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는 다르다. 차별은 구조적인 경향이 있고 혐오는 문화적인 경향이 있다는 식으로 다르다. 대부분의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은 차별과 혐오를 거의 균등하게 안고 간다. 무엇이 먼저 발생하는가는 좀 애매한 것 같다. 어떤 집단에 대한 혐오가 구조적 차별이 되기도 하고 구조적으로 차별하던 집단에 대한 혐오감이 발생하기도 한다. 고치는 건, 개념적으론 차별이 고치기가 쉽다.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행정적, 법적 차별을 제거하면 비교적 금방 지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과 법을 구현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차별과 혐오를 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잘 안 고쳐진다.
저건 좀 거시적인 얘기고 실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좀 더 현실적이고, 요즘 많이 보이는 댓글 때문에 간만에 포스팅을 하게 됐다.
미국 흑인이 동양인을 차별한다고 한다는, 물타기 댓글이라고도 불리는 그거 말이다.
일단, 다른 데는 모르겠지만 (흑인이 구조적 권력을 쥐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미국에 사는 흑인 일반이 동양인을 차별하는 건 가능하지가 않다.
차별의 주체는 보통 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문화적 권력, 사회적 권력, 인적 권력 등등 하여간 어떤 종류든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한다. 아, 만약 미국의 힙합씬에서 동양인과 백인이 흑인 아티스트에 비해 차별받는다 하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내가 알기론 흑인 힙합씬은 아예 따로 노는(놀았던) 걸로 알고 있음. 지금은 거의 대중문화 산업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이쪽에 통 관심이 없어서리...
더 쉽게 말하면, 아빠 엄마가 자기 자식을 차별하는 건 가능한데 자식이 부모를 차별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집안이나 학교에서 사용하는 '편애'라는 단어도 선생이 학생 편애하지 학생이 선생 편애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냥 '인기있는 선생'이 있고 아빠보단 엄마가 엄마보단 아빠가 더 '좋을' 뿐이다. 이건 그냥 감정이지 그 안에 어떤 권력도 들어있지가 않다. 오히려 자식이나 학생이 너무 대놓고 선호를 보이면 그게 빌미가 되서 다른 선생이나 부모에게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근데 이것도 선생이나 부모가 그만큼 학생과 자식을 신경 썼을 때 이야기고 대부분은 신경도 안 쓴다. 그 정도의 권력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흑인이 동양인을 차별한다는 것으로 돌아와서, 내 생각에 흑인이 동양인을 싫어할 수는 있다. 하지만 흑인이 다른 소수민족을 차별할 정도의 구조적 권력을 갖고 있냐하면 그건 아니다.
미국 흑인과 이주 동양인의 역사를 생각하면, 흑인이 동양인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 이주 동양인은 흑인을 혐오만 했지 차별할 수 있는 권력은 없었다. 그 대신 권력을 갖고 있는 백인에게 붙어 먹긴 했다. 왜, 형제끼리도 유난히 부모한테 더 잘 일러바치고 부모 뒤에 숨는 애들이 있잖슴. 자기가 권력이 없으니까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권력자를 찾아서 거기에 비비는 거다. 이건 생존의 문제이기도 해서 나는 딱히 이걸 나쁘게 보진 않는다. 이것도 권력이 없어서 할 수 밖에 없는 행위니까. 하지만 그 생존의 행위로 누군가 피해를 봤고 그래서 그 피해본 사람이 행위자를 싫어하게 됐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원래 당하는 입장에선 진상인 시어머니나 말리는 시누이나 거기서 거기다. 심지어 미국에 이민 간 동양인은 말리는 시누이도 아니었다. 시어머니한테 붙어서 한마디씩 거드는 한술 더 뜨는 시누이였지. 아오, 꼴보기 싫어.
아니 그리고 애초에 공권력에 의해 구조적으로 탄압(차별)받는 사람에게, 거기 살지도 않고 거기 현실이 뭔지도 모르고 니들도 우리 싫어하잖아!!하고 비비는 거 자체가 좀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사고 방식엔 '흑인 따위가 우리를 싫어해'라는 함의도 숨겨져 있다. '감히 여자따위가 나를 무시해' 하면서 미치는 애들 있잖아. 우리는, 한국은 지금 딱 그 수준이고 그 꼴이다.
덧. 혐오와 차별을 다시 한번 정의하자면,
마스크 낀 동양인에게 욕을 하고 위해를 가하는 건 혐오적인 행위다.
피해를 당한 동양인이 경찰을 불렀는데, 경찰이 대충대충 일처리를 한다면 그건 차별적인 행위다.
여기에 행위자의 인종에 따라 인종적인 문제가 끼어들고 미국의 경우엔 정치적인 문제가 끼어든다. (마스크 끼는 걸로도 시위하는 쌀국이여.)
여튼 뭐, 92년 LA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권력자한테 붙어먹는다고 궁극적으론 뭐가 되는 일이 없어요. 제일 좋은 건 시간이 걸려도 내가 스스로 나의 권력을 쥐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