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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없이 산다 4

외쿡에 나오면 자기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된다. 이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랑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못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못한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인간이 지 나라에 대해 알리가 없다. 그리고 재미있게도(그리고 당연하게도) 지 나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인간은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 혹은 자기 자신을(상황을)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한다. 우리가 죽도록 배워왔지만 자꾸 까먹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전제는 여기서도 통한다. 사회를 인식 못하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을리가 없잖슈.

나는 나에 대해서 퍽 잘 아는 편이다. 달리 말하면 정체성이 있다. 한쿡문화와 사회에 대해서도 꽤 잘아는 편이다. 나는 민족적 정체성도 있다. 그리고 내가 행정적으로 한국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흔히 '한국에서만 사는 관념적 자유주의자'들의 큰 착각 중에 하나가 정부란 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글쎄. 당장 정부가 없어지면 난민이 되는 건 알고 있니. 너 난민되면 사회적으로 어떤 취급 받는지 아니. 난 알아. 뉴질랜드에서 호주에서 캐나다에서 간접적으로 봤거든. 사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60년 전에는 난민이었거덩. 무작정 행정부를 싫어해봐야 될일도 안 된다, 게을러 터진 것들아.
민족적 정체성도 별거 아니다. 나는 문화적으로 한국인이다.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음식 좋아하고, 미적 기준이라는 것도 나름 한국에 맞춰져 있으며 정서적으로도 한국인이다. 그게 현대 한국이라고 할 수는 없고, 정작 한국에서는 이상한 인간 취급 받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국가-민족 정체성이 없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하긴 없어도 사는덴 큰 지장없어 보이긴 하더라만.

민족 정체성이라고 해봐야 개인 정체성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부모랑 사이가 아무리 거지같아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된다. 해외로 입양간 사람들이 한국에 와 보는 건 일종의 정체성 찾기다. 내 나라와 내 가족은 저쪽에 있지만,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건 여기서 찾아야 하거든. 내가 생긴 거, 내 입맛, 내 건강, 내 유전적인 성질 따위를 찾으러 오는 거다.
나도 민족 정체성을 확립한지 얼마 안됐지만, 한국 사람들은 민족 정체성이 사실상 없는 것 같다. 행정적인 정체성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한국이라는 정부가 무슨 행정을 하는지 모르는데 뭔놈의 정체성이 있겠나. 게다가 그걸 잘났다고 관심없다고 큰소리로 말한다. 하긴 관심있다고 하는 것들도 크게 별반 다를 것도 없다. 하는 일이 없잖슈. 아니 하는 일은 있는데 성과가 없다고 해야하나. 한쪽은 게으르고 한쪽은 무능력하니 뭐가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지.

여기서 한국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든 돌아가는 말은 결국 그게 우리라는 거다. 그게 한국이야. 그게 나고.
이명박이 싫어? 이명박은 뭐 땅에서 솟았냐 하늘에서 떨어졌냐. 그 사람 무려 50% 이상의 득표율로 선출 됐거덩. 실제로는 30%라고 백날천날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거다. 어쨌든 이명박은 50%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됐으니까. 그러니 투표 안하는 것도 선택이라는 것들이 할말이 없는 거다. 너네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조둥이만 존나 날리니까. 꼭 이런 것들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떠들던데 도대체 민주주의 뜻이나 아니. 가만히 앉아서 입만 놀리는 게 무슨 놈의 민주주의냐고. 근데 이상하게 이런 것들이 꼭 직접 민주주의 좋아해. 정신이 나갔나? 하기야 민주주의를 모르니 직접 민주주의가 어떻게 쌈 싸먹는 건지 알게 뭐냐. 그냥 남의 나라에서 그 비슷한 걸 한다는데 괜히 멋진 것 같으니까 좋아하는 거겠지. 그런 정신상태로 백번 죽었다 깨나도 민주주의 근처에도 못간다. 갈 일도 없겠지만. (그런 자유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다. 한국에서 주민증 말소하고 어디 섬에 들어가서 혼자 사는 거다. 그럼 어쨌든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물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옴짝달싹을 못하고 사는 거가 되기도 하니까, 그걸 즐기려면 님들은 꼭 자연주의자도 같이 해야할 듯.)

어른들은 항상 애들보고 '요즘 애들은...'이라고 말하지만, 애들은 항상 어른이 하는 짓들을 무섭게 따라한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그대로 따라한다. 가혹하게 왕따를 하고, 왕따를 당하고, 외면하고, 모르는 척하고, 무관심하고, 자살하고. 여기에 우리가 없다고 말할 수가 있다는 건가. 그 애들이 하는 짓이나 그 애들이 처한 환경이 어른들이 안하는 짓이 있고 어른들의 환경과 다른가. 다르지 않다. 똑같거든?
말은 쉽다. 악한 것들이 있어. 그 악한 것들에 왜 자기가 속해있다고 생각하질 않는 거지. 너도 악해. 나도 악하고. 우리 모두 쥰내 구질구질하고 무능력하고 게으르거든? 제발 좀 알아라.

나는 나나 한국에 대해서 창피해하지 않는다. 이게 한번 상황파악이 되니까 창피해 할 게 아니더라고. 아니 무엇보다, 뭘 알아야 고치던가 말던가 할거 아냐. 아마 이런 이유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너는 네 나라를 좋아하는구나' 혹은 '너는 네 나라에 대해서 잘 아는구나'라는 말을 듣는다. 칭찬도 꽤 많이 들어. 똑똑하다고 ㅋㅋㅋ 난 외쿡 나오면 공고 나온 여자가 아니라 졸지에 똑똑한 여자가 된다. 하긴 얘네는 한국 라벨을 못 읽으니까 내 라벨을 읽을 수 있을리가 없지.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지. 나에게 '너는 한국을 싫어하는구나'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100%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한국을 싫어하고 창피해한다. 그래서 내가 한국을 싫어해서 싫은 점만 후벼 판다고 생각하고 듣기 싫어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 생각이 더 웃긴 건, 내가 한복이나 한옥 좋아하고(내 미적 취향이 이런 걸 어쩌라고. 난 심지어 떡판도 좋아해. 내 눈엔 그게 너무 이뻐 보여!) 정조님 좋아하고, 조선사를 재밌어하는 거 때문에 그런다. 내가 가끔 '이런이런 점은 조선이 더 낫다'라고 하면 정말 무지하게 싫어하는데, 역사가 좋은 의미로 진보하지 않는다는 걸 못 받아들이는 것도 자아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어떤 점을 싫다고 말하는데 내 생각엔 별로 고칠 생각이 없어보인다. 솔직히 자기가 싫다고 말하는 그 점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은 남들한테 욕 먹기 싫으니 먼저 그냥 씨부리는 걸로 보인다. 그것도 나름 자기 방어인거지.
얼마전엔 친구랑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싫으면 고쳐' 그랬더니 '그게 쉬운가!' 이러더라고. 내가 언제 쉽댔나. 쉬우면 고치고 고치기 어려우면 안 고칠건가? 그럴거면 정말 고칠 생각이 없는 거잖아. 정말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나 아니면 그냥 별 생각이 없거나.
외쿡에 나오면 지금 이 순간 내 면상을 살리기 위해 '나는 우리나라의 이런 점이 정말 싫어!'하고 오버하는 애들이 있다. 주로 3세계에서 온 애들이 그렇다. 백인 나라에 와서 백인을 동경하고, 자기 나라의 문화나 자기가 뽑아놓은 대통령이 부끄럽고 싫다고 하는 애들. 최소한의 정치 참여도 안 하고, 그렇다고 그 문화를 고치려고도 안 하고 지도 그냥 그  비슷하게 살면서.

빈에 있을 때 했던 이야기 중에 제일 잊혀지지 않는 말이 이 거랑 관련 된거다. 참고로 다 하루에 들은 말이었음. 중동 영어 교수하던 아저씨가 빈으로 이민을 왔는데 '우리나라 정치상황 졸 개같음. 그 나라가 그 꼴인 건 내 탓이 아니잖아? 그래서 도망왔어'라고 말하는데, 같이 있던 나의 스무살짜리 독일 룸메이트는 이걸 이해를 못하는 거지. '한국에선 여자가 담배피는 걸 싫어하는 문화라 나는 직장에서 담배를 숨어핀다'라는 내 친구의 말에 '그런 대접 받아도 싸우지 않아?'라는 말을 했던 애였거든. 교수라는 작자가 자기 나라가 그 모양 그 꼴인 게 자기 탓이 아니라니 골 깨는 거지 ㅋ 하긴 담배 숨어 피는 내 친구는 기자다.

입맛이 쓰다. 나도 다를 게 없어서 욕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고. 정확히는 욕하고 설명한다.
참 구질구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