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인더정글은 시즌이 지날 수록 재밌다. 시즌 1이 좀 더 대중적이고 전형적으로 코믹한 면이 있는데 시즌 2, 3에선 좀 더 음악을 진지하게 다루고 쓸데없이 과장된 연출도 없다. 웃기긴 웃긴데 전형적으로 웃기는 것도 아니고 아주 좋다. 이런 이유로 뒤로 갈 수록 더 재미없다는 사람도 있긴 함. 덧붙여 난 오케스트라 운영진이나 행정팀, 악기관리직원, 경비원이 계속 나오는 것도 좋다.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나오는 것만으로도 좋음. 따지자면 내가 했던 일이 행정직이었던 거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이 프로그램이 특이한게 자극적인 연출이 없는데 쉽게 집중해서 드라마를 보게 된다. 짧아서 그럴 수도 있고, 평소 잘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이라 집중해서 보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서도 피곤해지진 않는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한 새에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가 인지되는데 그게 시즌 2, 3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함. 그래서, 뒤로 갈 수록 재밌음.
덧붙여 이 드라마 뭔가... 여성주의적으로 거슬리는 게 전혀 없음. 정말 하나도 거슬리는 게 없다. 성별보단 직업적 특징이 어필되는 면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여성캐릭터를 굉장히 디테일하게 다루는 것도 마음에 든다. 3시즌 마지막엔 난넬이 여주에게 '네 커리어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인상적. 덧붙여 비쥬얼적으로도 그런 면이 있다. 시즌 1, 2에 나오는 여주의 남친이 여주보다 하얗고 날씬한 댄서임. 주인공 남자는 덩치가 작고...
인종적인 불만은 좀 있긴 한데 클래식계가 워낙 백인 남성중심적인 필드이긴 하다. 이 드라마에선 거기서 살아남은, 살아남고자 버둥대는 여성음악인은 꽤 많이 다루는데 인종적 다양성은 로드리고 빼곤 별거 없음.
"제 선생님이 당신이 노래한 토스카 음반을 갖다 주셨어요. 전 그걸 계속 반복해서 들었지요. 그러면서 온갖 상상을 하면서... 뭘 했는지는 말하지 않을 거지만 여하튼-"
이런 대사를 겁나 웃기게 잘치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코믹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한다. 그래서 말을 '재밌게' 잘 할 거라는 근본없는 믿음이 있었다. 인터뷰 보니 말을 잘하긴 하는데 완전 노잼. 핵노잼. 심지어 웃긴 이야기를 해도 안 웃김. 연기로는 별 이야기 아닌 것도 그렇게 웃기게 만들면서 인터뷰를 보면 웬 잘생긴 먹물이 앉아있어 ㅠㅠ 제기랄 ㅠㅠ
알고보니 학부 때 철학전공했댐. 당시 멕시코에 큰 규모의 학생운동이 있었는데 거기에 참여하진 않고 국외로 나돌아다녔다고 한다. (불법으로) 식당이랑 바에서 알바하며 돈 벌고 영국에서 연극 공부, 한참 뒤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예술이론 석사. 출연은 그냥 자기가 꼴리는대로 하지만 좋아하는 건 다큐멘터리라 다큐멘터리 제작 및 감독으로써 활동도 하고, 멕시코에서 영화제도 하나 만들어서 하고 있고, 다큐멘터리 제작 배급사도 하고, 이민자 정책-환경-문화-인종 등등에 관심이 많고 참여하는 편임.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자로 나와 '여기 에어콘 너무 쎄서 얼어죽겠다'고 말하면서 '오늘 나는 이란인이자 이라크인이고 시리아인다.'라고 말하는 인간인데... 이럼 곤란하다. 매우 곤란하다. 난 이런 인간을 많이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성별 나이 상관없고, 못 생겨도 좋아하는데 가엘 가르시아는 잘생겼음. 결국 더욱 가열차게 덕질(유튭에서 온갖 인터뷰 찾아보기) 하는 중.
이건 나한테만 해당하는 거겠지만, 가엘 가르시아가 정말 연기를 잘한다고 느낀 부분이 토하는 씬이었다. (2시즌 5회차. 남미 순회 공연 중 멕시코에서 길거리 음식을 잘난척하며 먹고 나서 체해서 토함.) 토하면 입이 축축해지고 목구멍이 아파서 약간 쉰소리가 나는데 그걸 정말 웃기게 잘해서 몇번이나 돌려봤음. 토하는 장면을... 아무리 봐도 웃김=ㅠ=ㅋ
평소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인간들 말 할 때 구강구조가 느껴지기도 한다. 데이비드 테넌트 같은 경우는 말할 때 입에서 말이 공기랑 같이 나오는 소리가 나서 입속이 크고 건조한 느낌이 든다. <-이거 흉내낼 수 있는데, 닥터후 본 사람들은 무지하게 웃더군 ㅋ 그런 거 말고도, 어떤 사람은 목구멍이 꽉 조여있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은 혓바닥이 두꺼울 것 같고...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올 때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하긴 이게 꼭 구강구조랑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닌 게, 아는 교수 한 명이 생각이 많고 늘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을 하면 생각이 뭉쳐서 나온다.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들고, 이 분 실제로 말을 조리있게 하질 못함. 랑랑도 그렇다. 말을 할 때 보면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을 잘 못하고 우와우왕 음악 짱 좋아 우왕 하면서 쏟아냄. 의외의 씹덕포인트. 좀 덜떨어져 보이면서도 귀엽다. 가엘 가르시아도 약간 이런 면이 있다. 생각이 머리에서 입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에 있는 생각이 입에 가다가 목구멍 뒤에서 정리해서 나오는 것 같음. 스페인어할 때는 안 그렇겠지 싶긴 한데, 그 말을 모르니 영상 하나도 본 게 없어서 모르겠음.
여튼, 가엘 가르시아가 연기하는 마에스트로 로드리고는 뒤로 갈 수록 웃기고, 섹시하고, 멋있다. 엔간히 잘하지 않으면 이게 동시에 되기 힘들고,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많이들 그렇게 느끼는 것 같음. 무엇보다 배우가 디게 잘 생긴 건 맞는데 덩치가 굉장히 작다. 키도 작고, 어깨도 좁아서 마초스런 매력이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렇다고 여성성이 있는 건 또 아님.) 여튼 출연한 영화 중에서 가엘보다 작은 여자랑 연기하는 경우 별로 못 봤음. 모차르트인더정글에서도 여주보다 작을 뿐 아니라 여기서 자는 모든 여캐보다 작음-ㅠ-ㅋ 캐릭터도 여주의 남친으로썬 최악인데도 웃기고 섹시하고 멋지다고. 물론 이 피지컬이 아시아나 한국에서, 혹은 서구권에서도 대중적으로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골든글로브 남주상 탈 정도로는 먹힌다는 거겠지. 여기엔 나에게만 플러스 되는 부분도 있긴 하다. 로드리고 캐릭터는 집도 통장도 신용카드도 없고, 핸드폰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들고 다니진 않는 캐릭터. 긍정적인 의미로 행동에 경계가 없다. 내가 또 이런 거에 로망이 있어서 피지컬을 안 보게 됨....다기 보다는 원래 작은 사람을 좋아하긴 한다. 큰 사람 시져.(..라기 보다는 그냥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인간으로 안 보임.)
여튼 캐릭터 마에스트로 로드리고도 좋고,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도 좋음. 짱 좋음 >.<
덧.
멕시코에 있는 친구랑 이야길 했는데 멕시코는 애들 이름을 막 짓는 경향이 있댐. 유명인 이름을 붙인다거나 만화 캐릭터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한창 뜰 때 태어난 남자애들 중에 가엘 이름이 겁나 많아 흔한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자기 조카도 남자애였으면 가엘이었을 뻔 했댐. ㅋㅋ
멕시코 가고 싶어 ;ㅁ; 가엘이 하는 영화제랑 배급사 구경 가고 싶어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