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옛날에 알던 사람이 본인이 차별을 경험해본적이 없으므로 차별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이런 저런 생각보다, '존나 부러운데?' 라고 생각했음. 사랑받고 자란 것 같아 부럽고, 차별을 1도 안 당했다고 생각하는 그 긍정적인 마음과, 내가 당해본적 없으면 남도 당한 적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경함과 무식함이 그저 부러웠고 지금도 부럽다.
비슷한 맥락으로, 썰전에서 한국에 사는 황인인 전원책이 미국에 사는 흑인의 인권이 백인과 동등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되게 용감하고 무식하고 무신경하고 하여간 뭔가 사고방식의 굴레를 벗어난 듯한 사고를 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괴랄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여튼 그렇더라고.
랩을 안 들으니 랩퍼로서는 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 세대도 아니고 할머니 세대 정도로 차별을 당하지 않으면 여자들이 왜 평등을 외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그 마인드가 참 멋있다. 판단력이나 사고력이 없는 것도 멋진데 그 사실을 모르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것도 멋있다. 어떤 작품으로 감동을 주는 것도 어렵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을 빡치게 만들기도 쉽지 않거등? 이 또한 영향력이 대단하잖아. 내가 뭔가 이렇게 쓰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레알 훈늉하네여.
뭐어, 내용이 뭐든 아티스트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긴 해야져. 여성주의자 백명이 힘들게 뛰며 캠페인 하는 것보다 이런 놈이 나와서 한번 설쳐주는 게 효과가 쩌니까 난 별로 불만은 안 생기고 정말 흥미롭다고 느낀다.
2. 한국음악은 헬스장에서 듣는 게 다인데, 음악이 다 후져. 곡이 좋아 집에 와서 찾아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음악은 하나 없고, 차라리 음악을 꺼야 운동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더 든다. 여튼, 그 중에 굉장히 자주 들리는 힙합의 가사가 대략 '내가 너를 사랑하진 않는데, 네가 너무 순진하고 (도화지처럼 하얘서) 갖고 놀기 좋아서 한번 놀아봤어.' 이런 식입니다요. 정상적으로 나고 자란 성인이 어떡해야 도화지처럼 하얄 수가 있는지, 그 여자 나도 한번 만나고 싶네 그려. 나도 그림 좀 그려보게.
아, 1번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도화지처럼 하얀 것 같긴하다. 애가 순진해서 할머니가 자랑스러워 할 듯.
3. 내가 휴 그랜트를 겁나 좋아하거든. 이 인간 말하는 거 보면 보통이 아니라 누군가는 '휴 그랜트는 인터뷰를 계속 하기 위해서 영화를 계속 찍어야 한다'고 할 정도이고 나도 휴 그랜트 나오는 토크쇼와 인터뷰는 무조건 챙겨본다.
영화 플로렌스를 홍보할 떄 메릴 스트립과 사이먼 헬버그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QNA 시간에 객석에서 '배우 커리어에 가장 큰 위협을 줬던 일이 뭐냐'고 물었는데 휴 그랜트가 제일 먼저 답변을 했다. 'unprotected sex'라고. 사회자, 객석, 메릴 스트립, 사이먼 헬버그를 다 기절 시킴.
한창 헐리우드에서 미투 운동이 있을 때 어떤 영화를 찍었든 거의 모든 영화인 인터뷰에는 '미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들어갔고, 휴 그랜트도 그런 질문을 받았다. 논란이 된 감독과 일도 했었으니 더욱 그랬겠지. 휴 그랜트는 '내가 이 질문에 답변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과 뜻을 같이 한다. 그런 일은 옳지 않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답했다.
성매매를 했던 이유가 뭐든 (술에 취했고,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잘못은 잘못이고, 그 일을 모르는 척하거나 잊는다고 없었던 일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 일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사과를 했음에도 스스로를 '성매매를 했던 찐따새끼'라는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휴 그랜트다. 난 그런 면이 굉장히 어른답단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잘못이든 실수든 저지르게 마련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방법과 뒷수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인간의 됨됨이와 성숙함을 알게 해주거든. 그래서 내가 보기에 휴 그랜트는 단순히 말빨이 좋고 머리가 좋은 인간이 아니라 훌륭한 인간임. 사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는 사람이 거의 없지.
4. 꼴리는 대로, 자기 머리 속에서 정신승리하며 살면 1번처럼 된다. 근데 이게 살기 편하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