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날 때부터 권리를 갖는다.
-고 근현대인은 생각했다. 근데 여기에도 순서가 있었다. 정치 사회적으로 보면 시민권을 가진 남자 어른이 먼저 모두 평등한 권리를 가졌고 다음에 여자 어른도 껴주고 그다음에 애들도 좀 껴주고 하는 식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돈 있고 교양 있는 사람이 먼저 권리와 권력을 누렸고 그 밑으로 계속 등급을 나눠서 단계적으로(혹은 차별적으로) 권리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시민권을 안 가진 사람, 정상이거나 평범하지 않다고 고려되는 사람은 아직 이런 평등권을 못 누린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천부인권은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문학과에서 왜 이딴 걸 가르치는지 근본적으로 이해를 못한다. '우리의 소원이 천부인권'일 수는 있지만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노래를 하든 합창을 하든 상관은 없지만 이런 걸 수업시간에 정색하고 가르치는 게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인권이나 평등에 대해서 '나의 권리'를 빼앗긴다고 사고하는 사람의 논리가 뭔지를 안다.
바로 15년 전만 해도 좋아하는 여자를 성폭행하고 결혼하면 성폭행이 용서됐다. 법적으로 용서됐다기보다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으로부터 용서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성폭행을 용서하거나 그냥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피해자도 줄어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겐 가해자와의 결혼은 더더군다나 안될 말일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시대와 사회와 문화와 사고방식이 바뀌어서 '좋아하는 여성을 성폭행하고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면, 맞다. 사실 이딴 행위는 권리가 아니라 권력인고 남성이 이 권력을 잃은 게 맞긴 맞다. 그래서 그게 나쁜가?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가 여자 남자라 이해가 안 간다면 다른 예를 들겠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손님은 개진상을 떨어도 직원은 그냥 참았다. (손님에 사장을 넣어도 된다.) 참을 뿐 아니라 개진상을 다 받아줬다. 손님이라는 지위가 가진 권력으로 직원이 가진 권리를 무시하는 일이 많았고 무식하게도 그래도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이 바뀔 것이다.
남자끼리든 여자끼리든, 시민권자끼리든, 특정 인종끼리든, 특정 직업이나 지위의 사람끼리 모여서 다른 집단을 비하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걸 못 하게 돼서 억울하다면 계속 억울해해라. 그 감정은 당신의 것이므로 누구도 뭐라 못한다.
나는 평등을 좀 다른 그림으로 보는 편이다. 보통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비시민권자, 어린이, 노인의 권리를 '올려'주는 거라고 보는 편이다. 나는 좀 반대다. 나는 남성, 시민권자, 정상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가진 권력을 빼앗고 끌어'내려'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모든 것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재화와 생산성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을 귀족처럼 대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을 대충 적당히 비슷하게 대하는 건 가능하다.
애초에 대부분의 인권운동의 목표는 그렇게 높지도 않다. 대부분은 그저 인간이 '적당히' 건강하게 먹고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과 권리를 모두에게 어느 정도 '비슷하게' 부여하자는 것뿐이다. 모든 인간이 '매우 완벽하게' 건강하게 '똑같이' 행복하게 사는 건 꿈도 안 꾼다. 모든 사람을 대충 적당히 건강하게 먹고살게 하는 건 정치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고 그래서 이게 점차 정부가 해야 하는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덧붙여 어떤 인간이 매우 완벽하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건 개인의 영역이고 개인이 마땅히 쟁취해야 하는 권리이다. 모든 권리가 정부나 사회문화가 부여해주는 건 아니다. 권리의 아주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얻어내고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포기하고 내다 버리면 누가 그걸 주워서 깨끗하게 털어서 다시 안겨주지 않는다. 당신이 다시 주워서 쓸 때까지 그건 그냥 버려진 채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당신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 사람에게 부여한 권력을 취소하면 된다.
정부가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삶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적당히, 최소한, 비슷하게'와 '매우 완벽하게, 똑같이'를 구분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