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게으르게 하다가 다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게으르게'란 하루에 한시간 정도만 (정 줄 놓고 성의 없이) 연습했던 거고 다시 '열심히'란 하루에 두세 시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연습을 하겠다는 것이다. 링링처럼 하루에 마흔 시간은 못해도 두 시간은 해야지. 전공자에겐 택도 없이 짧은 시간이고 취미생치고는 겁나 긴 연습시간. 한 마디로 애매~허다. 근데 지난 6년 간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했던 건 피아노 밖에 없다.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면서 덕질도 많이 하지만 매일 하는 건 밥 먹고 양치하고 자고 피아노 치는 것 밖에 없음. 샤워도 매일 안 하는 인간인지라 ㅋㅋ
하루에 두 시간, 일주일에 5일, 일년 52주, 6년으로 계산하면 3천 시간이 넘는다. 실제로는 주 7일이었고 처음 시작할 땐 하루 3시간도 많이 했었기에 6년을 꽉 채우진 못했지만 그냥 퉁 쳐서 3천 시간이라고 하련다. 이렇게 됐으니 만 시간은 채워봐야 쓰것다. 물론 연습시간에 비례해서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특히 내 경우엔 피아노를 개똥으로 못 치고 재능도 없다. 하지만 집중해서 연습했을 때랑 그냥 건반을 두둘길 때랑은 확실히 연습의 질과 그 결과가 다르다. 운동도 비슷했는데 멍 때리며 그냥 걷기만 하면 몇 시간 걸어도 운동효과는 없고 기운만 빠진다. 차라리 30분 집중해서 근력 운동하는 게 효과가 훨씬 좋더라. (운동은 피아노보다 더욱 재능이 없고 심지어 재미도 없다. 근데 살기 위해 한다.)
여튼 그래서 6년 전에 바이엘로 시작해서 지금은 바흐 평균율 4번을 연습하고 있다. 오래, 많이 연습한 것에 비해 연습한 곡이 많지도 않고 아직도 레퍼토리가 없는데 올해는 평균율 열심히 하고 내년부턴 슬슬 18번을 만들려고 한다. 애초에 좋아하는 곡을 위주로 연습하기 때문에 그동안 했던 걸 외우고 좀 더 완성해서 레퍼토리로 만드는 것뿐 별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레퍼토리를 만들고 어느 정도 만족이 되면 피아노를 신삥으로 사주려는 원대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혹시 취미로 무언가를 연주하고 싶다면 정확히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곡이 무언지 알고 있는 게 레슨에 도움이 된다. 나는 목표가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이기 때문에 테크닉 위주로 연습을 한다. 클래식 연주는 테크닉이 90프로를 차지한다. 테크닉이 없으면 연주 자체가 안되고 표현도 안된다. 그리고 테크닉을 익히는 건 보통은 재미가 없다. (재미없게 가르치기도 한다. 초장부터 하농을 칠 필요는 정말 1도 없다. 전 세계에 하농을 이렇게 죽도록 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걸. 차라리 스케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 이건 전공생에겐 필수이다. 귀로 베를린필하모니와 서울시향을 구분 못한다면 좋은 연주자가 되긴 힘들다고 본다. 연주의 어느 부분이 1류를 만드는지, 소리의 질감과 밀도를 듣지 못하면 구현도 못한다. 내가 손꾸락을 움직이는 재능이 없음에도 그럭저럭 연습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내는 소리가 어떤 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생 중에 연주를 하면서 자기가 만드는 소리가 아닌 듣고 싶은 소리를 듣는 사람이 꽤 있다고 알고 있는데, 내 경우엔 좋든 싫든 내가 만드는 소리를 꽤 정확히 듣는 편이다. (어떤 의미론 고문...) 그 대신 지적을 받았을 때 문제점을 인지하고 그 부분을 고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능력이 안 돼서 못 고치는 건 뭔 소린지 알아도 못 고친다. 개빡침이 이런 데서 생기는 거지 ㅋㅋㅋ
감상 포인트는 연주자들과 함께 앉아있는 두다멜. 편하게 앉아서 가끔 쪼개는 게 왤케 좋은가몰랑. 연주자인 랑랑도 듣고 있는 오케스트라도 즐거워 보인다. 실제로 재간도 많이 부리고 특히 앞의 1분은 농담으로 가득 차 있다. 평생 음악을 했고 일로 음악을 하고 저 정도 레벨이 되려면 정말 하루에 마흔 시간은 음악에 빠져서 살아야 할 텐데 그래도 여전히 음악이 좋고 들을 때마다 즐거운 링링들. 좋아한다.
나는 딱히 이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제대로 성장한 인간이라면 저런 기술이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클래식 음악은 금수저만 할 수 있느니 없느니 해도 결국 본인의 의지와 노력과 시간을 얼마나 똑똑하게 활용했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랑랑과 두다멜은 신용 자본은 물론이고 사회적 자본, 인적자본도 없는 곳에서 시작해서 저기 앉아있다. 그리고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하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그럭저럭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나서 부모님이 달달 볶아서 음악을 하고 그럭저럭 좋은 대학 나오고 연주회는 일 년에 겨우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자칭 예술가인 교수가 얼마나 많은지 아냐. 음악을 하고 싶다면 교수 입네 하는 사람이 목표일 게 아니라 랑랑이나 두다멜이나 송창식이나 함춘호 이승환(작곡가) 같은 사람이 목표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좋은 대학 나온다고 되지 않음.
노력해서 능력자가 된 사람을 질투하진 않는데 월드클래스의 실력을 갖고 있는데 인성까지 좋으면 좀 짜증 난다. 꼭 성격까지 좋을 필요는 없잖아. 불공평한 건 다른 게 아니다. 이게 불공평한 거지.
덧.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게 농담 설명하는 거라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설명한다. '하루에 마흔 시간 연습'이란 twosetviolin이라는 유튜버이자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유행어이다. 위의 동영상 첫 댓들이 랑랑은 피아노계의 링링이라는 건데 링링도 그 투 셋 바이올린이 랑랑을 비유해서 만들어낸 말이다.
시초는 애들을 달달 볶는 '아시아 엄마'를 패러디한 동영상. 아들이 마더스데이에 엄마에게 '해피마더스데이!' 하니까 엄마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연습이나 더 하라'며 '옆집 링링은 하루에 마흔 시간은 연습한다'더라 등등의 흔한 레퍼토리로 애를 뻘쭘하게 만든다. 사람에 따라 보다가 눈에서 육수가 나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