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 회오리 보고 왔음. 국립무용단의 춤춘향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것도 굉장히 좋았다. 만듦새는 이쪽이 훨씬 좋음. 그러고보니 국립극장에서 본 것 중에 제일 좋게 본 작품이 회오리랑 춤춘향이다. 국립무용단이랑 잘 맞나? 제일 많이 보는 건 국립창극단인데...완창판소리부터 창극까지 꽤 많이 챙겨본 편. 여튼 국립극장에 올라오는 창작작품은 수준으로 보자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관람 (창작)공연 중에서 제일 좋다고 볼 수 있음. 꾸준히 (많이)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반복 하면서 점점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 역시 환경이 안 정적이고, 창작에 대한 지원이 계속 되니까... 원래도 조명이나 음향, 연기, 춤, 노래 이런 건 잘 했지만, 아무래도 연출은 별로였거든. 아직은 극구성이 엉망인 게 많지만, 전반적으로 대본이랑 연출 수준이 진짜 많이 좋아졌다. (이제 연출에서 영상 쏘는 것 좀 그만 했으면=ㅠ=;; 초반엔 큰 공연에만 꽃잎을 날리는 연출을 해대더니 요즘은 엔간한 공연에 다 영상을 쏴댐. 싸게 효과를 보는 건 알겠지만...)
회오리는 작년 작품으로 이번엔 재공연을 한 것이다. 국립무용단에 샤로넨인가 하는 연출가를 데꼬 와서 (안무가, 조명 무대디자인까지 그쪽 전문가가 했다) 만든 작품. 안무도 좋고, 춤의 서사도 좋고, 무대 디자인이랑 특히 조명이 좋다. 우리나라에선 기술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하는 그런 종류의 조명. 국립극장은 예전부터 조명을 참 잘 다뤘다. 예전부터. 내가 10년 전에 처음 국립극장에서 어떤 그지같은 극단의 그지같은 연극에서 일을 했는데(정확히는 홍보였지만, 공연기간에는 온갖 잡일) 그 때도 '연극은 참 그지같은데 조명이랑 사운드는 졸라 좋구나. '저딴 연극을 올리다니 나님은 부끄럽도다.' 흐규흐규. 내 커리어(랄 것도 없지만)의 흑역사. 내가 그 때를 생각하면... 총체적 난국이란 게 그런 거이지. 극단장은 변태 또라이고, 기획사는 일을 졸라 못하고, 작품이 그지같으니 홍보할 때도 부끄럽고, 작품이 공연되니 관객 보기가 부끄럽고=_= 극단 쪽에서 초청권을 남발한 덕분이 오버북킹이 되서 현장에서 관객 좌석을 직접 배정해준적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획사의 두 사장은 손가락이나 처 빨고 있어서 결국 그 일을 다 내가 했는데, 이 기획사가 졸라 가난하셔서 내가 돈까지 빌려줬음 ㅋㅋㅋㅋㅋ 안 갚았음-ㅠ- 덕분에 캐나다 갈 자금을 다 날려서 캐나다 가서 개고생. 내가 이 인간들이랑 친하지도 않았다는 게 또 함정. 내가 버젯없는 기획, 그지같은 작품, 현장업무를 못하는 것에 학을 떼는 이유는 다 경험에서 나온 거다. 이건 진짜 일도 죽도밥도 안 되는 데다 개인적으로 보람도 없고, 비전도 없고, 보상도 없다.
회오리는 기본적으로 현대무용이지만 우리나라 무용이 전통과의 단절없이 꾸준히 발전했다면 이런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은 게 있다. 뭔가 한국적인 게 있다는 것. 안무가랑 연출가가 모두 외국인(북유럽인)인데 연구도 잘하고 한국 쪽 스태프하고 소통이 잘 된 모양이다. 초대된 연출자, 안무가하고 국립무용단이 소통이 잘 된 모양. 이렇게 외쿡인이랑 협업할 때 '이런 것이 한국적인 겁니다요'하고 내보이는 게 졸라 골 때리는 물건인 경우가 있는데, 연초에 봤던 새로운 춘향인지 뭐시긴지가 그게 그랬던 것 같다는 말이지. 그 작품이 바로 '전통과 현대의 나쁜 조합'의 좋은 예(정확히는 포르노와 관람 공연의 나쁜 조합)이고, 회오리는 좋은 조합의 좋은 예라는 겁니다요. 하긴 한국인이라도 전통적인 혹은 한국적인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전통적인 건 전통적인 걸로, 현대적인 건 현대적으로 물과 기름처럼 한 작품 안에서도 따로따로 둥둥 떠다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게 없다. 일례로, 오늘 오전에 KBS에서 한글날 특집 공연을 틀어주던데, 채 10초도 못 봤음. 하긴 이쪽 건 나름 전통문화 공연이었던 것 같지만 뭔가 짧게 봤지만 굉장히 괴상망측. 잘 좀 해. 좀. 쫌!
회오리. 안무도, 조명도, 의상도 매우 잘 됐다. 음악은 딱히 좋은 건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잘하기도 하고 공연이랑 잘 어울린다. 이렇게 골고루 좋기 쉽지 않애. 그리고 일단 세상 천지에 이정도 퀄리티의 음악 라이브인 춤 공연 7만원에 볼 수 있는 곳은 국립극장밖에 없다. 뭐 따로 할 이야기 없다. 다 좋아. 다 좋으니까 그냥 가서 봐주세요. 내가 십년 전부터 국립극장 약을 얼마나 팔아댔는지...
이런 국립, 시립은 대체로 홍보를 잘 안한다. 일단 홍보팀 직원이 죄다 계약직 혹은 인턴이다보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홍보를 하는 것 따위 생각도 못한다. 물론 홍보 자체에 돈을 쓰지도 않는다. 그 전에는 어차피 국립, 시립이라 돈이 나오니 관객 모으는 거에 열성적이지 않아서 그랬던 면도 있지만 내 생각에 제일 큰 이유는, 국립-시립 예술단원은 그나마 예술계에서 안정적인 직장인데 그럼에도 월급이 많지 않다. 예술 쪽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떤 시립예술단원은 사실상 자원활동처럼 일하고 돈을 받는다는 기사를 보거나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돈도 못 받고, 그냥 이름만 걸고 있는 거지. 이름 걸고 있으면 예고 애들한테 비싸게 과외할 수 있으니까.)
단원한테도 제대로 돈을 못 주는데 홍보같은 소리하고 있네 진짜. 뭐 이런 거지요. 그리고 한국이 아직 내용보다는 건물 짓는 거를 더 좋아한다. 그게 실제로 뭔가 한 것처럼 눈에 보이기도 하고, 한번에 돈을 확 대는 게 매년 예산을 만드는 것보다 쉬우니까. 무슨 문화 단체나 문화 뭐시기만 한다고 하면 일단 덮어놓고 건물부터 짓는 게 그런 거다. (도서관도 마찬가지. 건물만 멀쩡하게 지어놓고, 예산이 후달려서 책을 못 산다거나 사서고용을 제대로 안하고 계약직으로만 한다거나.)
통영음악제도 음악 엄청 좋은데 통영국제음악제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 그래도 얼마 전에 음악당은 졸라 삐가뻔쩍한 걸로 지어놨음. 물론 좋은 음악당도 필요하지만 말입니다요. 국립극장도 얼마전에 달오름극장을 고쳤는데 음향이 좋아졌다. 그러니 더욱 뭐라고 하기 힘들어지는 거지. 이런 문제의 내용을 알면, 어익후 어디부터 손을 대야합니까... 이런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하지만, 나는 또 그리 급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게, 어차피 관객이 안 든다. 관객이 팍팍 들어오면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상황이 팍팍 나아지겠지만, 없는 예산 쪼개서 쓰다보니 한쪽으로 몰리는 거지. 조선시대 때도 가난뱅이 몰락양반이 첫째 아들한테 몰빵했거든 ㅋㅋㅋㅋ 돈 많고, 집안이 좋으면 굳이 몰빵 안해도 됨=ㅠ= 이게 그거야. 빈익빈 부익부. 일단 어느 반열에 올라가면 전반적으로 다 잘 되는데 한국은 아직 그렇지 않다는 거임. 그게 다다.
물론 돈이 있어도 딱히 문화 쪽에 돈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 그래도 사람들보다는 정부가 문화에 돈을 더 쓴다.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진보라는 것들이 예산을 더 넣어서 지원금을 팍팍 줘야 하네 어쩌네 하는 거 제일 싫어함. 사람들이 공연예술에 (그리고 다른 문화생활에도) 관심이 없는데 무슨 예산을 팍팍 써. 게다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실력있는 시향이 좀 나오나 했더니 지휘자 월급 많이 준다며 진상이란 개진상은 다 떨고 결국 떨어져나가게 만들어버림. 그러면서 똑같은 입으로 노동자 계급은 문화가 없네, 만날 싸구려 텔레비젼 쇼프로그램만 보네 어쩌네 이 지랄입니다요. 뭐 어쩌라는 겁니까요? 가난뱅이는 못하는 시향이나 보라는 건가? 아니면 가난뱅이는 시향 자체에 안간다고 생각하시나? 하긴 우리가 관광버스에서 몸을 털며 놀든, 시향에서 잠을 자며 공연을 보든 니들이 뭐든 마음에 드는 게 있겠어요? 모르는 것에 대해선 함부로 씨부리지 좀 말아주오. 가난이든 관람예술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