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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여기만 아니면 돼 5

-평소 지도를 좋아하기도 한다. 아름다운데다가 정보를 담고있기까지! 이런 다기능 좋아함. 

-여행가서 관심있는 거만 하라고 말하고 보니 관심있는 게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럼 다니면서 관심있는 걸 찾으면 되는데, 이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관심사가 일찌감치 생기고 그걸 자각한 케이스라서. 아, 일을 찾을 땐 적성에 맞는 걸 찾을 때까지 오만 알바를 다 해본 것 같음. 이거저거 다 쑤시고 다니면 찾게 되는 것 같으니 '머스트 투 두'가 꼭 틀린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여튼, 여행갈 때 카메라를 안 가져간다. 석달 이하의 여행에는 노트북도 안 가져간다. 노트북은 워홀처럼 장기거주 할 때 무한도전 보는 용으로 가져간다=_= 실제로 그 외에는 쓰질 않더군;;; 그나마도 한번은 고장나서 중간에 내다버리고 컴퓨터 없이 살았는데 뭐 별거 없었음. 정 필요하면 도서관 가면 공짜로 쉽게 쓸 수 있다. 한국보다 더 쉽다. 우리나라 도서관은 컴퓨터 쓰려면 가입하고 어쩌고 해야되더만.

카메라를 안 가져간다고 하면 어떻게 카메라를 안 가져갈 수 있냐느니 하지만 안 가져가도 별 문제없고, 남는 게 사진이라지만 아니다. 남는 게 사진이 아니다. 남는 건 기억이다. 사진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 소환용이다. 그리고 내 생각엔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매개체는 꼭 사진이 아니어도 된다. 글도 되고, 다른 사람이 찍은 (내가 찍었을 사진보다 훨씬 더 잘 나온) 사진도 되고, 음악도 되고, 그림도 되고, 음식도 되고, 지도도 된다. 사진은 그 중 하나일 뿐임. 


내가 여행에 사진을 안 가져가게 된 이유가 몇개 있긴 있다. 

처음엔 돈이 없어서 카메라를 못 샀고, 

1. 건축 공부할 때 답사를 많이 다녔는데, 다같이 가서 찍고 사진을 보면 다 비슷비슷함.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건물과 사진을 찍은 사람이 기억하는 건물을 보면 사진을 찍는다고 건물을 더 잘보는 게 아님을 알게 됨. 오히려 '찍는다'는 행위에 정신이 팔려서 건물을 제대로 못 보는 경우도 많다. 

2. 공연장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찍으면서 카메라로 공연 보는 사람들. 손바닥만한 화면에서 눈을 돌리면 풀HD보다 더 좋은 화질의 현실이 있는데 그걸 못 봄=ㅠ= 이건 정말 이해가 안 간다. 

3. 폴란드 크라쿠프 근교에 아우슈비츠보가 있다. 거길 갔는데 기념 사진(셀카) 찍는 사람이 있었음. 뜨악. 솔직히 많이 이상하지 않냐능. 그리고 나중에 뭔가 찾느라고 검색을 해봤는데, 어떤 블로그에 그런 수용소를 다녀온 감상문을 써놓은 게 있었다. 사진도 잔뜩 올리고 '전쟁 나빠!!!!' '나치 이 나쁜 색퀴들!!!!' 감상이야 개인적인 감정이니 누가(누구든) 뭐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느낌표가 이상함. 내가 보기엔 진짜 많이 이상하다=_= 이건 사진의 문제가 아니라 감수성의 문제이긴 하지.

4. 네팔 히말라야 갔을 때 친구가 카메라를 가져왔는데, 찍어보니 역시 내가 보는 걸 못 담는다. 한국에 와보니 막 찍은 것도 엄청 잘나온 달력사진같긴 했지만, 당시엔 같이 간 친구들도 나도, 모두 그렇게 느꼈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에서 사진 찍은 걸 보고 '우와~'하는 걸 봐도 '그럴리가 없을텐데=ㅠ=?'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사진의 화질이나 구도의 문제가 아니라 눈이 담을 수 있는 것과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의 차이다. 

이러면서 차일피일 카메라 사는 걸 미루다 보니 결국엔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됨. 이제는 몇가지 필요에 의해 카메라를 사야겠다라고 생각은 하는데 어차피 얼마 안 쓸거라면서 또 미루고 있다. 앞으로도 여행갈 때 카메라를 들고 갈 일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뭔가 직업적으로 여행을 다니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일이 없음. ㅋ 



덧. 

흠. 지금도 그런 유행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여행 다닐 때 데세랄 들고 다니는 건... 사진작가도 아니고, 사진을 위한 여행도 아닌데, 저 무거운 거에 렌즈, 부속품, 랩탑까지 다 들고 다니다니;;; 해외여행 자랑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힘들지 않나? 요즘은 해외여행 많이들 가는데 자랑이 되나? 내가 여행 많이 다닌다고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 (표정이나 말투) 보면 기계적으로 그런 말 하지 사실 본인은 전혀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도 많다. 


덧2.

3번의 느낌표 엄청 많은 감상이 뭔지는 안다. 나는 나쁜 걸 구분하고, 거기에 분개하는 모럴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는 건데... 아이고, 의미없다. 

내가 아우슈비츠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엄청나게 많은 (어둡고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독일 사람과 셀카 찍고 있는 일본 관광객이었다. 다른 아시아 관광객도 있긴 했는데 일본 사람이 거기서 그냥 사진도 아니고 셀카 찍고 있으니까 느낌 엄청 이상하더라고=ㅠ= 거기 수학여행 비스무리한 걸 온 독일 청소년 단체도 있었는데,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나치 나쁜 섹히!!!!!'하는 애들은 거기에서 진지하고 괴로운 표정을 짓던 독일 사람이나 폴란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거, 내가 본 그들의 표정이나 감정과 나의 느낌은 사진으로 남길 수가 없지요. 아우슈비츠의 독일인과 일본인이란 타이틀로 도촬을 할 수도 없고... 

그리고 난 느낌표 많은 감상도 없다.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이런 생각도 안함. 그런 말 하는 사람보면 드는 생각은 '인간이니까 그런 짓 하는 거다, 찐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