는다. 작년엔가 만났던 친구는, 본인은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남편에게 아주 불만이 많았다. 근데 얘가 남편하고 대화할 때를 보니까 '나는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할 게. 따를게요.'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거다. 그래놓고 남편한테 눈치가 없대. =_=? 이 경우는 눈치가 없게 만들고 있는 거 아닌가?
아무 데서나, 혹은 아무 때나 지랄병 걸린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라는 게 아니다. 여성주의자는 미친 사람이 아니고 이렇게 해봐야 우습기만 하지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흥분하지 말고 평소처럼 말하고 대화하면 된다. 여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끼하는 애들 앞에선 오히려 더 효과가 좋을 듯.
처자식이 있으면 군대를 면제해준다던가 형량을 줄여주는 이유는, 여자는 혼자 자식을 건사하면서 살 수 없다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 혼자 자식을 못 키운다는 사고방식도 성차별적이다. 손 뭐시기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편모, 편부가정에 사과하길 바란다.)
여자는 무릎대고 팔굽혀펴기를 해도 된다는 것도, 여자는 군대를 안 가도 되는 것도 성차별적이다. 근대 이전에 군대를 안 가도 되는 인간은 노비와 선비계층이었다. 여자가 노비에 속할 것 같으냐, 선비에 속할 것 같으냐.
팔굽혀펴기는 건강한 사람이면 운동을 전혀 안했던 사람이라도 6개월이면 할 수 있다. 경찰 지원하는 사람이면 사실 충분히 하고도 남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여자니까 쉽게 해~ 라고 해주신 거지. 여자는 신체가 연약하므로 체력이 필요한 일을 시키지도 않을 거라고 뽑기도 전에 결정한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만든 제도거등. 우리는 현재 차별을 당하고 있으니 당장 군면제를 받는 이득이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이제는 아마 안 먹힐 거다. 군대 문젠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빨리 종전하고 양성 모병제로 바꾸는 게 젤 좋긴 헌데 말이다. 근데 이거야 말로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거나 원하지도 않은 작은 혜택이나 이득 때문에 그 이상으로 차별 당하게 된다. 물론 이런 현실을 적절히 이용해서 몸 편하게 사는 것도 방법이다. 자기 사는 방법은 다 자기가 정하는 거다. 하지만 보통은, 평등하고 싶으면 동등한 위치에 올라가야 한다. 위에서 옆에도 찍어내려도, 상황이 억울해도 악착같이 들러붙어야 함.
그래서 당장 뭐부터 해야하냐면... 운동?
덧.
다 써놓고 피곤해서 자고 일어났더니 서울시장 건이...
내가 못 들은 걸 수도 있지만 시민운동할 당시 박원순에게는 그런 소문이 '전혀' 없었다. 뭐가 어디서 어떻게 핀트가 나가면 그렇게 되는 건지.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