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틴 영화도 좋아한다. 만화도, 드라마도, 생각해보니 청소년 소설도 퍽 재밌게 보는 편이군. 난 더이상 하이틴이 아니거든! 순수하게 즐길 수 있어! 저 진상과 바보짓과 뻘짓과 부끄러운 생각과 행동을 그냥 귀엽게만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단 말이지! 캬캬캬. 나이 먹는 거 최고야. 진짜 구리지만 난 나이 먹는 게 좋다.
여튼, 최근에 본 건 더 퍼스트 타임하고 월플라워. 둘 다 만듦새가 썩 좋은 편은 아니라는 생각은 드는데, 꽤나 재밌게 봤다. 사지를 베베 꼬아가면서... 뭐지 이 사랑스러움은! 저 자의식 과잉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쿨하고 싶은 것과 성욕이 한 냄비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잖아. 쉽게 만족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용서하고 쉽게 사랑하고... 이 두 영화에선 10대가 10대 같다. 그게 매우 좋다. 글리도 그래서 좋아했지. 완젼 찌질이 고삐리가 떼로 나와서 찌질찌질, 자기만 특별한 줄 알면서도 금방 자기비하에 빠지는...
물론 여러분, 이런 감정을 삼십대에도 갖고 있으면 큰일납니다. 정확히는 20대 후반에도 안 되요. 그런 인간이 꼴사나운게 아니라 '안 되요'.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도망쳐.
오늘 본 퍼스트 타임은 한국에서 개봉을 안해서 들어보지도 못했던 모양. 감수성 뻗치는 애랑 착한 범생이의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 월플라워는 애어른 범생이, 아싸들의 우정과 풋사랑을 다룬다. 하이틴물에는 항상 감수성 터지는 애들이 있고, 범생이도 있고, 날라리지만 착한 애도 있고, 어른스러운 척 하지만 그래봐야 청소년인 애도 나오지.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범생이 부분=ㅠ= 두 영화가 나란히 범생이 이미지를 줄줄 흘리는 배우가 나와서 내가 좋아하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것같냐능. 퍼스트 타임은 감수성 뻗치는 애도 마음에 든다. 비록 일하면서 감수성 터지는 (어른) 애들은 (쓸데없이) 많이 보고 덕분에 고생도 했지만 사실 현실에선 꽤나 좋아하는 타입이다. 범생이는 엄청 좋아하는데 현실에선 대화가 안 통해서 못 친해지는 부류.
퍼스트 타임에서 애들이 첫 섹스를 했는데, 콘돔 챙길 줄만 아는 두 초짜가 냅다 해댄 셈이니 그게 좋겠냐고. 둘 다 죽상을 하고 있는데 웃겨 죽는 줄. 비록 지덜이 원해서 했던 거지만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 다르고 실망스러운 나머지 입에서 나오는대로 상처주는 말을 해다고 후회하고 사과하지도 못하는 찐따짓도 정말 좋았다. 물론 완전 현실적으로 여자애는 죽상인데 남자애는 씐남 잇힝하고 있으면 하나도 안 웃겼겠지만...한국이면 콘돔도 안하고 했겠지. 무셔 ㄷㄷ
생각해보면 아메리칸 파이도 엄청 재밌게 봤는데, 내가 제일 좋아했던 애들은 원래 커플-대학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애들이었다. 남자애가 섹스비기책을 공부해서 여친과 함께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ㅋㅋ
그러고보니 월플라워에서는 애들이 데이빗 보위 목소리를 모르더군. 뭔가 세대차이인가? 데이빗 보위는 내 세대도 아닌데 이것도 나름 충격이더군. 여튼, 데이빗 보위가 누군지 모르는 애들이 잔뜩 나오는 두 영화. 퍼스트 타임은 좀 틴에이지로코물같고, 월플라워는 하이틴 성장물이다.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어른들은 자신의 청소년기를 기억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꼰대지. 내가 진실을 말해주지! 하나도 안 좋아. 나는 그 때가 어땠는지 다 기억하거든. 몸뚱이가 신선하다는 것 빼고는 진짜 좋은 거 하나도 없다. 호르몬은 날뛰지, 생각은 짧아서 하는 짓마다 후회 뿐이고, 사회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이 없어서 항상 피해자나 약자일 수밖에 없어, 부모랍시곤 똥싸듯이 애새끼들을 낳아댄 인간들이고, 사회도 학교도 단 1년 뒤에 어떻게 될지 쥐뿔 모르면서 공부나 하라고 사람을 들들 볶아대놓고는 기껏 시간과 돈을 쳐 들어서 대학 나왔더니, 웁스. 청년시업률 하늘을 치솟네. 그래도 실질적으로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뭐 이딴 개소리나 하고, 싸구려 위로나 해주면서 미생이네 어쩌네 하지. 그러면서도 열심히 해서 완생하라고. 세월호 직후에 부모들이 애들 공부 못해도 좋다고, 건강하게 옆에서 살아있는 게 좋다고 하는 사람들 꽤 있었지? 지금 일년밖에 안 지났는데 아직 그 마음가짐 그대로 갖고 있나? 아닐 걸?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건 아니다. 그게 부모든, 선생이든, 사회든, 친구든, 애인이든. 노력은 하는데 되는 게 없어요. 그게 십대면 더 심하고... 그래도, 'this is not a story. this is happen. I'm here. you are alive'라고 하지. 언젠가는 지나갈 테니 그 순간을 즐기는 수밖에 없다. 퍼스트 타임에 부모가 하는 대사 중에 하나가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하길 바라. 왜냐하면 두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거든' 그게 소중한 것이든 그지같은 것이든, 한번 흘러가면 끝이다.
그러니까 퍼스트타임의 범생이처럼 좋아하는 애한테 사랑스러운 선물을 주는 겁니다. 이 선물은 스트레인져댄픽션 이후 두번째 보는 사랑스러운 선물이다! 월플라워도 나름 괜찮은 선물이었지만, 십대가 할 수 있는 선물예산의 허용범위를 초과해서 사랑스럽진 않아. 십대주제에 깜찍함없이 이사님이나 할 만한 선물을 하다니... 여튼, 스트레인져댄픽션의 밀가루와 퍼스트타임의 잡지 한박스가 왜 사랑스러운지 모른다면... 너는 아직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ㅠ=
덧.
배우들이 참 연기를 잘하대. 대단해요. 멋쪙. 퍼스트 타임 남주가 어떤 인터뷰에서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끌려다니는 것 뿐이다'라고 했지만, 그냥 끌려다니는 사람은 연기를 잘 못해. 그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한계가 있다. 너무 정신없이 뛰어대서 끌려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겠지.
난 '잘 하는' 젊은 배우나, 운동선수를 깍아내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프로선수도 그렇고 국대 있잖아요? 진짜 무시무시하게 노력해서 거기 간 거거든. 무시무시하게 노력하고 재능도 있었지만 떨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집에서 자빠져 앉아서 테레비 보면서 잘하네 마네 뭐 말이 많아. 그것도 뭐 10대면 이해가 가. 뭘 모르니까. 나잇살이나 처먹고 '김연아는 금메달리스트고 뭐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나는 뭐냐'하는 사람은 그게 뭔 소리인지는 알지만, 제대로 된 어른은 아니다. 평생 김연아처럼 노력은 해본적도 없을 거야. 나도 없지만... 아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서 그딴 소리도 안하거든. 주제파악은 중요해요. 어른의 덕목이죠.
덧.
데어데블 디테일에 대해 말인데, 그냥 얻어터지고, 떨어지고 해서 그냥 적당히 꼬매고 밴드 붙이는 정도는 이해가 가는 데, 칼이 뱃속으로 들어갔던 건 겉에만 꼬매서는 안 되잖아? 내장은 어쩔꺼?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