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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82

개강을 하면서 나는 보람차게 살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피아노랑 서예도 꾸준히 하고 뭐 그딴 거 말입니다요?

근데 월요일 오전에 문화회관에서 하는 한자수업에서 빅엿을 먹었어요. 화요일 낮에 하는 학교 수업에서도 빅엿을 먹었지요. 월요일 화요일에 쌍으로 빅엿을 먹으니 내 영혼은 치욕을 당했다며 괴로워했어요. 힐링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친구의 강력추천작 워킹데드를 봤죠. 1시즌부터 5시즌 끝까지... 화요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후 6시까지. 내가 화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수요일 저녁 6시 반에 잤으니가 35시간 깨어있었던 거네요.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정도 되면 육체가 너덜너덜해집니다. 영혼은 힐링되고, 육체엔 병이 왔어요. 사람이 이렇게 복잡하다. (...) 


먼저 빅엿을 소개해주지.

월요일 오전. 한자 수업시간에 江, 河를 배우고 있을 때였어요. 얼마 전에 중국 황하에서 배가 침몰해 많은 사람이 죽었죠. 중국은 죽은 사람에게 무조건 한국돈으로 1억 5천을 줬대요. 그러면서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나라는 11억이 넘게 준다고요. 너무 많이 줘서 '미친' 거 아니냐고 하대요. 우왕. 그러면서 강사가 소개하는 '일화'. 강사가 한다리 건너서인지 두다리 건너서인지 아는 사람이 세월호 희생자였다고 합니다. 평생 바람을 펴대고 아내를 고생시킨 사람인데, 그 때도 친구들이랑 부부동반으로 놀러가는데 자기만 여친을 데려간거죠. 잘 죽었답니다. 게다가 국가가 보상금으로 11억이나 줬으니, 죽어서야 좋은 일 했다고요. 수강생들 즉 아줌마, 할매들 폭풍 공감=ㅁ= 그러고 그 사람의 친구 이야기를 하는데, 이 사람은 다행이 살았댐. 근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와서 아직도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한다고 합니다요. 그러면서 가족이랑 주변 사람들이 처음엔 참 다행이다, 살아돌아온 것만으로 충분하다 했는데 지금은 골칫거리라고요. 여기에서도 수강생들 폭풍 공감=ㅍ=

나는 이게 좌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게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높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화요일 오후. 역사 서술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교수가 미디어학과 교수였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도 있고, 논문을 쓸 때도 미디어 역사를 쓰게 된다고. 이 교수가 처음에 한반도 상고사에서 시작해서 중국, 유럽 중세, 근대를 거칠 때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 두군데 사실을 (사소한 거지만)틀리게 말하는 것도 있었고, 뭔가 역사적 맥락이나 역사관이 미묘하게 핀트가 엇나가는 것이다. 그러다 한국 근세사-근대로 왔을 때 알았다. 이 때부터 저는 심장이 벌떡대고 심한 흥분상태에 빠졌지만 겉으로는 얌전히 있었다. 그냥 딴짓을 했지. 최대한 안 들으려고 하면서. 이 수업은 집에 가자마자 드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근데 정조가 암살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어코 이덕일을 끌어다 붙임. 내 심박이 근래 최고를 찍고 혈압이 수직상승하면서 뒷골까지 땡기기 시작. 아... 씨발...orz 진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내가 이딴 개소리를 술자리에서 들었다면 화가 안 났을 거야. 아니면 그 교수가 수업 시작 때 자기가 수업한 이야기를 하면서 야간대학원 수업은 (수강생 수준이 낮아서) 너무 힘들었다는 소리만 안했어도 이렇게 빡치진 않았을 거다. 술자리 잡담이나 하는 주제에 학생 수준을 논합니까요? 야간 대학원 수강생은 공부하는 버릇이 없어 좀 삐걱대긴 하지만 사회경험으로 얻은 현명함같은 게 있다. 

알고 있다. 우리나라 기성세대는 당연하고, 젊거나 어린 사람도 식민지 역사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힘 쎄고 강한 나라 = 좋고, 옳음. 약하고 작고 망한 나라 = 나쁨으로 귀결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상고사 좋음, 멋짐. 아, 고구려 너무 좋아서 침이 줄줄 흘러. 조선 씨발 개짜증. 망조 들린 나라. 조선사는 그냥 백프로 일제시대 역사관을 그대로 갖고 간다. 한쿡에 오신 백인 신사님, 여사님 인용하면서 되게 좋아함=ㅠ= (조선은 백성은 너무 착하고 부지런한데, 지배층-여기서 지배층이란 일제가 아니라 조선 지배층이 썩었다고요 ㅋㅋㅋ 캬캬캬. 정치 사회가 이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겠냐. 어디만 나쁘고 어디는 나쁘고. 그럼 나쁜 부분만 도려내면 되니까. 근데 그게 그런 식으로 구분되지도 않고, 그걸 실행하기도 힘드니까 이렇게 사는거다.) 

제발 좀. 무식한 인간들 인용하면서 자위 좀 하지마. 그것도 수업시간에. 대학원은 수업당 200만원이다. 나 같은 식순이가 48시간에 200만원을 내고 교수 마스터베이션 하는 거 보고 있어야겠어? 장난해? 어? 이덕일? 나같은 정조 빠순이도 정조가 암살당했다는 소린 안한다. 사료를 보려면 좀 제대로 보고, 교수나 작가짓을 하려면 최소한 그 시대의 1차 사료는 골고루, 제대로 읽고 하라고. 소설도 좀 제발 그만 써라. 소설을 쓰고 싶음 소설가를 하든가.


이렇게 월요일, 화요일에 어퍼컷을 연속으로 맞고, 영혼은 너덜너덜해지고...

나는 나를 치료해야했다.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워킹데드를 23시간을 쳐 본거에요. 물론 모든 시즌을 정속으로 제대로 보면 그렇게 못 본다. 처음엔 1.2배로 나중엔 1.3배로 돌리고, 중간중간 점프하면서 봤다=ㅠ= 드라마는 그럭저럭 잘 만들어진 정도지만 덕후 양산의 포인트가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듯. 난 좀비물은 좀 별로인 사람인데 아마 그걸 보고 징그럽거나 무섭다고 느끼질 않아서 그러는 것 같다. 워킹데드 보면서 밥만 잘 먹는 인간인데다, 전 시즌을 통털어 좀 무섭다 싶은 건 감기 바이러스가 도는 설정이었다. 

이거 추천해준 친구가 좀비물을 엄청 좋아하는데, 제일 좋았던 게 월드워Z였댐. 단체로 뛰어댕기는 좀비가 겁나 무서웠다고...난 설정으로 치면 아이좀비가 제일 낫다고 본다. 인간 뇌를 먹으면 인간처럼 살 수 있는 있다. 그래서 가출 청소년이나 홈리스를 죽여 뇌를 요리해서 파는 범죄집단이 생긴다. 내 보기엔 보통 좀비보다 이쪽이 더 무서운 듯 ㅋㅋㅋ 아니 지금 제일 무서운 건 뒷 배란다에 들어온 귀뚜라미. 잠도 안자는지 24시간 울어댄다. 대단함. 힘차게 울어댈 땐 돌아버릴 뻔. 

이런 종류의 인류좇망 스토리를 보고 있으면, 뭔가 저 와중에도 이전에 갖고 있었던 걸 유지하고 싶어하는 인간이 참 웃기다고 해야하나. 차를 끌고 다니는 것까진 좋은데 그 차가 깨끗하거나,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침대에서 이불 덮고 자고, 테이블에서 고기와 술을 먹고 싶어하고 그런 것 말이다. 심지어 한 캐릭터는 그 싸이코끼를 표현하기 위해 변태성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 와중에도 성고문을 하고 싶어함 ㅋㅋㅋ 이런 설정을 웃기다고 해야할지 징그럽다고 해야할지 창의력이 망했다고 해야할지. 내 보기엔 원래 식인문화가 없는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 먹는 집단이 더 싸이코같은데... 뭔가 싸이코짓도 생존에서 비롯해야 그럴 듯하지 않나? 생활도 그렇고... 

여튼 볼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