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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106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게 세 가지가 있다. 빛, 냄새, 소리. 물질로는 공간을 채울 수가 없다. 난 공간을 좋아하고,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빛, 냄새, 소리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음악을 음악으로써도 좋아하지만, 음악이 공간을 꽉 채울 때 온 몸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전율인가? 찌릿찌릿하기도 하고, 마음이랑 몸이랑 뇌가 같이 막 화학작용을 해서 좋아죽는댐. 


건축가들이 빛에 매료되는 것도 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빛은 공간을 마술적으로 돋보이게 하거든. 마술적인 이유는 조명보다 자연광이 그걸 기가막히게 한다는 거.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직접 가봤는데... 진짜 좋음. 겁나 좋음.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말도 못하게 좋음. 하악하악. ;ㅁ; 눈에서 궁물이 나올 정도로 좋음. 겉에서 봐도 좋고, 안에 들어가서 봐도 좋고. 거기서 살라고 하면 나는 살았을 거야. 그 좋은 공간에서 인간이 모여서 하는 짓이라곤... ㅠㅠ 흐이구. 


내가 왜 공연을 가는 걸 좋아하고, 특정 예술가를 더 좋아하는지를 생각해봤다. 좋아하는 가수나 오케의 공통점을 찾다보니 공간을 꽉 채우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다닌다는 결론이 남. 물론 더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요즘 (평소보다 더) 음악을 많이 들어서 그쪽으로만 머리가 돌아간다. ㅋ 


피아노 레슨 받을 때 소리의 밀도(나는 질감이라고도 부름)를 신경쓰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같은 음량이라고 해도 공간을 꽉 채우는 소리가 있고, 소음이 되버리는 소리가 있다. 앞에 것은 음악이고, 뒤엣 것은 소음. 

같은 멜로디를 힘 빡 주고 쳤을 때보다 힘 빼고 제대로 쳤을 때 더 큰 소리=밀도가 높은 소리가 나는 건 하다보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슴. 음이 공간을 꽉 채우고 진동하는 느낌이 와. 내가 연주를 잘해서 음악이 전체적으로 좋게 들리는 게 아니라, 피아노로 소리를 내는 방식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는 거. 

이건 테크닉이다. 배우면 된다. 정확히는 배워서 그 소리가 나올 때까지 연습하면 된다. 연습하면 안 되는 건 없다. 더 잘 하고 더 못하는 인간이 있을 수는 있지만 여튼 연습하면 다 할 수 있다. 근데, 이것도 대부분 연습량으로 결단이 나더군. 이를테면 내가 치는 건데도 연습을 많이 한 곡과 연습을 덜 한 곡은 딱 티가 남=_= 난 왕초보인데도 혹은 왕초보라 그런지 놀라울 정도로 매우 많이 티가 남. 


피아노 뿐 아니라 다른 악기 레슨할 때도 그런 걸 신경 많이 쓰는 것 같음. 현악기 같은 경우엔 활을 전체적으로 쓰라고 하더군. 같은 길이의 음이라도 활을 전체적으로 쓰라고 하는 걸 자주 들었고, 왠지는 모르겠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을 때 정말 뭔가 소리가 달라지긴 함 @.@ 그러니 오케스트라를 듣는다고 하면, 이런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 수십명이 모여서 곡을 연주한다고 생각해봐라. 내가 베를린필을 그렇게 들락거린 게 이유가 있당께. 여긴 공연장도 기똥차게 잘 지어 놔서... 또 가고 싶다. 베를린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베를린 필 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왕창 보고 싶어. 


근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한테는 딱히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소리의 질감이 다르다고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이걸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 많은데 왜 특히 몇몇 가수를 더 좋아하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 특히 그 가수가 하는 음악이 내 취향에 맞으면 그냥 노래가 좋은갑다하면서 들어서 더욱 그렇지. 근데 내가 분명 좋아하는 가순데, 노래가 영 별로인 사람도 있거든. 취향을 넘어서 그냥 음악 자체가 별로... 수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_=;;; 내가 아무리 널 좋아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ㄷㄷ 

여튼간에, 노래도 테크닉인가 하는 궁금증이 드는데, 이거 물어볼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배워서 익힐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닐 것도 같은 게, 실제로 라이브로 들어보면 이게 확 티남. 밀도있는 소리를 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딱 티가 난단 말이다. 테크닉이면 이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더 많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런 연주자도 많지 않긴 하지. 흠... 판소리하는 사람이 어디 산에 들어가서 소리 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연주장 안을 밀도있는 소리로 채우는 것도 엄청 좋은데, 야외 공간에 그 소리가 퍼져나가는 건 정말... 이건 레어템이라 더욱 소즁합니다. 

여튼 밀도있는 소리를 내는 가수 노래를 들으면 듣는 사람은 이게 왜 좋은지를 모르고 그냥 노래를 대박 잘 부른다고만 생각을 하게 된다. 노래의 경우에 이게 테크닉이면 그 정도 소리를 연습으로 낸다는 이야기니까 노래를 대박 잘 부르는 게 이치에 맞긴 한데... 아니라면? 

가수 중에 공연 내내 같은 소리로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처음엔 목이 좀 잠긴 채로 하다가 그 다음에 목이 트이면서 시원하게 잘 불러제끼는 사람이 있는데 (그리고 공연 막판엔 목소리가 쉼 ㅋㅋ) 그 와중에 좀 얻어 걸리는 것도 있는 것 같지만, 밀도 높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일단 연습을 하든 예열을 하면 되는 거든 다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ㅠ-? 


내가 요즘 듣는 강좌 강사가 되게 재밌는 소리를 낸다. 본인은 자기가 그냥 '목소리가 크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님. 일단 운동을 해서 그런지 항상 복식호흡을 하고, 분명히 쌩목으로 말을 하는데 두성이 같이 나옴. 그러니 목에 무리가 안 가고 마이크없이 왕왕 울리는 소리로 두 시간을 혼자 떠들 수 있는 거. 이 강사가 복식호흡 안 하고, 두성도 안 쓰고 그냥 쌩목으로만 말하면 그런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긴 시간 동안 혼자 말하지도 못한다. 그냥 목청이 좋은 게 아니란 말이여. 근데 이거 본인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고 그냥 쓰는 것 같다. 허허. 나는 쌩목으로 말하는 인간이라 부러울 뿐이다. 난 30분 혼자 말하면 목 쉬는 유리 성대를 가진 몸. 근데 다른 방법으로 소리를 내는 방법 자체를 모르니까. 근데 또 그걸 막 배우고 싶은 욕망도 없긴 하다. 그냥 난 안 돼...라고 생각해서. ㅋ 



흠... 답 없는(나는 댑을 알 수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밤이로다.  

이 생각이 든 이유 

1. 오늘 피아노 레슨 했음. 소리의 밀도(질감)에 신경 쓰라는 말을 항상 듣는다. ㅠㅠ 나도 잘하고 싶어여. 근데 왜 연습을 안 하냐, 이 멍청한 년아ㅠㅠㅠ

2. 뮤지컬을 봤는데 쓸데없이 mr을 너무 크게 틀어놔서. 크게 틀어놓는다고 웅장한 게 아님.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 구성할 때 연주자 많다고 더 우장한 소리를 내는 건 아님. 그냥 큰 소리가 나는 거지 ㅋㅋㅋ) 더군다나 뮤지컬에서 mr이 가수 목소리를 묻게 한다면 역효과만 내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