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베를린 시장이 베를린을 두고 한 말이다. 베를린에서 살아보기 전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내가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되게 못한 그래피티, 지하도의 오줌냄새, 넓은 인도, 트램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정도였다. 베를린 첫 인상 별 감흥 없음. 가난한 것도 모르겠지만 섹시한 것 역시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꽤 예쁜 도시에 속하는 빈에서 석달이나 있다 왔으니 2차 대전 이후 새로 만들어진 이 회색 도시에 그렇게 감흥 받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오줌 냄새는 그 날 이후로는 맡아본적 없지만 약간 의외이긴 했다. 빠리도 아니고 여긴 독일이잖아.
베를린은 독일이 아니다. 베를린은 그냥 베를린이다. 베를린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규칙에 목매지도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구는 사람이 꽤 많다. 아무데나 그려진 그래피티 하며, 요즘은 그게 인기인건지 머리를 형광색으로 염색한 펑크족도 많다. 독일에서는 단연 가난하고, 서유럽에서도 손꼽히게 가난한 베를린. 집회는 심심하면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베를린은 자유롭다. 엔간한 짓은 다 눈감아준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의 권리가 소중하고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으므로 무엇이든 표현해도 된다. 가난해서 물가도 싸니까 누구든 와서 살 수 있다. 집회하면 차도도 막아주고 트램, 버스도 다 돌아간다. 편하게 집회하라고 경찰이 보디가드 해주나?
새 건축물로 가득채워진 독일 도시하면 아마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를 꼽을 텐데 이 두 도시의 성격이 이런데서 갈린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혹은 물류도시)라고 할 수 있다. 키 큰 건물이 많고 돈도 많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 스카이라인과 부유함을 자랑스러워한다. 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프랑크푸르트를 '못 생겼'다고 생각한다. 돈만 많고 예술이나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베를린 사람들은 자신의 중용과 문화적인 풍부함을 자랑스러워한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사람들도 베를린을 그지같다며 좋아하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멀티 컬쳐)는 베를린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베를린은 미혼인구 뿐 아니라 미혼부, 미혼모의 비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도시다. 아마 동성애자의 비율도 꽤나 높을 것이다. 월드와이드게이게이시티하면 시드니가 꼽히겠지만, 유럽게이게이시티하면 단연 베를린이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시드니는 좀 블링블링게이게이하고 베를린은 그냥 게이게이하다고 해야하나. 이건 유럽 성향, 혹은 독일 성향일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무지하게 반가워, 우리 도시에 잘 왔어~'하지 않는다. 그냥 '왔냐? 알아서 잘 놀아라'는 분위기. 문은 항상 열려있다. 월컴송을 불러주지도 않지만 아무도 내쫓지도 않는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으므로 별별 인간이 다 모이고, 별별 인간이 다 모여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므로 별별 인간이 별별 짓을 해도 다 괜찮다. 보통 예술은 이런 데서 나오기 마련이다.
영화제같은데서 일을 하다보면 매년 일정한 정보(작품)를 얻게(보게) 된다. 내 경우엔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주로 일을 했었고, 매년 전세계에서 오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람들은 작품이 예술가(개인)의 능력과 역량으로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건 환경이 받쳐줘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독립 애니메이션이나 학생 작품은 혼자 만들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지만 그 사람이 어디서 활동하는지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가 꽤 큰 영향을 준다. 나라별 특징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작품은 전반적으로 내러티브가 무척 약하다. 한예종 학생 작품은 노가다에 강하다. 그냥 척 봐도 물리적인 시간과 공력을 굉장이 많이 들였다는 게 눈에 보인다. 홍대에는 애니메이션 학과가 없는데도 가끔 작품이 들어오는데, 좀 감각적인 편이다. 아마 광고만드는 학과에서 많이 넣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래서 자극적인 것도 많다. 재밌었던 건 세종대려나? 새로 생기고는 정말 말도 안되게 엉망인게 많이 들어왔는데, 세종이 요즘 디자인대학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라는 말이 들리고 3~4년이 지나니 작품의 질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개인보다는 환경이라는 거지. 김태호PD가 합격했던 동아일보나 제일기획에 들어갔다면 무한도전 같은 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독일이 아니라 베를린에 온 제일 큰 이유는 이거다. 유럽 애니메이션 하면 영국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프랑스의 아트 애니메이션밖에 없었다. 근데 독일에서 오는 작품이 점점 달라지더라고. 작품이 많이 온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어쨌든 한국을 나와야 겠다고 결심을 했으니 괜히 그게 뭐든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작 와서는 추워서 나가지는 않고 만날 도서관에서 오디오북, 라디오드라마, 음악만 죽도록 듣고 있다. 와서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기본적으로 '청각문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에 느릴 수 밖에 없었던 거야-라는 작은 깨달음.
그 청각문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베를린 시장이 베를린을 두고 한 말이다. 베를린에서 살아보기 전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내가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되게 못한 그래피티, 지하도의 오줌냄새, 넓은 인도, 트램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정도였다. 베를린 첫 인상 별 감흥 없음. 가난한 것도 모르겠지만 섹시한 것 역시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꽤 예쁜 도시에 속하는 빈에서 석달이나 있다 왔으니 2차 대전 이후 새로 만들어진 이 회색 도시에 그렇게 감흥 받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오줌 냄새는 그 날 이후로는 맡아본적 없지만 약간 의외이긴 했다. 빠리도 아니고 여긴 독일이잖아.
베를린은 독일이 아니다. 베를린은 그냥 베를린이다. 베를린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규칙에 목매지도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구는 사람이 꽤 많다. 아무데나 그려진 그래피티 하며, 요즘은 그게 인기인건지 머리를 형광색으로 염색한 펑크족도 많다. 독일에서는 단연 가난하고, 서유럽에서도 손꼽히게 가난한 베를린. 집회는 심심하면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베를린은 자유롭다. 엔간한 짓은 다 눈감아준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의 권리가 소중하고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으므로 무엇이든 표현해도 된다. 가난해서 물가도 싸니까 누구든 와서 살 수 있다. 집회하면 차도도 막아주고 트램, 버스도 다 돌아간다. 편하게 집회하라고 경찰이 보디가드 해주나?
새 건축물로 가득채워진 독일 도시하면 아마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를 꼽을 텐데 이 두 도시의 성격이 이런데서 갈린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혹은 물류도시)라고 할 수 있다. 키 큰 건물이 많고 돈도 많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 스카이라인과 부유함을 자랑스러워한다. 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프랑크푸르트를 '못 생겼'다고 생각한다. 돈만 많고 예술이나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베를린 사람들은 자신의 중용과 문화적인 풍부함을 자랑스러워한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사람들도 베를린을 그지같다며 좋아하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멀티 컬쳐)는 베를린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베를린은 미혼인구 뿐 아니라 미혼부, 미혼모의 비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도시다. 아마 동성애자의 비율도 꽤나 높을 것이다. 월드와이드게이게이시티하면 시드니가 꼽히겠지만, 유럽게이게이시티하면 단연 베를린이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시드니는 좀 블링블링게이게이하고 베를린은 그냥 게이게이하다고 해야하나. 이건 유럽 성향, 혹은 독일 성향일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무지하게 반가워, 우리 도시에 잘 왔어~'하지 않는다. 그냥 '왔냐? 알아서 잘 놀아라'는 분위기. 문은 항상 열려있다. 월컴송을 불러주지도 않지만 아무도 내쫓지도 않는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으므로 별별 인간이 다 모이고, 별별 인간이 다 모여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므로 별별 인간이 별별 짓을 해도 다 괜찮다. 보통 예술은 이런 데서 나오기 마련이다.
영화제같은데서 일을 하다보면 매년 일정한 정보(작품)를 얻게(보게) 된다. 내 경우엔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주로 일을 했었고, 매년 전세계에서 오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람들은 작품이 예술가(개인)의 능력과 역량으로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건 환경이 받쳐줘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독립 애니메이션이나 학생 작품은 혼자 만들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지만 그 사람이 어디서 활동하는지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가 꽤 큰 영향을 준다. 나라별 특징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작품은 전반적으로 내러티브가 무척 약하다. 한예종 학생 작품은 노가다에 강하다. 그냥 척 봐도 물리적인 시간과 공력을 굉장이 많이 들였다는 게 눈에 보인다. 홍대에는 애니메이션 학과가 없는데도 가끔 작품이 들어오는데, 좀 감각적인 편이다. 아마 광고만드는 학과에서 많이 넣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래서 자극적인 것도 많다. 재밌었던 건 세종대려나? 새로 생기고는 정말 말도 안되게 엉망인게 많이 들어왔는데, 세종이 요즘 디자인대학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라는 말이 들리고 3~4년이 지나니 작품의 질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개인보다는 환경이라는 거지. 김태호PD가 합격했던 동아일보나 제일기획에 들어갔다면 무한도전 같은 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독일이 아니라 베를린에 온 제일 큰 이유는 이거다. 유럽 애니메이션 하면 영국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프랑스의 아트 애니메이션밖에 없었다. 근데 독일에서 오는 작품이 점점 달라지더라고. 작품이 많이 온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어쨌든 한국을 나와야 겠다고 결심을 했으니 괜히 그게 뭐든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작 와서는 추워서 나가지는 않고 만날 도서관에서 오디오북, 라디오드라마, 음악만 죽도록 듣고 있다. 와서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기본적으로 '청각문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에 느릴 수 밖에 없었던 거야-라는 작은 깨달음.
그 청각문화에 대해서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