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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관성

독서와 글쓰기는 그냥 하던 것이다. 그냥 20년 전에 좋아했던 거니 지금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글은 좋은 걸 골라낼 줄도 알고 대충 쓸 줄도 아니까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쪽은 안 팔리는 정도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었다. 그때 하도 그지같은 걸 많이 읽고 써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깨달은 게 몇 개 더 있다. 지금 한국에서 읽고 쓰고 공부하는 인문학의 근원은 대부분 서구 근현대 시기에 나온 철학, 사회학에 기원한다. (서구권은 더 고전으로 내려간다.) 공부를 하다 보니 나는 이게 한국이랑 잘 안 맞더라고. 서구 사회학을 한국 사회에 끼워 넣는 건 당연히 잘 안 된다. 사회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까 당연하다. 자기들이 자기 사회를 보고 만든 이론도 딱 안 맞아서 자꾸 업데이트를 하는데 아시아는 전반적으로 자기 이론을 만들기보다는 계속 서구에서 이론을 가져다 쓰는 식이다. 애초에 업데이트할 소스의 기반이 이 사회에 있질 않으니 계속 잘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인문학에도 관심을 잃었다. 인문학 자체가 아니라 인문학이 행해지는 방식에 흥미를 잃은 걸 수 있는데 굳이 둘을 구분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다. 여성주의도 마찬가진게 내가 한창 여성주의에 관심을 두던 때는 아무도 여성주의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학문이나 운동으로서의 여성주의에 완전히 관심을 잃고 나니까 다들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네=ㅠ=? (현재 나는 내 주변 1미터 정도,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보여주는 서사와 캐릭터가 가진 여성주의 정도에만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별로 그런 일이 없는 모양인데 나는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계기가 몇 번 있다. 고등학교 때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었는데 거기서 읽은 '모르는 것도 죄야!' 하는 지문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나에게 일종의 방향성을 준 것 같다. (지금은 모르는 게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건 그냥 모르는 거다. 몰라서 생기거나 저지르는 일은 그냥 그대로 감당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미세먼지 싫다고 실내로 기어들어가고 먼지 없애는 기계 팍팍 돌리고 싶으면 돌리면 된다. 어차피 그 뒷감당도 우리가 한다. 애초에 미세먼지를 모기나 파리나 고래나 새우가 만든 게 아니잖아?)

그리고 20대 초반에 뉴질랜드 갔을 때 내가 나를 인지하는 방식과 한국 사회를 인지하는 방식을 구축했고 20대 후반에 조선사 공부하면서 역사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두 번 자살시도를 했는데 그 때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게 됐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점과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인지하는데 무려 30년이 걸렸다.

30대 중후반엔 그럭저럭 편하게 살았다. 운동을 하면서 내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되었고 건강문제가 어디서 오는지도 대충 알게 되었음. 물론 알게 되었을 뿐이지 몸 쓰는 건 지금도 못하고 싫어한다. 그냥 생존을 위해서 한 것뿐인데 의외로 몸이란 게 쓰는 만큼 쓸 수 있게 되더라. (약간 신기+감동) 특이한 점이라면 인문학을 공부하고 깨달음을 얻으면 생각이 바뀌지 현실이 바뀌진 않는데 건강문제가 해결이 되면 현실 문제가 해결되는 일이 많다. 변화가 당장 피부로 느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딱히 인문학을 막 찬양하고 싶지도 않지만 일단 알아서 나쁠 건 없다. 몰라도 뭐... 취직이 안 된다거나 결혼을 못 한다거나 애를 못 낳는 건 아님. 인문학을 잘 안다고 더 행복한 것 같지도 않음.

 

몇 가지 일을 거치며 이거 여전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완전히 노년 무드였기 때문에 딱히 새로운 걸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적당히 즐기면서 갈등 없이 사는 게 목표라 가장 쉬운 걸 찾아보니 병크가 터졌나 싶기도 하다. 흥미를 잃으면 단번에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성향도 문제긴 하다. 문제는 흥미를 잃은 것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 우짤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