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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35

1. EBS에서 노벨상 수상자 강연을 한다. 대략 뭘로 수상 했는지 이야기 하는 자리.

첫번째 연사 경제학상 앨빈 로스. 강연이 흥미롭다기 보다는, 시장설계의 일례로 아는 예가 나와서 놀랐다=_= 예전에 미쿡 의학드라마를 보면서 '신장 교환(A가 B에게 신장을 주고 싶은데 혈액형 등 상황이 안 맞는 경우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C와 D를 매치시켜 A가 D에게 C가 B에가 신장을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는 아마 이게 도입 전이었는지 법적인 문제(신장은 매매가 안되기 때문에 오늘 니가 주면 내일 내가 줄께하는 식의 '거래'가 안된다. 그래서 하루에 총 4건의 수술을 해야한다. 두건의 적출, 두건의 이식 수술), 도적-윤리적 문제, 심리적 문제가 총체적으로 걸려나오던 에피소드였다. 보면서도 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밑에 깔려있는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게 오늘 풀렸다고나 할까.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의문이 풀린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버림. 저 드라마를 본 사람도 없을 것 같고(ER이나 하우스 같은데, ER이 더 유력), 이 강연을 본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_= 백수 덕후는 외롭구나.

 

2. 학문이라는 건 참 재밌기도 하지. 저런 즉시 수락 알고리즘, 잠정수락 알고리즘을 보다보면 아니 저렇게 뻔한 걸 몰라서(정확히는 이론이 없어서) 안(못)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인문학은 안 그런 것 같아도 결국은 논증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 같다' 혹은 '현실에서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이지만 논증이든 실험이든 통계든 뭐든 '문서로 만들어 놓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일반화 된 의견이 되어 버린다. 대학원생이랑 공부하다 보면 굉장히 미시적인 것에 목숨 걸거든. 나는 도대체 왜 그런 것에 정도 이상의 시간을 쏟는지 이해가 안 가 ㅋㅋㅋㅋㅋㅋ <-사이비. 내가 대학원에 가면 고쳐야 할 (고치고 싶다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고쳐야 뭘 해먹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쳐야 할) 공부방식.

 

3. 하기야 문제가 뭔지 알아도 해결책을 못 내는 경우도 많다. 앨빈 로스는 '저런 뻔한 걸' 알린 게 아니라, 해결책을 못 내는 문제에 대해 굉장히 쉬운 해결책을 제시해서 노벨상을 탄 거죠. (네, 저도 알아욤. 딴지 건거 아녜욤.) 난 저 신장교환 문제를 경제학자가 풀어냈다는 게 놀랍다. 하다못해 의학계에 종사하는 행정계 학자도 아니고 경제학자가. 하기야, 누구나 장기를 직접 수여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교환(시장의 다른 모습)을 생각해낸 것도 경제학자 답다면 경제학자 답다.

 

4. 누구나 권위를 빌려온다. 누구나 권위를 필요로 한다. 판단 할 때, 인용 할 때, 의견 제시할 때. 특히 한쿡에선 이 권위 위존도가 높은 편이다. 당연하다.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에게 닥치고 말 들어야 하는 상황에 그 사람을 누르려면 그 사람보다 더 권위있는 사람의 의견을 빌려와야 하는 것이다. 누구한테는 학력이나 학위가 권위고, 누구한테는 돈 많이 주는 회사가 권위고, 어떤 사람한테는 집이나 차가 권위다.

앨밴 로스가 장기 매매에 대해 다른 식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사회학자이기도 한' 자신의 권위를 말하더라고. 니들이 경제학자를 돈이나 시장에 환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나도 세상 걱정하는 사회학자이다-라고 말한 거지.

왜인지 간판을 포함한 권위라는 게 나한테 잘 먹히진 않지만, (간판은 말고) 권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같이 살려면 규칙과 질서는 필요하고, 그 규칙과 질서는 도덕과 윤리,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든 어느정도 성취를 한 사람에겐 그마만한 권위가 있는 게 마땅하고, 그걸 인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건 잘난척이 아니라 잘난 거라고. 알겠냐고.

 

5. 간판이나 권위가 안 먹힌다고 해도 나는 (내 기준으로)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내 나름대로는 매우 잘해준다. 굳이 숨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하고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누굴 어떤 이유로 좋아하면 주변에 굳이 말 안 해도 다 알고, 본인도 내가 어떤 이유로 자길 좋아하는지 다 알더라고. 어떤 사람의 권위는 자기 입으로 나 권위있소, 내 간판 어떻소 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성취물로 보여지고, 주변 사람의 행동으로 만들어지는데 나는 권위 세워주는 사람 중에 한 명. 대접을 받을만 하면 대접을 받아야죠.

 

6. 아부쟁이란 말을 안 듣는 이유는, 편애를 해도 그 영역에 대해서만 해서 일까. 아, 댓가를 안 바라는군. 너님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좋은 작품이다, 이 노동자야! <-최종 결론?

 

7. 막걸리 마시고 취했나. 배가 되게 부르긴 하다. 꺽.

은퇴견(맹인안내견, 수색견 등 인간의 일을 대신하다가 은퇴한 개)를 키우고 싶다. 나는 뭔가 존경할 것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것을 잘해서, 그것에 특출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일은 있는데 어떤 사람을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애정을 갖는 일이 거의 없다. 동물이라면 정을 줄 수도 있을 것 같고, 저런 일을 했던 개라면 어쨌든 나보다는 훨씬 가치있는-무슨 일을 해서 가치있다기 보다는 욕망의 절제라는 의미에서 가치있고 존경할 수 있는 '격'을 갖고 있을 것 같다. 내가 좀 인격이 모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