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net of the ape 시리즈는 혐오와 그런 근본 없는 혐오를 풀어낼 방법이 없는 두 종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이 두 종이 실제로 치고받고 죽고 죽이지만 그런 물리적 폭력 이전의 혐오에 대해서도 잘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바이러스를 원숭이 때문에 만들어지고 원숭이가 퍼트린 거라고 한다는 편견, (에이즈도 원숭이에서 발현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도 있나;; 에이즈는 남성 동성애자만 걸리고 퍼트린다는 착각은 아직도 하는 모양이다.) 인간보다 하찮아야 하고 당연히 인간의 소유인 생명체가 지능이 높고 말을 하며 인간의 행태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이질감과 짜증 혹은 공포(포비아), 자기보다 강한 육체를 가진 생명에 대한 순수한 공포도 있다. 유인원을 싸잡아 원숭이라고 부르거나 당나귀라고 부르면서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도 혐오다. 물론 인간이 말을 못 하는 질병에 걸렸을 때의 반응도 혐오에 기반한 감정이다. 그래서 바이러스에 대해 더 알아보거나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거부하고 혐오하고 기냥 죽여삐는 것이다. 무지하고 무식한 인간은 진상을 부린다.
에이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맨처음 에이즈가 발견됐을 때, 정확히는 사람들이 그걸 에이즈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꾸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그걸 정부, 학계, 의료계가 '남자 동성애자만 죽어나가니까 신경 끄자'라고 해서 전염병을 더 키웠다. 왜 에이즈 환자에게 무조건 적인 의료 제공을 하냐며 왈왈 대는 놈들은 전염병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말 모르는 거지. 하긴 정확하게 하자면 에이즈는 전염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전염되지 않는다. 전염되는 건 HIV이다. 그리고 HIV에 감염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인간은 어떤 의미로든 타인과 성행위를 전혀 안 하는 인간이다=ㅠ= 누구든 성교를 한다면 HIV에 걸릴 수 있다. 덧붙여 이제는 관리만 잘한다면 HIV가 에이즈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 결론은 무지하고 무식한 인간은 진상을...
사람이 권리나 특권이 뭐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듯이 혐오도 뭐 대단히 폭력적이고 눈에 띄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근데 생활 속의 혐오는 좀처럼 눈에 띄지도 않고 대체로 혐오와 차별 그대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혐오와 차별을 하면서도 자기가 혐오하고 차별하는지 모르는 이유는 그걸 인지를 못하고 있거나 혹은 차별과 혐오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인혐오 Xenophobia, 여성혐오 Misogyny, 동성애혐오 homophobia도 마찬가지다. 성별이든 인종이든 종이든 혹은 믿음이든 어떤 집단을 싸잡아서 쟤네는 이래, 쟤네는 저래 이러면서 자신의(혹은 집단의) 무지와 무식을 기정 사실화하고(다원적 무지, pluralistic ignorance) 그에 기반해 차별을 하는 것 모두 그 자체로 오류다. 니들이 그 집단 다 만나봤냐고.
백인이 나에게 유색인종 친구가 있으니 인종차별자가 아니다(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그런 말 잘한다 ㅋㅋ)라고 말하거나 나는 이성애자이므로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흔한 오류다. 이성애자인 남성이 여성과 성교하면서 여자를 만날 두둘겨 패고 학대할 수도 있고 어떤 남성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서 그 딸에게 여성다움을 강요하고 여자답게 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남자가 여자는 여자답게 사는 게 옳은 일이고 그게 세상살이가 더 쉽다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고방식 자체가 차별적이고 혐오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도덕적 잣대나 철학을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상대방을 낮게 보고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포함해 그 사람의 인격과 특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혐오한다는 뜻이다.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언어적 하여간 온갖 배경이 다 다른 '외국인에게 한국인처럼 살라고! 한국인이 되려고 노력이라도 하라고!' 지랄하는 게 혐오고 차별이 아니면 뭐냐.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에게 이성애자가 되라고 하는 게 혐오가 아니면 뭐냐고. 그게 될 것 같으면 자기 성 정체성, 성 지향성부터 한번 바꿔보던가. 천성이 여성답지 않는데 보지가 있으니 조신하게 행동하라고 하는 거나 좆 달렸으니 어떤 상황에서든 울지 말고 항상 강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히 개소리다.
인간의 성격, 성질, 사고방식, 행동양식은 좆이나 보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윗쪽에 달려있는 기관에 의해 결정된다. 뇌라고 하는데 성별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다 비슷하게 생긴 걸 갖고 있다. 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인간에게 개인적 특성을 부여하고 발산하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기관이다. 물론 좆과 보지도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생식기관이지만 사회도 문화도 개인도 밑과 겉에 쏠린 신경을 좀 분산시켜도 좋지 않을까.
... 쓰다 보면 짜증이 나는 주제다. 왜냐면 나는 혐오를 혐오하거든. (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