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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51

제가 말이죠, 한국 나이로 벌써 삼십대 중반입니다.

 

그동안 나도 나름 잘하는 게 있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중간 이상은 되는 거. 너 이쪽에 나름 재능있구나 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아마 마음을 먹고 열심히 했거나, 아니면 환경이 됐거나, 누구라도 가까이 있는 사람이 부추기거나 도움을 줬다면 그걸 계속 하고, 그 쪽 직업을 갖고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정도의 재능같은 거 말이다. 어렸을 때는 있는 재능을 썩혀서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좋아하기도 하지만 하면 시간 잘 가고 재밌고 칭찬받으니까 했던 거지 '우오오오오오 나는 이거를 정말 잘하고 싶다아아아아아' 이런 게 없었다. 어려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시키지 않아도 열망에 휩싸여 있는 애들 많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게 하나 뿐이 아니라 두세 개 쯤 있으면 '이것 저것 다 할 줄 아는 것'은 곧 '특별히 잘하는 건 하나도 없음'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재능이 있는 것과 그걸 갈고 닦아서 더 잘하게 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재수가 좋은지 어쩐지 나는 썩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고, 나름 재능이 있는 쪽에서도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은 일, 꽤 재밌고 즐겼지만 그래도 일은 돈버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일이다. 이건 그냥 굶어 죽지 말라고 탑재되어 있는 거고, 잘하면 더 유용하고 좋아서 공부도 하고 했던 거지 특별히 난 이길로 나가서 세계 최고의 일꾼이 되겠다는 생각 따위 조금도 없었다=_= 내가 하는 일에 나름의 매력을 느끼는 것과 그 일을 졸라 잘하는 걸 원하는 건 또 다른 문제란 말이죠.

 

그런 내가 잘하고 싶은 걸 찾았다.

삼십대 중반에=_= 산 날이 살 날보다 더 긴데, 시간도 없는데 이제와서 잘하고 싶어지면 어쩌자는 걸까.

어리기라도 하면 하루에 8시간씩 투자...할 수 있는 형편은 여직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현실로 봤을 때 하루에 끽해야 두세 시간이라 내가 그렇게라도 열심히 해서 만 시간을 채워서 그럭저럭 하게 되고, 그 뒤로도 또 만시간 정도 채워서 정말 잘하게 되면 그땐 이제 죽어야 하는 시간이 된다. 헐...

그래도 하긴 할 거다. 잘 하고 싶지만 그걸로 먹고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기 만족이라도 하고 죽으련다. 기껏 잘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말이지. 이젠 놓칠 수 없엉. 재능이라곤 먹고 죽을래도 없으니 노력으로 해주마.

 

그래서 내가 잘하고 싶은 게 뭐냐면 피아노되겠음. 정확히는 음악이지만, 피아노만 잘해도 감지덕지임. 그래도 30년 넘게 들은 게 있어서 재능은 없어도 이해는 빠르다는 걸 위로 삼고 하고 있다. 잘하고 싶지만 조급증이 안 든다. 나름 꾸준히 하고 있어서 기특함ㅠㅠ 덕질 빼고 뭘 꾸준히 해본적이 있어야 말이지.

 

여튼 피아노 치면서 그럭저럭 별일 없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