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는 진지하다

the planet of the apes

이 시리즈와 본 시리즈엔 큰 문제가 있다. 한 편을 보려고 했는데 그 한 편을 다 보면 결국 나머지 영화도 다 봐야 함. 10시쯤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현재 새벽 4시. 아오.

 

나는 진심으로 시저가 잘 생겼다고 생각한다. 성격도 좋고 되게 멋있어. 사실 난 침팬지보단 고릴라 파이긴 하지만 시저는 종과 상관없이 느무 멋진 리더 아니냐고.

여튼 어떤 인간은 이 영화 시리즈에 나오는 인간들이 너무 그지같아서 시저가 상대적으로 더 멋지게 느껴지는 거라고도 하지만 나는 딱히 인간 캐릭터가 그지같이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시저가 인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갖고 있는 것도 인간에게 키워져서 그런 것이고 시저가 그렇게 매력적인 것도 어느 정도는 인간성(물론 보통 인간의 인간성이 아니라 초월한 인간의 인간성. 이걸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하여간 그것)을 갖고 있어서 멋진 거니까.

 

영화는 시저가 가진 (표면적인) 인간성을 말로 부여한다. 유인원이 똑똑해지고 나서도 말을 하는 건 사실상 시저하고 코바 밖에 없다. (시저와 코바는 형제 관계고 둘은 인간이 만든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임.) 그리고 시리즈의 마지막엔 인간은 말을 잃기 시작하고 유인원은 시저 말고도 말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언어는 진화와 퇴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3편으로 가면 유인원이나 인간이나 어휘력이 비슷해진다. 인간 쪽이 문법에 맞는 말을 하긴 하지만 철모나 진지에 써놓은 어휘를 보면 인간이 단순히 공격적이고 지랄 맞고 거지 같아서 전쟁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전쟁이라는 행위와 전쟁을 선택하는 사고 자체가 퇴화라는 상징 같다. 반면 시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을 하기 싫어하고 오히려 인간이 유인원과 함께 사는 게 싫다면 우리가 다른 데로 옮겨 가서 살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시저가 그런 선택을 하는 건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과 공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전쟁은 이기든 지든 좋을 게 없다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전투 장면은 통쾌하거나 엔터테인 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시저는 인간과의 전쟁과 전투를 할 때 '아 씨바...' 하는 표정이고 연출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3편으로 가면 전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전투가 아니라 상대방을 죽이고 노예로 만들고 학대하는 게 전쟁의 본질이다. 멋지고 속 시원하게 총 쏘고 포탄 던지고 하는 게 아니라고. (물론 이것도 실전에서 하면 전혀 멋지지 않다고 한다. 애초에 전쟁에서 총질할 땐 머리를 들 수가 없다고 함.) 물론 1편에서 시져가 NO!라고 외치고 유인원의 대탈주극을 펼칠 때는 속이 씨원함. 멋지기도 하고 ㅋㅋ 그때도 시저는 무차별적인 학살을 못하게 한다. (복수는 한다.) 오히려 학살을 시도하는 건 인간이다.

 

아, 노바 캐릭터는 표면적인 인간성인 말과 혐오를 잃는다. 그대신 초월적인 인간성을 얻지. 백인여자금발백치 캐릭터 딱 싫어하는 조합인데 이 영화에서 백인금발여자어린이의 이미지를 순수함이라는 상징으로 실컷 이용하긴 하지만 캐릭터 자체나 캐릭터의 방향성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월이가 처음 나왔을 때 평론가나 매니아들이 환장한 부분 중에 하나가 결말이 될 때까지 대사가 없는데도 이야기 진행이 되고 무엇보다 대단한 건 아이들이 대사도 없고 노래도 없는 영화를 집중해서 본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 시리즈도 그런 면이 있다. 시리즈 전편에 시저의 대사는 거의 없지만 (2편에선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대사가 꽤 많긴 하다. 시저 말고도 인간도 그런 대사를 좀 많이 함.) 이 시리즈는 시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걸 너무 잘 보여준다. 시저의 성장과 시저가 느끼는 감정, 정체성 때문에 느끼는 갈등이 연기와 연출로 다 이야기가 된다. 조연들의 이야기도 굉장히 잘 보여주는데 이건 모든 걸 설명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아서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대사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정보를 제공하며, 캐릭터를 설명하는 훌륭한 도구이다. 영화에서 이걸 넘나 잘하는 작가가 아론 소킨이고 스튜디오로 가면 마블도 이걸 참 잘한다. 대사는 잘 쓰기 정말 힘들지만 그렇다고 대사가 밋밋하다고 영화가 밋밋한 건 또 아니다. 하지만 대사가 없는 시나리오를 쓰고 잘 표현하는 건 정말 힘들다. 혹시 관객이 이걸 못 알아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어쩔? 그래서 어른 영화의 대사도 대놓고 던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애들 영화라고 다 쉽게 설명하는 건 또 아님. 인사이드아웃을 보면 레일라의 우울증(혹은 브레이크다운)은 기쁨이 조정석을 잃어서가 아니고 슬픔이가 조정석을 점령해서가 아니다. 조정석 자체가 망가져서 생기는 게 우울증이다. 이 정확한 표현 어쩔겨. 이걸 대사로 구현했다면 너무나 쉽게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 재미없는 장면이 됐을 것이다. 영상언어는 잘만 표현하면 단순 정보전달이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혹성탈출 시리즈는 (특히 3편은) 미장센이 아주 좋은데 그게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이야기와 정보를 담고 있고 캐릭터를 보여준다. 너무 잘 만들어서 볼 때마다 감동하는데 그러면서도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시저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게 한다. (본 시리즈는 액션만 골라본다. 딱히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가 막 좋아 죽겠고 그런 게 아님. 본 시리즈는 그냥 액션 연출과 음악이 넘나 좋은 영화. 연기도, 아이디어도...)

 

장면마다 영상언어를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다루는 상징 하나에 대해서만 썼는데도 이렇게 길어지니 원.

 

 

덧.

글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영화 3부작 중에 1편 감독과 2, 3편 감독이 다른 게 꽤 많네. 이 영화는 1편은 루퍼트 와이어트가 2, 3편은 맷 리브스가 했다. 본 시리즈 1편은 더그 라이먼, 나머지는 폴 그린그래스가 했다. 그러니 꼭 한 명의 감독이 비전을 갖고 진행하지 않더라도 시리즈는 얼마든지 좋을 수 있다능. 하긴 미드도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지고 마블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