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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퇴계 답사

-이번엔 엉뚱한 터미널로 가지 않기 위해, 안동은 경상북도 안동은 경상북도라고 생각하며 갔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당연히 영동, 경부노선으로 갔지. 게다가 영동, 경부노선은 또 처음 간단 말이지. 더듬더듬 찾아갔는데, 안동표는 안파는 거다. 나보고 호남선으로 가래! 뭐야, 언제부터 안동이 호남으로 옮겨간거야! 투덜투덜. 하면서 호남선으로 갔지. 안동은 경상북도에 있는 거 맞음=ㅠ=

-겸암정사에서 잤음. 대략 400년 전에 세워진 집. 경관이 죽여주네요.
나도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그랬슈. 이런 경관을 앞에 두고 책 읽으면서 자기 수양만 하면 됨. 러블리.
물론 이게 가능할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번 답사에서 퇴계 종손과 겸암의 종손을 만났다.
퇴계 종손 분은 조선시대...라고까진 할 거 없겠지만 어쨌든 '이미지상' 조선 실내복을 입고 계셨다.
겸암 종손 분도 현대복으로 긴팔, 긴바지, 양말을 다 챙겨 입고 계시더군. 그냥 평상복이었지만, 같이 있던 어떤 어른이 난닝구에 반바지 입고 마룻바닥에 널부러져있던 걸 생각하면;;; <-진짜 더웠다. 난 치마입고 쓰레빠 끌고 다녔는데도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어른들'을 뵙기 때문에 같이 간 선생님 두분은 꼼짝없이 긴바지에 구두. 윗도리는 반팔이었지만...
내가 이번 답사에서 제대로 의복을 갖춰입은 사람을 본 사람은 퇴계 종손, 도산서원에서 우연히 만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 대표의 수행원 뿐이었다. 긴팔 긴바지 입고 있는 사람도 겸암 종손 뿐.

-노회찬 씨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도산서원에 일부러 들린 거임. 와보고 싶었다고 한다.
난 모르는 사람한테 아는 척 못해서 악수도 못했지만, '하도 많이 봐서 왠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선생님과 다른 일행은 모두 악수도 하고 그랬음. 어쨌든 노회찬 아자씨, 가까이서 본 건 이번이 두번짼데 참 인상이 좋다. 말씀도 잘하시고, 예의도 바르고, 행동거지도 바르고. 멋있쪙.

-어쨌든,
그러니까 남에게 '표본'이 되는 모습을 항상 하고 있어야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조선시대 존경받는 학자의 사고방식.
퇴계가 성학십도에 숙흥야매잠을 넣어서 하루죙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거 조심해라 저거 조심해라 했던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남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인간이 되려면 존경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하고, 그럴려면 똑똑하고 생활도 발라야 하고 하여간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_= 퇴계님, 잔소리 대왕이신 듯...
난 못해, 날이 갈 수록 욕망에 약해지는데.

-물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잘하고,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만 잘한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잘해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막 대한다-라기 보다는 아무리 좋아해도 안 만난다.
자랑이냐고? 절대 아니다. 나도 그렇게 하는 거 좋다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다만 못 할 뿐이다.
유전자에 문제가 있나 =_=;;;

-쓰레빠신고 등산 초큼(총 1시간 정도) 했다.
히말라야에서 쓰레빠 신고 짐짝 40킬로씩 짊어지고 다니던 포터가 생각났다. 자기 힘든 걸 알면 다른 사람도 힘들다는 걸 알아야 할텐데... 뭐 어쨌든, 나는 맨 몸이었고, 나름 요령이 생겨서 한번 살짝 넘어졌지만 그 외에는 잘 다녔다. 근데 넘어질 때 짚었던 팔에 근육통이--;;

-아, 퇴계 종택에 갔을 때 아리조난지 콜롬비안지 뭐시기 대학 코쟁이 교수가 왔있었다. 구경하러 왔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는데 동양학인지 유학인지를 전공하는 모냥. 왜 이따위로 말하냐긍?
퇴계 종손이 서서 말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무릎 꿇거나 다소곳이 앉아있을 때 혼자 퍼질러 앉아있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방에서 따로 있을 때는 이쁘게 앉아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릇이 안되서 불편한 건 알지만 백인들 흑인들 다소곳이 앉을 줄 안다. 그색힌 안하는 거였다. 뷁), 제일 싫었던 건 광고+선물이라고 하는 하여간 정체를 뭐라고 하긴 좀 그런 물건을 받고 고맙습니다 하는데 '셰셰'라고... 나는 순간 '동양학 공부한다는 새끼가 중국 한국 다르다는 걸 몰라? 저 띱떼끼가?'하는 생각이 들어 눈에서 불꽃이 튀었는데, 다들 못 들은 척 해서 나도 못 들은 척 했다=ㅠ= 나도 어른 앞에서 함부로 썽 내는 스퇄은 아니라규.

-영어권 애들은 코딱지 만한 나라에 자기 언어가 따로 있다는 걸 이해 못하는 경우가 종종있는 것 같긴 하다. (체험상)
단순히 지네들은 다른 나란데도 영어 쓰니까 이해가 안 가는 모양. 니들이랑 우리랑 같니. 다양성이란 말은 저쪽에서 먼저 만들어진 것 같은데 저것들이야 말로 그런 걸 잘 몰라.
인간 뇌에 다양성이란 개념 자체가 탑재 된지 얼마 안되긴 했지.

-나는 여자고, 여성주의자다. 아니, 애초부터 나는 여성주의자라기보단 인권 공부를 했다고 말했고, 그나마도 인간 좋아해서 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여자다. 종갓집에서 '제사' 지낸다고 하면 20대 초반 까지는 쎄가 빠지게 제삿밥 차리는 여자만 생각나는 여자였다.
지금도 뭐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여자를 억압하는 제사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자도 그만큼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큼 여자도 제사에 참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랬지 않나.
날이 갈 수록 축소되고 사라지는 전통문화에 좋아하는 마음과 안타깝고 분노하는 마음이 함께 인다. 같이 하느니 '차라리 없어지고 마는 게 낫다'는 태도도 짜증이고, 전통이나 문화라는 게 뭔지 모르고 자라는 것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답사에서 간 곳 : 겸암정사, 하회마을(이젠 마을이 아니라 그냥 관광촌인 것 같다), 병산서원, 퇴계 태실, 퇴계 종택, 도산 서원, 청량산 등.

-그리고 대운하 공사현장 잘 구경했슴돠. 아주 꼴보기 싫더구만요.
센스가 아주 더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