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내 도시(나라)를 찾지 못했다.
작년 여름, 학회 때문에 대만엘 갔는데 거기서 학회에 참석한 학생들과 이야기 하다가 '너는 어디에서 일하고 싶냐'라는 질문에 내가 한 말. 이 말을 아시아 학생은 못 알아듣는데, 서양애들은 알아들음. 그 이유는 서양애들은 거주할 곳을 고르고 선택하는 개념인데, 동양애들은 사는 곳이 직장에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그 학회에서 만난 서양애들이 굉장히 신기해했던 거 중에 하나가 동양애들이 '교수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공부가 좋아서 계속 하다보니 교수가 되는 게 아니라, 교수를 목표로 잡고 교수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해서 한다는 게, 교수라는 직종의 특성상, 특이하다고 생각한 모냥.
워홀로 다니면서, 여러 워홀러 혹은 장기여행자 또는 유학생을 만나고 이야기 해보니 보통 사람들이 처음으로 장기체류한 나라를 좋아하더란 말씀. 나도 처음 간 뉴질랜드를 좋아하는데, 딱히 엄청나게 좋은 추억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첫 나라가 국외의 기준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경우엔 뉴질랜드 환경이 좋았고, 나중에 돌아보니 사회에서 배운 게 많아서 점점 애착을 갖게 되는 나라지만 꼭 그곳에서 살고 싶다, 뉴질랜드는 내 나라 이런 느낌은 없다. 그래도 이민을 간다면 뉴질랜드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그 뒤로 다녀온 나라도 어떤 특색이 있고, 어디가 좋았고 어디가 나하고는 안 맞는다는 생각은 하지만 여생을 보내고 싶은 곳은 아직 못 찾았다. 하긴 아직 못 찾았다는 말도 어패가 있는 게, 내가 더 이상 그런 곳을 찾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요즘은 약간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이 분위기. 적당히 지역사회에 도움되고, 지역사회도 적당히 나의 평화로운 삶에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좋다는 식. 건축물이 멋지다거나 부자 동네, 문화산업시설이 많다는 건 이젠 매력이 아니다. 게 중 자연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것도 뭐 압도적으로 좋을 필요는 없고 그냥 적당히 공기 좋고, 적당히 깨끗하기만 하면 됨=ㅠ= 내가 생각해도 사람이 많이 유해졌어 ㅋㅋ
그럼 이쯤에서 내가 다녀온 나라에 대해 간단히 복기해보자면...
뉴질랜드 ; 관광차 놀러 갔다가 눌러앉은 이민자들의 비율이 높은 나라. 일찌감치 북반구에서 떨어져나와서 풍광자체가 다르다.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느긋하고 좀 시골사람 같다. 근데 말은 엄청 빨리함. 갠적으로 사회분위기가 매우 좋았다고 느꼈다. 다음에 가면 도보 +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 자전거 여행에 특화된 나라.
호주 ; 브리즈번에서 2개월만 있어서 뭐라하기가 힘들다. 여튼 호주인 성질머리가 괴팍한 건 맞는 모냥 ㅋㅋ
캐나다 ; 전반적으로 매우 친절. (서구문화권 치곤) 좀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다고 느꼈음. 내가 남반구만 가봐서 그런가? 이게 북미의 특징인가!! 싶기도 했지만, 역시 내가 있었던 곳이 대체로 소도시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다문화 어필하고 자랑하는 나라. 출국을 하기 위해 벤쿠버로 나왔을 때 차이나타운에 별 생각없이 놀러갔다가 개털린 사람을 만났지=ㅠ=;;;
네팔 ; 다시 가고 싶은 나라 1순위. 랑탕, 안나푸르나 국립공원에 각각 보름 조금 넘게 있었다. 다녀오니 우울증이 나았다는 신박한 이야기. 산이 좋고, 도시로 내려오면 먼지와 소음이 작렬해서 나에겐 별로. 먼지가 날리는 이유는 우기 이외에는 비가 거의 안 오기 때문에 흙먼지가 엄청 날리고 (물론 낡은 중고차, 스쿠터를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매연도 장난 아님.) 소음은- 원래 개발도상국 이하는 시끄럽다. 소음에 대한 기준이 아직 없어서 그렇다. 한국도 90년대까지만해도 정말 시끄러웠음.
태국 ; 관광차 보름 있었다. 교통편 편리하고 관광지 개발이 잘되어 있어서 여행다니기 편함. 마사지 좋아요~
오스트리아, 빈 ; 독일 가기 전에 빈에 있었다. 뭔가 굉장히 이쁘고, 커뮤니티 형성이 좀 되어 있고, 사람들 친절하고... 근데 과거엔 침묵하고. 미묘~함이 있는 나라였음. (나치에 적극 가담한 역사가 있으나 현재 모르쇠 필살기 구사 중.)
여튼 애초에 유럽(정확히는 베를린)에 가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는 현대미술탐사 정도였는데, 빈에서 빈필 빈오페라 공연 갔다가 이후로 15개월동안 줄창 공연만 보러 다녔다.
독일 ;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40회 봤음. 많이 보는 게 돈 버는 거라며 그만큼 챙겨본 나도 참 대단하지만, 일년에 필하모닉 공연만 50회 넘게 하는 얘네가 진짜 대단한 듯. 이런 거 보면 공연횟수=실력이랑께. 공연장도 무진장 좋음.
독일 친구한테 '내가 여기 오기 전에 굿바이 레닌이랑 파니핑크를 봤다'고 했더니, 웃으며 거기 나오는 독일은 독일이 아니라며 진짜 독일을 보여주는 영화를 추천해 줬다. 시골의 꽉 막힌 커뮤니티에서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인데, 딸을 성폭행하는 아부지와 얻어맞고 자라는 아이들이 '평범하게' 나옴. 니들 진짜 이런 거 추천할 거야?
스위스 ; 깨끗하고 보수적임. 독일은 정치는 진보적이고 생활습관이나 방식은 보수적인데, 스위스는 도시권은 진보적이고 시골은 보수적이다. 생활습관이나 정치 모두. 의외로 아이들 돌봄 서비스가 아주 엉망인데, 이유가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게 투표에 반영이 되서. 시골사람이 도시사람보다 많다보니 이런 이슈에서 매번 지고 있댐. 그리고 정말 결벽적일 정도로 깨끗- 아침 일찍 거리 청소하는 사람들이 쓰레기 통도 닦는 거 보고 뿜었다. 아무렴. 청소의 마무리는 쓰레기통 청소기는 하지.
물가가 한국의 4배 정도. 초콜렛 정말 맛있음. 슈퍼에서 파는 것도 맛있다.
아이슬란드 ; 어느 정도 이상의 대자연을 굳이 영접해야하는가하는 의문이 들었음. 고래 보겠다고 배타고 고래 쫓아 다니는 여행상품과 빙하보겠다고 헬기 타고 빙하지역에 들어가는 관광상품이 있는데, 아이슬란드가 약간 그런 상품 느낌. 그냥 내버려두면 더 좋을 걸 꾸역꾸역 기어오는구나...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지? 풍광이야 말할 것도 없이 좋지만 다시 가고 싶진 않음. 고래 좋아하지만 배 타고 쫓아 다니면서까지 보고 싶진 않은 거랑 마찬가지. 물가가 한국의 ...몇 배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무지막지하게 비쌈. 인터넷도 단위제야 씨바ㅠ
폴란드 ; 의외로 자국문화 자부심이 쩌는 나라. 생각해보면 예술가 배출이 많았던 나라거덩. 너무 가난해서 비료 안 쓰고 유기농업이 많이 퍼져있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반슈퍼에서 파는 채소랑 고기도 다 청정육이램. 독일보다 따뜻한 건 모르겠는데 농산물은 이쪽이 확실히 풍요롭게 나오는 것 같다. 일단 식문화 자체가 다름. 독일 애들은 좀 불쌍하게 먹고, 폴란드 애들은 잔치잔치 열렸네~ 결혼식은 일주일에서 열흘씩은 하면서 먹어제껴야 하는 문화 ㅋㅋㅋ 멋져. 참고로 소세지도 독일보다 폴란드 게 더 맛있다. 내가 만약 예술(미술, 음악)으로 유학을 간다면 폴란드를 선택하겠어. 갈 일은 없겠지만. 여튼 보름 정도만 있었기 때문에 한번은 더 가서 오래오래 있다 오고 싶다. 폴란드어 발음은 유럽인도 못함. 어렵다.
체코 ; 프라하 중심가에서 길하나 건너면 엄청 고풍스러운 동네가 나오거덩? (아마데우스도 찍었던 곳) 근데 프라하를 당일치기로 다니다 보니 현지인은 없고 관광객만 가득한 곳을 구경하고 가는 한쿡 여행자여...=ㅠ= 난 프라하 변두리를 엄청 돌아다녔던 것 같다. 엄청 맛있는 초코케잌 먹은 거랑 체코필, 국립오페라 다녀온 게 기억나는군. 그것도 한복 입고 ㅋㅋㅋ 압도적인 비쥬얼 때문인지 나보고는 아무도 사진 찍자고 안했음. 그 케잌은 프라하 사람이랑 같이 먹었는데 그 사람도 이 맛있는 카페를 이제야 알았다며 둘이서 뽀지게 먹었다. 허허.
방글라데시 ; 드디어! 루이스 칸의 국회의사당을 봤다! 봤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 아하하하하 =ㅁ=!!! 이 멋진 공간을 폐쇠해놓고 지덜끼리만 즐기고 계심=_= 정치인 떨거지들... 씨밤. 얘네 정치권도 아주 난리난리개난리. 구테타가 3번이 일어났었고, 부패한 구정치세력이 아직도 득세하고 있음. 한국 기업이 여기 들어가서 정치권에 돈 먹이고, 방글라데시 사람들 피 빨아먹으면서 돈 벌고 있쥐. 18세기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제국주의에 탈탈 털리고 이제는 자본주의에 털리고... 쉽지가 않다.
방글라데시 음식 맛있음. 내가 손으로 음식을 잘 먹더군. 현지인에게 사랑받는 팁 1번 ; 현지 음식을 현지인의 방식으로 현지인처럼 잘 먹으면 됨. 근데 진짜 맛있던데=ㅠ=? 입에 딱 맞았다 ㅋㅋㅋ
중국 ; 다 합해도 3주, 두 지역에만 있어서 이 대륙을 말할 수 없지만. 난 이 대륙의 기질이 재밌다. 하여간 사람이고 도시고 건물이고 인간들 하는 짓이고 공연이고 스케일이 다름. 너무 스케일이 커서 압도적이라기 보다는, 너무 스케일이 커서 웃기다는 게 다르다면 다르지. 30층에 육박하는 도서관 건물을 보며... '6층까진 개방되어 있고 도서관으로 쓰는 건 알겠어. 나머지 20개 층은 어디다 쓰는 거야?'라고 물으면 현지인은 그저 모른다고 답할 뿐 ㅋㅋㅋㅋ 그저 겁나 큰 것이 거기에 존재할 뿐.
대만 ; 진짜 덥다. 하악. 실내는 에어컨 빵빵, 밖은 실외깅에서 온풍이 빵빵. 안 그래도 더워죽겠는데 나님은 돌아버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얌전하다. 중국인과는 전혀 다른 기질을 가졌음. 하긴 전혀 다른 기질을 가졌어도, 정치에 대한 반응은 비슷한 듯. 대만 사람들은 조용하게 반응안하고, 중국 사람들은 시끄럽게 반응 안하고=ㅠ=? 빈에서 자전거 모임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댐. 일종의 시위?였는데, 이렇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단지 그거 위해 집회를 하는 데도 있는데 말입니다.
...또 있나? 아, 일주일 이하로 있었던 데는 뺐는데... 일주일 이하로 있던 데 자체가 별로 없음. 지금 생각 나는 건 부다페스트에 친구랑 2박 3일 간 거. 빈에 있다가 할슈타트 놀러갔다가 부다페스트도 간 건데, 나랑 일주일 여행한 그 친구 왈. 내 동선이 한국인 여행객이랑 겹치질 않는다고 함. 어쩐지 안 만난다 했지. 허허.
여튼, 처음엔(20대 중후반까지, 그러니까 캐나다까지는) 한국에 있기 싫어서 갔고, 그 뒤로 네팔부터는 한국에 있기 싫은 것도 있지만 목적을 두고 갔던 것 같다. 네팔엔 등산하러 갔고, 독일엔 미술 보러 갔는데 음악 들었고, 방글라데시는 답사, 대만엔 교환학생으로 갔지. 교환학생은 처절하게 망했지만 ㅋ
앞으로 가고 싶은 나라도 마찬가지로 나름 목적이 있다. 뉴질랜드랑 네팔은 여행으로 가고 싶고, 폴란드는 가서 음악 쪽으로 좀 즐겨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베를린필 상임지위자 바뀌는 전후로 2년 있으면 좋겠는데 이젠 그렇게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고... 사실 전부터 영국 가서 1년 정도 있고 싶었음. 티비 한 4대 정도 갖다 놓고 BBC 채널별로 다 틀어놓고 그 앞에서 1년 보내기. 그걸 하면 오덕짓에 종말을 고하겠어. 될지 모르겠지만 ㅋㅋㅋ 일본은 온천 때문에 한번쯤 갈 생각이고, 인도는 도통 관심이 없다가 샬라(요가원)에 관심이 생겨서 언제 한번 가볼 예정. 베트남은 꼭 한번 가서 먹부림을 하겠다. 동남아 휴양 여행은 가본적 거의 없지만 앞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음. 저렴하게 한량짓 할 수 있는데가 집 말고는 동남아니까.
아프리카하고 남미는 가고 싶은데, 가고 싶은데... 로드트립하고 싶다규. 가고 싶다규. 근데 이 먼데를 한두달만 갈 수도 없고, 돈도 한두푼 드는 것도 아니고ㅠ 태평양 지역에 있는 섬도 가고 싶은데, 침만 흘리는 거지. 가서 앞판도 굽고 뒷판도 굽고 그러고 싶으다. 이거야 말로 상상만 하는 듯.
그러고보니 독일에 있을 때 북유럽 여행 계획 끝내주게 짜놓은 거 있는데 결국 안 갔지. 사실 북유럽에 관심이 별로 없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