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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43

 

오늘 밤에 할 뉴스룸의 일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ws)의 시위 참여자 중 한명과 인터뷰하는 쥔공. 마지막에서 한숨을 쉬는 사람은 이 집회와 그들이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뉴스로 만들고 싶어하고, 그래서 어렵게 저 자리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OWS가 갖고 있는 그 성격 자체가) 인터뷰를 말아먹는 것을 보며 한숨을 쉰 것이다. (절망에 더 가깝겠지)

 

촛불 참여자가 뉴스에 나오면 저렇게 나왔을 것이다. 두달 열심히 참여(?)한 거 치고는 난 촛불을 매우 싫어한다. 사실 참여할 때도 싫어했다. 그때는 촛불 참여자의 '나는 운동권은 아니지만...' 드립에서 한두달 뒤 몇몇 언론에 의해 빨갱이 운동권으로 낙인 찍히고 미쳐 날뛰는 꼴을 다 봐서 그런 것도 있고, 사실 촛불의 내용은 '놀고 있음'이라는 것도 있었다. '놀고 있음'의 의미에서 촛불은 좋았지만, 저걸 movement라고는 할 수 없다고 확고하게 생각하는 편. 이런 것(새로운 현상)을 보고 새로운 집회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정치, 사회학자는 완젼 헛다리 집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촛불의 특징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촛불에 열심히 출석을 했던 것은 오로지 '왠지 가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서였다. 학교, 집 근처러 모른 척 하기에는 너무 가까웠거든. 그런 이유로 다녔다고 하기엔 물벼락까지 맞고 아주 우스운 꼴이 되었지만=_=


지난지 뉴스룸을 보면서 정말 가슴을 쳤던 대사 중에 하나 '그들(ows)의 제일 나쁜 점은 티파티(미국의 꼴보수)가 그들보다 나아보이게 만든다는 거야. 티파티 멤버의 87명이 의원인데 비해 그들은 판떼기의 집합체니까.'

리더가 없으니 대화를 할 상대도 없고, 구호가 하나가 아니니 도대체 저것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하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거지. 촛불 때는 진압하는 경찰을 상대로 예비역들이 무려 군복을 입고 나와 약한 시위참여자(주로 여자)를 보호하겠다고 앞줄에 섰는데, 우린 그딴 거 필요없거등!하고 여성 문제까지 그 안에 있었던 걸 생각하면 ㅋㅋㅋㅋㅋ 참 뜨악한 게 많았다.

 

리더없이 모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한 순간에 말을 해대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고,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그것이 모두 지금 당장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특별히 지금 당장 급한 게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 결정적으로 저 집회가 '실제로 일이 성사되는데' 나아갈 수 있는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촛불은 청와대로 가고 싶어했는데,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이명박이랑 앉아서 이야기라도 하겠다고? 누가? 무슨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데? 그리고 어디 앉아서 할 건데=_=? 길바닥에서? 저기 나온 ows 중 한명은 무려 '우린 특별히 대화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집회하는 걸 '보고' 의원들이 '알아서' 법을 고치며, 심지어 이런 목소리와 권리 주장이 끝이 없이 계속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99%도 좀 토나왔다. 수입으로 봤을 때 미국의 제일 가난한 사람의 수입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의 가장 부자보다 더 많이 번다. 아예 겹치질 않는다고. 99%라고? 진짜? 미국 자체가 세계의 1%에 가까운데, 너희가 감히 그런 말을 해? 물론 저건 당연히 미국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랍시고 만들었겠지만 말이지. 나는 외쿡인이니까 말입니다?

 

친구 둘이 노동당 당원인데, 당 이름을 노동당으로 바꾸는데도 당규를 바꾸는데도 너무너무너무너무 오래 걸렸다. 모든 사람이 다 목소리를 내며 참여해야 하거든. 당연히 좋다 이거야. 근데 내가 그걸 보면서 '도대체 일은 언제한대?'라고 (반농담을) 했더니, 친구가 한다는 말이 그런 게 당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저렇게 모여서 규칙을 만들고, 토론하는 게 일이라는 거야. 도대체 언제부터=_=?

도대체 언제부터 끼리끼리 모여 앉아서 정치사상을 '논의'하는 게 일이 됐냐. 언제부터 일이 토의하는 것만으로 저절로 됐냐고. 민주주의 놀이를 하고 싶으거면 컴퓨터나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무려 이상적인 가상 국가도 있어. 2002년 월드컵 응원전도 민주주의적이었다. 내말은 노는 건 그런데서 놀고, 당은 일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당 뿐만 아니라 운동도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게 전략적이고 세련되어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당과 운동이 마치 책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일은 안하고, 작은 소망만 쥐고 있다가 선거에서 졌다고 패닉에 빠지는 것도 정말 웃프다.

 

원래도 노회찬 의원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언젠가 유시민하고 저공비행인가 뭔가에서 자체 인터뷰를 하면서 '그동안은 정말로 정권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내용의 말을 했는데 난 그게 너무 좋았어. 정말 좋았다고. 나는 꿈꾸는 사람 말고 일하는 사람이 정치를 '일'로 했으면 좋겠거든.

물론 윌이 그러는 것처럼 뻑하면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고 묻는 것도 분명히 싫다. 저런 질문은 그냥 상대의 입을 닫게 하기 위한 말장난일 뿐이라 싫어한다. 하지만 대안이랍시고 나오는 게 촛불, ows거나 공상 뿐이라면 그것도 만만치않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더군. (내가 1학기 때 읽은 절반 이상의 논문의 결말에 대해 개짜증을 냈었다. 나도 알아. 오버는 나쁘다.)

 

저 영상 댓글 중에 하나가 '냉소적인 현실주의자가 젊은 이상주의자를 인터뷰함'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래도 현실적인 냉소-짜증주의자인 듯. 그래도, 기왕 아론 소킨 드라마에서 시작했으니까 아론 소킨 드라마로 끝내자면, 웨스트 윙에서 토비가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보고 했던 말. '나는 안 되는 걸 해보겠다고 죽자고 하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 (대사가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뉘양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