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래 공연 직캠한 거 안보지. 관객이 직캠하는 것도 안 좋아하고(노이로제 걸리겠음. 일 할 때도 싫고, 내가 관객일 때도 촬영하는 인간 딱 싫다), 무엇보다 음질이 구려. 참을 수가 없음. 근데 박효신 야생화를 계속 듣고 있음=_= 장난하나...
이 모든 건 박효신 잘못이다.
내가 박효신 노래를 디비 판 건 처음이 아님. 아마 6집 전후였던 것 같은데, 창법이 바뀌는 게 재밌고 신기해서 몇달 동안 전 앨범을 차례로 계속 돌아가며 들으며 박효신 보컬을 팠다. 그냥 시험삼아 다른 창법으로 한두곡 다르게 부르는 게 아니라, 일부러 창법을 계속 바꾸는 가수는 사실상 처음 본 것 같다. 특히 못하는 사람이 노력을 해서 점점 잘하는 과정을 가느라고 그런 것도 아니고, 처음 나왔을 때부터 천재가 나왔습니다!!! 했던 인간이 박효신임. 그리고 그 바꾼 창법이 또 괜찮아. 뭐냐고. 정상이 아닌가? (을지로 순환선 작가 최호철이 정상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문제는 내가 이런 종류의 인간을 좋아해. 좀 심하게 좋아해. 뭔가 기획자의 마인드로 좋아해. 근데 난 기획자가 아니지=ㅠ=
난 아티스트가 얼만큼의 시간을 자기 일에 투자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단 천재성이란 게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천재성이 마빡에서 막 튀어도 안하면 끝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터는 하루에 6시간, 주 5일, 누가 시키든 안 시키든 무조건 작업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돈벌이를 하지. 그 이상 하면 지치고, 그 이하로 하면 집중력이 분산되고 작업 진도가 안 나가기 때문에 거의 6시간에 맞춰서 한다고 한다. 내가 유희열 및 그 패거리를 참 좋아했는데, 지금은 윤종신만 좋아한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함'에 대한 태도라는 거임. 보통 뛰어난 재능이 꾸준함을 보장해주진 않더라고.
그리고 꾸준하게 하는 인간은 보통 자기가 하는 걸 많이 좋아한다. 정말 심하게 좋아해서, 그걸 하고 있을 때는 당연하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도 눈빛이 다르다. 건축가 조성룡은 건축 이야기 할 때 눈이 번쩍번쩍하다. 일흔이 넘은 할배가 지금도 여전히 건축 이야기 할 때는 행복해하고 즐거워 함. (물론 한국의 건축 현실에 대해선 안 즐거워하심;;;) 정기용 선생도 그랬지.
이런 사람은 매력이 엄청나다. 보통 인간은 상상 못할 레베루. 인격적으로 개차반이라도 멋질 것 같은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잘해서인지 성격도 대부분 좋다. 작업을 열심히 한다는 건 수행, 수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일 외적인 면에는 초탈하는 것도 있고. 한마디로 수준이 달라. 그냥 달라. 보면 안다. 그런 인간 자체가 흔하지 않아서 눈에 띔.
박효신도 노래하는 걸 심하게 좋아하고 좋아하고 계속 좋아하는 인간. 계속 좋아해서 계속 하는 인간이다. 실제로 연습을 얼마나 하는지는 알수는 없으나, 들어보면 티나니까영. 그래서 지금 내가 야생화를 계속 듣고 있는 거 아냐.
난 박효신이 듀엣하는 걸 보면 웃겨 죽는데(뮤지컬 안 봤지만 그걸 봐도 웃길 듯), 박효신는 듀엣을 할 때 상대방을 엄청 빤히 바라본다.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음. 누구랑 듀엣을 해도 그렇다. 내가 받은 느낌은 사람을 보고 그 사람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며 노래를 같이 부르는 느낌이 아니라, 음악을 보고 음악의 감정을 느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음... 절대 음악=ㅠ=? 박효신 솔로 할 때를 보면 더 티남. 이 인간이 노래를 부를 때 그 음악 자체에 매몰되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 싶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쥐통만한 재능을 개똥만하게 키워놓고 자기애에 빠져 허우적 대는데 말이지. 물론 박효신도 자기가 노래를 엄청 잘하는 거 아주 잘 알고 있음. 거기에 만족을 안 하는 것 같지만. 허허.
여튼 음악이든 뭐든 그 자체에 집중하고 매몰되는 건 재능과는 상관없다. 이건 애정에 따른 거임. 누구나 어떤 것에든 하나쯤은 애정을 갖는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대상이 있다고 저렇게 되냐하면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저 수준의 애정과 집중은 보통 사람한테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이든, 분야도 상관없다. 그게 뭐든 간에 보통은 애정을 갖는 대상에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자기의 일부로 쌓아가지도 못하고, 끈기도 없고, 버티지도 못한다. 악착을 부리는 것과도 다른 거임.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아무나 못 하는 거. 대부분의 인간은 이런 사실을 못 받아들이고 이걸 그냥 재능이나 천재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님, 그냥 너가 네 재능을 못 살리고 사는 거임.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잉. 물론 이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도 괜찮음. 나는 괜찮게, 나름 즐겁게 덕질하며 살고 있음.
덧붙여 재능이란 게 '나 여기 있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하지 않는다. 자기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는 (대부분은) 스스로 찾아야 하고, 그 재능을 갈고 닦고 가꾸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재능을 키우는데 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핑계삼는 인간도 많지만, 내 생각엔 돈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선생을 만나거나 제대로 된 길로 안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거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함. 자기한테만 꽃길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만 꽃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돈 많아도 제대로 된 선생을 만나기 힘들다.
박효신 예를 들면, 박효신은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어른으로써 조언해준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사회생활은 거의 바보수준인 것 같은데, 이런 걸 가이드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고, 음악적으로도 비슷한 것 같다. 애초에 저런 보컬 능력을 가진 인간을 가요에, 그것도 아이돌 그룹을 만들려고 했다니 우리집 고양이가 웃을 일이다. 어쨌든 박효신이 노래(연습)를 하는데 있어서는 선생이 있었든 없었든, 무식하게 연습을 한 거든(그거 치고는 목 상태가 좋음. 타고나게 좋은 목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막 쓰면 망가지기 마련인데, 박효신 목은 상태가 여전히 넘나 좋으심), 전략적으로 한 거든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갔단 이야기. 이건 남보기엔 결과론이지만 당사자에겐 접근 방식, 연습 방법 모두 전략적임. 뭐든 무식하게 접근하면 시간 날리고 돈 날리고 정력 날리고 몸도 망가짐.
난 좋은 선생 만나는 것도 본인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고 본다. 좋은 선생을 찾아 헤매야 하는데, 좋은 선생을 감식할 수 있는 눈과 지식을 갖고 있고 그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을 내 선생으로 만들고자하는 노력 말이요. 근데, 돌아보면 학교 선생님도 나쁜 선생보단 좋은 선생님이 더 많았어. 나쁜 선생이 진상이라 그렇지. 나는 좋은 선생님 많이 만났다. 내가 활용을 안해서 그렇지.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 경험하고 체험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기도 한다. 이런 걸 생각하면 지금 한국의 교육제도와 가정 내 양육이 얼마나 정신이 나간 것인지를 알 수 있져. 쪼다를 양산하는 시스템과 부모여. 행복한 쪼다를 만들면 말을 안하겠는데 불행한 쪼다를 양산하고 있으니... 난 불행한 감정을 대물림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덧.
박효신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좀 심하게 쇼킹했다. 음악 좀 듣는다 인간치고 박효신 보고 안 놀란 인간 없을 것 같다. 난 솔직히 왜 성악 안하고 가요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가요를 하기엔 남아도는 감정선이랑 성량이 괜히 아깝다. 이른바 재능낭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ㅋㅋ 지금은 당연히 아닙니다요. 하긴 그런 생각한 거 치고는 나한테 박효신 앨범이 다 있음. 공연도 좀 다녔음 ㅋㅋ
덧2,
가창력 보여준답시고 고음 부분만 연결해놓지 좀 마라. 김나박인지 남자보컬 비교하는 것도 그렇고 왜들 그러는지. 다 잘하잖아.
내가 박효신을 좋아하는 부분은 다른 뛰어난 가수보다 노래를 잘해서도 아니고, 노래가 다른 가수보다 좋아서도 아니고(솔직히 박효신 노래는 아직 좀 별로;;), 박효신의 음악에 대한 태도와 노래를 하는 방식임. 그 방식이 더 나아서가 아니라 내 취향이라서.
근데... 노래를 심하게 잘하긴 해. 무엇보다 박효신 보컬의 오리지널리티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함. 장사 이렇게 하는 거임, 직장생활은 김태호PD처럼 하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