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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89

미추어 버리겠다.


첫번째 이유는 글이 안 써진다. 

난 논문을 써야 하는데 글이 안 써진다=_= 정확하게는 뭐라든 씨부리는 건 가능한데, 뭘 쓰든 퀄리티가 시망이다. 퀄리티가 시망인 이유는 일단 내가 글을 쓰기가 싫고, 쓰더라도 어쩔 수 없으니까 쓴다는 식이라 그냥 휘갈기고 다시 훑어보지도 않는다. 요즘 내가 쓴 글을 읽는 자는 눈과 뇌에 큰 상처를 주는 것이야. 교수님들 미얀...

글을 쓰기 싫어진 이유는, 학교에 들어오면서 발제문(=축약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걸 일년동안 매주 두개 이상씩 뽑아내다 보니 내가 원래 쓰더 스타일의 글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내가 발제문이나 과제를 잘 썼냐면 그건 아니지. 이건 외국 생활할 때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배우고자 하는 현지어가 늘지는 않으면서 한국말은 까먹는 상황이랑 같다고 볼 수 있져. 하악하악. 울화통이 터지면서 글쓰기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렸음. 그 때 즈음에 한창 피아노랑 서예에 빠진 것도 있고. 

내가 리포트나 학술적 글을 못 쓰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그걸 잘 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학술적 글쓰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포맷 자체가 좀 많이 별로다. 특히 개념어 남발하고, 유난히 인용이 많은 글을 안 좋아한다. 게다가 난 '필자'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어! 그 단어만 보면 웃겨! 지랄하네! 필자가 너잖아! '본 고에서는' 뭐 요딴 거 쓰면서 타자화하는 거 진짜 웃긴다고 생각하거든. 거 왜 어렸을 때 봤던 공주풍 일본 애니메이션에 '링'이라는 주인공이 있었는데, 걔가 일기 쓸 때 '링은 오늘 즐거웠어요' 뭐 요렇게 일기를 썼거들랑. 그렇게 타자화하는 거 진심 유아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유아가 그렇게 쓰면 귀여운데, 어른이 졸라 진지하게 자신을 타자화시키면 나는 '난감하네~' 

이거 말고도 나는 객관적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이런 개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히 사회학 등 인문학은 객관적이란 말을 쓰면 안되져. 그건 그냥 발화자의 생각이져. 블로그에 일기를 쓰든, 누가 돈 줘서 칼럼을 쓰든, 논문을 쓰든 내가 쓰면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좋든 나쁘든 '내 생각'이라는 겁니다요. 그게 객관적이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고, 내가 관찰이라는 방법을 사용해도 그건 과학이 아니져. 방법론이 과학'적'일 수는 있지만...결국 해석은 과학이 아님. 다만 내가 관찰이나 사용할 텍스트를 가능한 어떤 기준과 그 기준에 입각한 사실을 찾고자 하긴 하지. 근데 그 '기준'도 뭐 사실 내 맘대로임 ㅋㅋㅋㅋ 캬하하하하 =ㅠ= 헐. 근데, 내가 뻔히 이걸 아는데(혹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논문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논문에서는 객관적인 '척'을 해야함. 이게 또 문제인 것이 내가 과장은 잘하는데, '척'은 또 잘 못한다. 홍보 글을 나름 잘 쓰는데, 내 기준에서 홍보는 '거짓말은 안 되지만 적당한 과장을 사용해서 반지르르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거든. 개인적으로 이런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그냥 쓰는 것 자체가 재밌다. 논문보단 훨 재밌지. 허허허.



미추어버리고 있는 두번째 이유. 

아랫집에 약 돌정도 되는 인간 아가가 한마리 있다. 한달쯤 전부터 '엄마'라는 말을 하는 걸 보니 인간화되어가고 있는 중인 모양. 그리고 현대인의 필수요소인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원래도 한번 울었다하면 한 시간씩 우는 애였는데, 요즘은 악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요. 애들의 울음소리에도 종류가 많고, 의도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진짜 우는 것과 가짜로 우는 건 쉽게 식별 가능하다. 아랫집 애는 현재 가짜로 울기+악쓰기를 시전하고 있음. 그것도 한번에 한시간 이상씩, 매우 자주. 애가 체력이 졸라 좋은 듯...

문제는 나님 소리에 좀 예민한 편. 아니, 그냥 오만데 졸라 예민한 편. 그래서 안그래도 애 우는 소리가 거슬렸는데 이게 진상으로 바뀌고 난 뒤부터는 잠도 못 자고, 심장이 벌떡더리고, 짜증이 솟구치고, 등이 아프다. 게다가 나 요즘 우울증이 좀 심한데 상황이 이 지경. 

여기에 또 하나. 내가 되게 게으른 인간이라 되게 더러운 인간이거덩. 근데 서른이 지나면서 생긴 증상 중에 하나가, 내가 환경(내가 거처하는 곳)이나 내 몸이 더러우면 몸에 두드러기가 난다. 피부가 빨갛게 변하면서 붓고 가렵다. 처음엔 팔만 그래서 그냥 참을만 했는데 최근엔 이게 전신으로 퍼짐. 온 몸이 빨갛게 붓고 가려우면 그냥 미쳐버림. 그래서 내가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더러움 혹은 내가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청결함만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어쨌든 증상의 원인을 정확히 아니까 그걸 처리하면 되는 거다. 하지만 이 스트레스성 질환이 스트레스를 만들고 있는 거쥐. 

내 우울증의 첫 증상이자 마지막 증상이 무기력이다. 이 말은 곧, 안 그래도 게으른 인간이 더 게을러진다는 말이져. 근데 난 또 우울증이라고 말은 하고 다녀도 남 앞에서 티나게 행동하는 편은 아니다. 컨트롤을 잘하는 편. 컨디션 좋을 때보단 못해도, 사회생활을 비교적 멀쩡히 잘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른다. 이 이야기는 내 사생활이 무너진다는 이야기. 에너지를 몽땅 사회생활에 쏟아부으니 당연히 그 외에는 퍼지게 된다는 겁니다요. 그래서 잘 안 씻고, 청소도 안 하게 된다. 근데 그럼 두드러기가 난다. 그래서 우울해도 청소도 하고 씻어야 함. 그래서 운동을 안하고 피아노를 안 쳐봤어. 그래도 두드러기가 나. 이건 뭐지.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이 뇌하고 몸뚱이, 우울증도 심한 주제에 우울함을 발산하게 못하고 있어. 아, 울고 싶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난다. 

규칙적으로 살면 우울증이 안 온다고 누가 그러더냐. 올 건 오게 되어 있음. 당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면 그냥 받아들여라. 사람이 살다보면 우울할 수도 있다. 근데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환경 속에서 우울함 발산하지 못하는 나의 이 현실을 어쩔 거냐고. 아오, 씨밤. 


그래서 결론은 3일만에 신퀴 전시즌, 뱀파이어 검사 두어편, 리셋을 다 봤음. 아직은 밤새 드라마 본다고 두드러기가 올라오진 않는다. 이것까지 못하게 하진 않겠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