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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80

데어데블 봤다. 아주 재밌게 봤어요. 캬캬. ...마블빠--;; 

애로우 시즌 1이랑 같이 받아서 봤는데, 1화만에 데어데블에 손을 들어주게 되었음. 이건 내가 마블을 상대적으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애로우보단 데어데블이 잘 만들어져서라고 본다. 쓸데없이 화려한 주인공의 액션이 좀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전체적인 만듦새가 데어데빌 쪽이 괜찮다. 디테일에 좀 집착하는 타입이라, 그 디테일 역시 애로우보다는 데어데블이 낫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나는 유머가 조금도 없는 히어로물은 진짜 정말 조금도 안 웃기는 나쁜 코메디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조금이라도 유머가 있는 쪽이 낫다. 졸라 진지하게 얼굴에 가면 쓰고 싸우고 다니는 성인 남자라니... 뭐냐고 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20대 초반의 어린 남자, 영웅짓 하다가 다치고 집에 들어가서 궁시렁 대면서 빨간약 바르고 옷을 직접 꼬매고 앉아있는 그 모습이 좋거든. 유머와 디테일을 모두 섭렵하는 캐릭터 설정.  토니 스타크는 사십대지만, 캐릭터가 반또라이인데다 그 시작점이 납득이 가니까 이쪽도 괜춘함.


히어로물은 엔터테이닝이 되는, 즐기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장르를 진지하게 보고 있기는 좀 힘들지만, 동시에 근래에 '자아성찰'에 대해서 혹은 '성장'을 다각도로 접근하는 몇 안 되는 장르이기도 하지. 고담은 주인공은 형사이지만 펭귄맨이 어떻게 펭귄맨이 되어 가는지, 배트맨의 소년기를 보여주며 어떻게 배트맨이 되기를 선택했는지를 보여준다. 스몰빌 이후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게 됐지 말입니다?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같은 경우에는 왜 히어로 짓을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를 꽤 강력하게 준 케이스고. 인간들이 성장물을 좋아하긴 하지. 

데어데블 시즌1은 동네자경단형이 어떻게 데어데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지와 함께 동네깡패왕 피스크가 어떻게 킹핀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악당캐릭터도 깊이가 있어야 사람들이 흥미를 느낀다. 이건 참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유독 한국 드라마 악당이 깊이가 없음. 그냥 시어머니라 지랄병에 걸려있다거나, 그냥 부와 권력이 있어서 부패했다는 식=ㅠ= 어쩌라고. 

애로우가 마음에 안 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캐릭터 설정과 플롯만 있기 때문이다. 돌아온 탕아가 낮에는 여전히 탕아짓을 하고 밤에는 후드티 뒤집어 쓰고 활 쏘고 다님, 탕아랑 친하던 여동생은 헐리우드에 돌아다니는 부잣집 날라리 캐릭터 하나 뽑아 온 것 같고(이 배우 예쁘다!), 부패해서 부자가 된 건지 부자가 되서 부패한 건지 모르겠는 악당, 정의감은 넘치는데 일은 못하는 경찰이나 변호사(심지어 부녀가 나란히 무능 ㅋㅋㅋ). 여기에 나쁜 놈 찾아내고,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내고, 경찰에 넘기고, 정체를 숨기고... 디테일은 없어도 스토리가 있어야 할 거 아니냐고 이거뜨라! 아님 캐릭터랑 플롯이라도 창의적으로 만들던가, 완젼 배트맨 아류로 만들어놨음. 그것도 못 만든...

어떤 글쓰기 교본에는 플롯만 좋은 게 있으면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플롯에 살을 잘 붙여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된다고라. 하긴 우리나라 작가 중 많은 사람들이 괜찮은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어떤 상황에 밀어넣으면 알아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도 하긴 한다. 작법이야 자기 맘이지만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는 둘 다 한계가 있다고 봄. 


장애가 있는 히어로는 꽤 좋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아무도 시각장애인'을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이고, 눈여겨 본다고 해도 미처 시각장애인이 자경단 짓을 하고 다닐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타이즈 입고 머리 모냥 바꾼다고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는 설정보단 훨 낫다 이겁니다요. 시각장애인이라 다른 감각이 무지막지하게 발달되어 있는 경우는 직접 본 경우는 없어도 의외로 많기도 하고... 그걸 극적으로 더 밀어붙인 거라고 대충 이해하는 거지 뭐 ㅋㅋ 주인공 맷 머독의 집이랑 입성도 꽤나 마음에 든다. 감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있지만, 시각적인 소품은 없는 것이랑(스탠드는 하나 있지만...) 집에선 다 늘어진 추리닝만 입고 있고, 자경단짓 할 때도 그냥 검정색 옷을 뒤집어 쓰고 있는 형상이고, 낮일 할 때도 가난뱅이 변호사답게 수수한 정장을 입는다. 집이고 사무실이고 멋내기용 소품이 전혀 없는 게 진짜 마음에 들어. 물론 이건 단지 시각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가난뱅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ㅋㅋ 난 가난뱅이 설정도 좋아하니까 이것도 플러스 요인. 예전에 일본이랑 한국 드라마에서 시각장애인이 힐을 신고 다닌다던가, 집에 사진을 꼽은 액자를 잔뜩 늘어놓는 등의 짓을 했던 게 아직도 기억나거든=_= 디테일을 밥 말아먹은 정도가 아니라 정신이 나가야 이딴 세트를 짓는다고 본다. 아님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모르고 만들거나...

여튼 맷 머독-데어데블 캐릭터가 설정도 괜찮고 구축도 잘 되어있는데다가 주변인도 단지 주변인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있다. 주변인이 스스로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때 스토리가 풍성해지는데, 여긴 변호사사무실 삼인방은 물론이고 동네깡패도 죄다 지덜이 더 쎄고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갱끼리 전쟁하는 것도 볼만하다. 피스크도 완전 개또라이라서 공감이 가진 않지만( 물론 공감하는 사람도 있음 ㅋㅋ), 이 아저씨가 흰 벽을 보고 앉아있으면 뭔가 오싹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건 단지 캐릭터 설정이 좋아서가 아니고, 플롯이 잘 되어 있어서도 아니고 스토리가 좋아서 그런거거덩. 시즌 파이널 자체는 그냥 그랬는데, 엔딩 선택은 참 잘한 것 같다. 

성장물은 제쳐두겠음. 시즌 2나 되야 얘네들이 성장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게 될 듯. 엔딩에서 피스크의 모습이 일단 꾀나 상징적이고, 일단 변호사치고는 머리를 참 안 쓰는 데어데블이 다음 시즌에서 머리 좀 쓰길 바라며 ㅋ 


아, 배경 설정도 마음에 든다. 어벤져스 1에서 뉴욕이 박살났을 때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헬스키친이라는 동네도 박살이 났고, 도시 재건과 동네깡패가 끼어들어 분탕질을 친다는 거죠. 아~ 건설과 부패는 뗄레야 뗄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건설사를 끼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그거거덩. 개발계획엔 워낙에 많은 자본이 투입되기도 하고, 건설회사는 횡령이 쉽다. 아주! 진짜로! 쉽다!! 철근 다섯개 쓴다고 하고 네개만 심고 시멘트 들이부으면 누가 아냐. 철근도 비싸고 좋은 철근이 있고 싸고 나쁜 철근이 있고... 하고자 하면 쉽지 뭐. 이걸 좀 더 자세하게 다뤘으면 더 좋았겠지만, 히어로물에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되죠. 

연출은 대체로 평이하고 특징없다. 액션은 쓸데없이 화려해서 내 취향은 아니고... 주인공이야 자경단짓하고 다니느라고 못해도 실력이 있는 파트너라도 변호사 일 좀 하고 다녔으면 좋겠는데 영 돈 버는 일을 못하고 있음. 근데 사무실 사람들 모두 굶고 다니지는 않고 다니는 것 같다. 도대체 낙찰 받은 고물 전화, 팩스, 복사기 등의 돈은 뭘로 낸거지=ㅠ=? 주인공이 밝은 범생이 분위기가 좀 있는데 변호사 일 할 때는 그걸 좀 더 살렸으면 좋겠다. 맷 머독이랑 데어데블의 대비를 더 살리면 좋겠다규. 



덧. 

여기서도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조연 여자 캐릭터 ㅠㅠ 업보인가? 멋지고 섹시하고 예쁜 간호사 클레어 언니! 멋져! 완죤 좋아! 취향 저격! 애로우의 변호사 여캐랑은 비교도 안 되게 멋짐! 애로우 여캐는 많이 이상해서 짜증이 날 정도...

이야기를 보거나 읽을 때 여자 캐릭터를 (본능적으로) 아주 중시한다. 그 매체에 재미를 느끼는데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이야기. 뭐, 제일 큰 이유는 내가 여자라서, 두번째는 내 안의 아저씨가 멋진 여자를 항상 찾아서. 세번 째는 괜찮은 남자 캐릭터란 항상 비슷비슷하거든=ㅠ= 

히어로물은 태생이 그래서 멋진 여자 캐릭터가 나오기가 힘들다. 그냥 약해 빠진 나머지 만날 납치만 당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캐릭터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이쁘고, 착하기만 한 반응하는 캐릭터. 스파이더맨의 메리제인이야 워낙에 머리 나쁜 사회적 루저라 그렇다 치지만, 슈퍼맨의 루이스는 퓰리쳐상을 받을 만한 인재인데도 기자의 감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 ㅋㅋㅋㅋㅋ 볼 수록 웃긴 캐릭터임=ㅠ= 그래도 맨오브스틸에선 좀 낫더만. 몇가지 설정을 조정하니 덜 웃긴 영화가 되었지만, 오리지널 슈퍼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다. 덧붙여 히로인은 (대체로) 최악임. 가슴크고 엉덩이크고 몸은 반만 가리고 싸우러 다니는 마초 남자 작가가 그리고 마초 남자 독자가 선호하는 언니들. 메리제인이랑 누가 더 나쁜지 모르겠다=ㅠ=;;; 그거지, 여자 작가가 쓰고 여자 독자가 보는 야오이에서 게이 캐릭터랑 비슷하다는 겁니다. 야오이 게이 캐릭터는 여자들 눈에만 멋져(?)보이는 거고, 히어로물에서 히로인은 남자들에게만 섹시해보이는 거지. 히로인 영화가 나오는 족족 망하는 이유는 이거입니다요. 히어로는 이성애자 남자와 여자, 게이 남성 모두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히로인은 이성애자 남자만 끌어올 수 있거든. 그리고 이성애자 남자는 문화활동에 상대적으로 돈을 안 쓴다. 

여튼, 클레어는 심지가 강한 캐릭터로 나오는데 맥락없이 정의로운 것도 아니고 현실적이고 똑똑하고 유머도 있다. 아잉 좋아. 생각만 해도 좋아 ㅠㅠ 근데 조연이라 별로 안 나온다. 이 캐릭터의 똘똘함이 주인공과 일정거리를 두게끔 선택한 거라 컴플레인도 못 함=_= 


덧2.

나 요즘 왤케 주절대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