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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과속스캔들

문득, 갑자기, 엄마가 심심하다고 해서 같이 영화보러 갔다.
호모알러지 있는 양반이 쌍화점을 보자고 하길레 일단 귓등으로 넘기고, 목 디스크때문에 극장에 잘 못 앉아 있는데 재미없는 것까지 보면 아주 죽을 맛이기 때문에 과속스캔들을 봤다. 쌍화점의 경우 관객이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얘길 들었다. 그럼 뭐, 볼 것도 없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과속스캔들의 경우는 어디에선가 꽤 괜찮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원래 극장에도 안 가고, 이젠 영화잡지도 안 보며, 테레비도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이런 정보가 내 귀까지 흘러들어오는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재밌었다. 무엇보다 울 엄마가 많이 웃으면서 보셨다. 그럼 된 거임.


1. 강약중강약. 리듬과 템포가 좋다.
전체 이야기를 봤을 때는 구성이 좋지는 않은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사건의 배치가 좋다. 중간중간 이벤트(노래)를 넣어서 장면(감정)전환이 실제로 설득력이 있건 없건 천연덕~ 아주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이 모여 이야기의 속도감을 준다. 뭔가 템포 자체가 빠른 이야기는 아닌데도 스리슬쩍 넘어가는 것에 능해서 묘하게 깔끔한 이야기 진행을 보여준다. 이야기-웃기기-이벤트-웃기기-이야기-이벤트-웃기면서 이야기-이벤트하면서 이야기...뭐 이런 식이다. 이건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캐릭터가 잘 구축되어 있고, 잘 연계되어 있으며 각각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같이 끌어나가고 한번은 할아버지가 웃기고 한번은 엄마가 웃기고 또 한번은 손자가, 그리고 조연이 따라오는 식이다. 실력좋은 아마추어가 탁구 하는 걸 보는 것 같다. 특별히 흥미를 동하게 하는 것도 없지만, 끊어지지 않고 왔다리 갔다리, 경쾌하다.

2. 너무 쿨하지도 않고, 너무 신파로 빠지지도 않는다.
'흥행'을 위한 감미료로 가끔 감정이 치닫기도 하지만, 여타 실패한 불편하고 과도한 신파로는 빠지진 않는다. 이건 '어린애'를 이용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솔직히 엄마없는 하늘아래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경험을 하는 건 10대 이상이지, 유치원 다니는 꼬맹이는 그런 현실을 잘 모른다. 그러니 이 꼬마는 쿨한게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인게 아닐까. 어린애만 보이는 특유의 영악함. 현실 적응력. 그게 너무 깜찍하게 그려져있다. 할아버지가 '나의 할아버지'라기 보다는 '엄마의 아빠' 혹은 '키덜트 친구'정도로  배치되면서 신파적 요소는 성인인 엄마한테 넘긴다. 부녀의 감정대결도 심하게 꼴불견을 보이지는 않고 좀 더 현실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뻔뻔하고 민망해하고 돌려 말하면서 찌르는,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뒤돌아서서 '씨바...'하고 마는 세상이랑 비슷하다. 주노처럼 멋지게 쿨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찌질하고 적당히 뻔뻔하고 적당히 웃기는 소소한 인간군상들. 이런 면에서 캐릭터 설정과 배치가 맘에 든다.

3. 특유의 뻔뻔함.
뭐랄까, 독특한 B급 영화 감성이라고 해야하나. 내용보다는 기술적(?)으로 그런 면이 보인다. 묘하게 허전한 미술이라든가 뭔가 허전한 화면구성, 70년대 성우 더빙이 아니라 나름 진보한 2000년대초의 더빙을 듣는 듯한 사운드. 신파용으로 사용하기엔 깔끔한 음악, 하지만 일견 뮤지컬의 면모도 보이는 것에 비해선 상당히 심심한 음악선곡. 특히 클라이막스의 그 이벤트는 너무 통속적이고 유치했다. 거기에 바로 이어오는 한국식 신파를 너무 들이대서 아닌 걸 알지만, 좀 패러디 같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 마케팅도 꽤나 촌스럽지 않았던가.
천편일률적인 스토리라인과 그냥 적당히 수식에 맞춰 잘 만든 영화를 보고 드는 의외의 재미와 유쾌함이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뻔뻔함에서 오는 것 같다. 우린 이 정도면 됐어, 하는 듯한 느낌. 관객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해주겠다~~거나, 아주 배꼽 빠져 죽게 만들어주지~~하는 오버센스가 없다. 만든 사람조차도 낄낄대면서 만들었을 것 같은 개그의 공감대가 느껴진다.

영악하면서도 유쾌한 영화. 웃음을 배치한 포인트엔 꼭 관객이 웃는다.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한 것이다.
감독의 첫 작품인 것 같은데, 데뷔성공 축하요~


덧.
차태현 좋다. 본 영화도 별로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특유의 넉살스러움이 좋다. 무한도전에서 하하 빠질 때 무도빠의 대부분이 지지했던 차태현의 영입. 무도빠가 좋아하는 무도 게스트라니, 정말 흔치 않다.
그 꼬맹이, 꽤나 귀엽더만. 극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