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 5월 11일
베를린->크라코우. 600킬로미터인데 10시간 걸림.
할인 받아 일등석 좌석을 샀고 베를린 DB라운지에서 먹고 마시고 놀다가 기차를 탔더니 한국에 3주간 다녀온 프랑크가 있눼. 처음 한두시간 나 혼자 잘 놀다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다녀왔고 이거저거 나름 궁금한게 많아 이야기를 해줬음. 무려 8시간 동안 떠들어댔다. 8시간동안 둘이서만 떠드는 건 분명히 힘든 일이지만, 한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는 확실히 시간이 모지란다. 특히 한국의 여성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정말 힘들어 디지는 줄 알았네!! 게다가 이런 거 은근 굴욕임. (한국은 안전한 나라? -> ㅇㅇ 안전한 나라. 밤새 돌아다녀도 좀처럼 위험한 일 만날 일 없고 특히 영어 쓰는 백인은 아무 문제 없음. 하지만 동양 여자 혼자 여행하는 건 추천하지 않음. -> 왜? -> 한국의 여성 인권 현황으로 오는 그런 과정. 문제는 '무슨녀'를 비롯 굉장히 높은 성폭행 범죄율을 자랑하면서도 그에 대한 후속처리가 빈약하고 거기에 대해서 많은 여성이 여성주의에 대해 '이제 충분하므로 필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프랑크는 독일남자인데 무려 독일도 아직 남녀평등이 완전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라 설명하기 더 힘들었다.)
쨌든 6일동안 머물 고르자네 집에 옮. 환전을 못해서 집까지 오는 기차표를 고르자가 사줌. 집은 크라코우 변두리에 위치하고 고르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데 고조부부터 여기서 산 토박이임. 오는 길에 비슷하게 생긴 집 떼가 있길레 뭔가 했더니 크라코우 도심에서 온 사람들이램. 고르자는 스무살인데도 도심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돈으로 더 큰 땅을 사서 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는데 저렇게 따닥따닥 붙어서 똑같은 집을 지어두고 사는 걸 우습다고 생각하는 아해. 딱 붙어 살면서 옆집에서 떠들면 신고하고, 그렇다고 뚝 떨어져 사는 건 또 싫어하는 도시것들의 습성이 웃기긴 하지. 제일 웃겼던 건 일년에 한번 낙엽이랑 풀떼기를 태우는데 (일종의 연례행사) 그걸 보고 신고한 도시출신 동네사람. 강화에 있을 때 나도 도시것이었고 옆집도 도시것이었는데 하여간 현지인한테 등신취급 받는 건 강화나 크라코우 변두리나 비슷하다. 강화 살 때 옆집은 눈이 그렇게 오는데도 기어나와 치울 생각을 안하니 좀 등신취급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몇번은 동네 사람이 치워줬으나 치워줘도 나와보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도 없으니 몇번 해준 다음에는 안해주는 거지. 뭐가 이쁘다고 해주겠어.
여하간 이집 문화는 음주, 담배, 음식. 오자마자 저녁밥(레스토랑에서 사온 멕시칸음식) 주는 아줌마, 오는 길에 사온 맥주(카드 21.53)와 아줌마가 담근 과실주를 1시까지 드링킹. 피곤해!!
둘째날 : 5월 12일
산책도 갔다 오고 자전거도 탔는데 자전거 타다 넘어짐. 이것들 다리는 왤케 기냐능. 가뜩이나 망가진 안경 더 아작 났다. 고르자는 자기보다 체력 나쁜 사람은 처음봤다며 고맙다고 했음. 쿨럭.
고르자가 한국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어서 거기에 대한 문화 설명. 왜 그렇게 비쩍 마른 걸 좋아하는지, 왜 그렇게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도 다니는지 등등=_=;; 캐백수 월드가 나와서 넝쿨째 들어온 당신인가? 그거하고 한국 뉴스를 봤다. 뉴스 본지 2년도 넘은 것 같은데 구성이 가관이었다. 1번 뉴스- 10분 넘게 여수엑스포, 두번째 뉴스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 다음이 통합진보당(원)의 삽질 그 다음이 쓴소리도 달게 듣는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 미쿡의 미사일 요격 실험 성공 및 한반도 핵배치 어쩌고 저쩌고, 다시 여수 엑스포, 벌통트럭이 고속도로에서 넘어짐, 이명박대통령 중국방문, 자외선차단 선글라스 사는 법. 내가 유럽와서 한국에 대해 설명하면서 제일 굴욕적인 순간이 이 날이었다고 말해주마. 저렇게 길게 뉴스를 하면서 단 한번도 현재 행정부가 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고 기껏 나오는 게 대통령 의전행사고 뭣땀시 엑스포 행사가 뉴스가 되서 20분이나 처틀어대고 있는지, 왜 미쿡이 한반도 핵배치에 발언권이 있는지(통수권이 없으니께. 보수당은 통수권을 받아오기 싫어한다는 말까지 해야했다. 하긴 어제 프랑크랑 이야기하면서도 한나라당 역사 : 두명의 딕테이터 배출, 소속 국회의원의 대부분의 친일파계였다는 것까지 설명해줬었다. 그리고 여전히 제일 큰 당이라는 사실을 말하다보면 진짜 뭐 저딴 나라가 있나 싶다.) 어쨌든 한국 뉴스를 보고 폴란드 뉴스를 보면서 비교했는데 12일 폴란드 메인 뉴스는 은퇴시기를 연장(현재 65세)하는 법안에 대한 것. 국회의원이 괴상한 소리하는 건 비슷하더군 ㅋ 프랑크랑도 이 이야기를 했었다. 이쪽이랑은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이야기로 나갔지.
제일 굴욕이었던 걸 꼽으라면 뉴스보다는 왜 한국-중국-일본 사람들은 서로를 싫어하냐는 거였다. 애가 중국에 여행을 다녀와서 한국애들도 거기서 만난 모양인데, 중국인은 냄새나고 더럽고 시끄럽고하는 괴상한 이유까지 다 들은 모냥. 이런 개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이유가 뭔데? 그럼 얘가 '아, 중국인은 냄새나고 더럽고 시끄러워서 미움 받을만 하구나' 할 것 같냐? 제발 헛소리는 인터넷에서만 하거나 속으로만 좀 해라. 왜 인간들이 할말이랑 못할말을 구분하고 나대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등신같은 국민감정(한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의 국민감정)을 설명하느라 역사를 다 끄집어냈잖아. 이런 걸 힘들게 설명하고 있다보면 내가 왜 그런 등신들을 위해 내 시간을 아깝게 소비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설명한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래봐야 한국인한테 한국욕하고 다닌다는 얘기밖에 더 듣냐. 씨바.
저녁으로 닭고추장볶음을 해줬다. (재료 및 와인 구입 카드 대략 40) 꽤 좋아하네. 여하간 한국 닭요리로 실패한 적은 없다. 반찬으로는 오이무침. 여기에 또 술 잔치. 이번엔 독일 및 슬로바카이 보드카가 다 나옴. 집에서 담근 호두술을 마지막으로 마셨는데, 호두술은 속이 안 좋을 때 마시면 낫는다고 한다. 그래서 술잔치 하고 마지막에 마시면 배가 안 아파서 많이 들 마시는 모냥. 만드는 법은 덜 익은 호두(말랑말랑한 상태)를 썰어서 보드카와 섞어서 햇빛에 2달간 방치. 그 뒤로 덩어리와 분리해서 술만 걸러내면 되는데 원하면 남은 호두에 설탕을 담가서 좀 놔뒀다가 그 시럽을 소스로 써도 되고, 아니면 시럽을 호두술에 넣으면 달달하니 좋아진댐.
셋째날 : 5월 13일
다른 거 안하고 한시간 반 산책하고 오늘 일정 끗. 어제 자전거 삼십분 탄거 갖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컹.
점심 지나서 무려 어제 집에서 만든 소세지와 폴란드식 순대가 와서 나도 모르게 미친듯이 먹었눼. 이럴 때 보면 내가 어딜 고길 안 먹는 인간인가 싶다. 근데 소세지가 내가 먹어본 소세지랑 맛이 완젼 다르다. 신선한 버터를 먹었을 때의 충격만큼은 아니지만 여하간 아예 다름. 저녁은 쌀국수+비빔국수소스. 이 집 사람들 차까지 동원에서 태워다주고 태워오고 아침 점심 멕여주는데 할 수 있는 게 맛없는 한식 대접 뿐이구만요. 가족이랑 있으니 다른 세대의 말을 들을 수도 있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 얻는 정보의 양이 장난 아니심. 머리 터지네.
그러고보니 폴란드는 더빙을 독특한 방식으로 한다. 한 사람이 배역에 상관없이 스크립트 전체를 '낭독'하는 게 폴란드식 더빙이다. 성우를 고용하는 것에 대한 돈문제도 있겠지만 제일 큰 거는 번역의 문제인 것 같다. 문화가 너무 다르다보니 폴란드어로 번역을 해놓으면 정말 이상하댐. 그래서 고르자도 한국 드라마를 볼 때 폴란드어 자막이 있더라도 영어자막으로 본다고 한다. 번역한 사람이 아마추어라는 걸 고려하더라도 어떤 상황과 그 상황에 어떤 말을 하는 일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냥 번역을 못했어의 수준이 아니라 그냥 먹히질 않는거지. 그러면서 무려 더빙이 잘 된(번역이 잘 된) 영화를 고르기까지 하더라능. 두개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슈렉이었다. 슈렉은 폴란드에서 더빙으로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런 상이 있다니...
애들 서례식 마지막 부분을 구경했다. 일종의 전통적인 가족행사이자 종교행사인데, 요즘에 많이 하고 대략 열살이 되기 전에 하는 것 같다. 행사가 끝나면 부모님이 애들한테 선물도 주고 하는데, 옛날에는 시계나 자전거, 초콜렛, 앨범 등 적당한 가격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인 물건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엔 컴퓨터, 스마트폰, 게임기를 줘야 한다고 한다. 컴퓨터나 게임기까지는 이해하기 싫지만 그냥 현실적으로다가 그냥 넘어가겠는데 도대체 열살짜리가 왜 스마트폰이 필요한 거냐능. 물욕에 환장한 애새끼들처럼 꼴보기 싫은게 또 있을까.
넷째날 : 5월 14일
고르사랑 남은 밥으로 볶음밥 해먹고 같이 나가서 혼자 빌빌대고 돌아다녔다. 환전(50유로->210츠로티)을 갤러리아 안에서 했는데 시내(성벽안쪽)에서 하는 게 더 잘 쳐준다. 일없이 쇼핑몰만 열심히 구경했네. (요거트 음료 약 2.50츠로티) 광장 시장에서 오카리나를 보고 충동적으로 사고 싶었으나 그걸 연주하고 다닐리가 없으므로 주제파악 빨리하고 손에서 뗐음. 착해. 체력이 저질이라 금방 지치는 건 안 착해.
고르사 친구랑 만나서 이야기 좀 했다. (맥주 음료 약 3츠로티) 폴란드 얘기 한국 얘기 그냥 사는 얘기.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나이의 애들에게 했는데 상대적으로 한국애들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한국 애들이 인생 경험이 적어서 그런가... 고르사와 다른 한류팬한테 대놓고 '왜'냐고 물어봤더니, 현실은 구질구질하나 한쿡(포함 아시아) 아이돌은 즐겁고 신나 보인단다. 그 알맹이가 그지 같은 걸 알더라도 일단 그래 보이니까 즐기는 거지. 근데 알맹이가 그지같다는 걸 계속 거부하는 거랑 그지같은 거 알지만 그래도 소비하는 거랑 뭐가 더 구린지 모르겠다. <-맹자님이 말씀하셨지. 오십보 백보라고. / 왕복차비 : 3.20*2
다섯째날 : 5월 15일
아침부터 빈대떡 부쳐먹고 다시 나감. 바벨성에서 다빈치 작품 Lady with an Ermine를 봤다. 10츠로티를 내고 정말 그거 하나만 봤다. 거참... 갤러리가 아니라 그거 하나라는 걸 안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쨌든 바벨성에서 나와 유대인 동네도 돌아다니고 홈메이드 아이스크림도 먹고(6츠로티), 물댐배도 피우고(15츠로티), 케밥도 사먹고(13츠로티), 서점에 가서 시간도 떼우고 잘 놀았다. 내가 여직까지 담배를 피우면서 목이 아프고, 구역질이 나고,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는 등의 모든 증상이 담배 안에 들어있는 화학요소 때문이라는 걸 물댐배 피우면서 알았다. 이 담배 참 놀랍소. / 왕복차비 : 3.20*2, 루블린 가는 기차 티켓 : 58
집에 와서는 고르사네 엄마가 해준 스프랑 만두 잔치. 배가 터지게 먹었네. 배가 불렀으니 덕질을 해야죠. 호스트인 고르사와 폴란드 음악과 한국 음악을 나누며 유투부의 관심 동영상을 찾아 링크 시키며, 피곤했지만, 아주 잘 놀았다.
여섯째날 : 5월 16일
아무데도 가기 싫었으나 아우슈비츠를 다녀옴. (12.40*2) 추워서 쇼핑몰에서 몸을 녹이면서 카르푸에서 일없이 화장솜 하나 사고(2츠로티) 실실 걸어서 아우슈비츠로 갔다. 3시 이후에는 가이드 없이 혼자 다닐 수 있어서 혼자 다녔음.
내가 아우슈비츠 정보를 찾으면서 제일 이상하다고 느꼈던 게 두가지 있다. 하나는 제목에 붙이는 느낌표. 이를테면 '아우슈비츠, 잔혹한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뭐 이딴 식으로 쓰는 거지. 아우슈비츠는 아무리 생각해도 느낌표를 붙일만한 공간은 아니거덩. 우리나라 역사에 끼워넣으면 좀 쉽게 이해가 가려나? '마루타! 잔혹한 역사의 흔적!' 뭐 이런 거 말이지. 저 제목이 가관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아마 글에 꼭 '정말 나치 새끼들은 나쁘다' 이딴 헛소리를 적어놔서 그런 걸거다. 나찌 새끼들이 나쁜 건 맞지. 그 새끼들이 안 나쁘다는 건 아니고, 이것도 우리 역사와 비교해 봤을 때 전쟁경험있는 주제에 20년도 안되서 베트남에 파병하고 전투병이 아니라지만 이라크에도 파병을 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그리고 그런 문제에 대해서 한번 가르치지를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별 생각없이 되는 대로 뇌까리는 부모돈으로 여행나오는 대학생 베낭여행족이 그냥 쉽게 까댈만한 이슈는 아니라고 느껴집니다요. 안 그럽습니까요? 인간들은 되게 쉽게 자기를 착한 편에 붙인다. 덧붙여 혼자 다니는데 자꾸 동선이 일본인 여행자 두명하고 겹치던데 걔네는 뭐 별생각을 하고 여기왔는지도 궁금=ㅠ= 사진 찍는 구도는 되게 구리던데... 걔들도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려나? 제목은 우리가 한 짓 나찌도 했네? 아우슈비츠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독일인 관람객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것, 곳곳에 놓여진 추모의 꽃이었다.
집에 오는 기차 잘 못 타서 크라코우 시내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감. 바보냐고. (차비 3.20) 돌아오니 고르자 엄마가 느뀌뤠한 이태리 음식을 해놔서 그거 먹고 폴란드 영화 봤는데 반 이상 내쳐잤음. 나름 재밌는 코메디 영화였는데도 낮 내내 돌아다니면서 기력을 뺐더니 피곤해서 버틸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보는 거였는데도... 어쩔 수가 없었음요ㅠ 미얀 고르자 타타(아빠).
일곱째날 : 5월 17일
루블린으로 오는 거 외에는 딱히 한 일이 없다. 고르자랑 아침 먹고, 고르자 아빠가 태워줘서 크라코우 시내까지 편하게 나와서 또 일없이 쇼핑몰에서 빌빌대고 있다가 요거트 음료 하나 사고(2.50) 기차타고 왔음. 기차를 아슬아슬하게 타서 좁게 왔다. 거 옆좌석에 있는 중딩이 옆으로 좀 움직일 생각을 안하대. 나중에 아줌마들 오니까 비켜주더만=_=
루블린의 호스트 파월이 픽업해줬다. 두 딸하고 같이 나와 있었는데 세계 어딜 가나 애새끼들 하는 짓은 비슷하고, 첫째와 둘째의 관계도 비슷하다. 그래도 첫날까지는 애들을 바라보며 썩소를 날리지 않을 수 있었음. 장하다...라고 하기엔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음.
여덟째날 : 5월 18일
파월 패밀리가 학교가고 일하는 동안 구시가지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루블린 성은 좀 웃기게 생겼다. 못 생겼다고 할 수도... 들어가서 무료 전시도 보고 성 안의 예배당(holy trinity chapel)에도 갔었음. 여긴 왜 전시실 당 입장료가 따로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가서 봤을 때는 장례실이라는 느낌이 강하던데... 그림은 또 성경에 있는 거 고대로 옮겨놨고. 역시 예배당인 듯. <-그럼 좀 찾아보든가.
오후엔 집에 와서 또 고추장 닭볶음탕을 해줬는데(재료 카드계산 약 25츠로티. 물가가!!!) 어린 것들은 맵다고 울기까지. 나는 최대한 안 맵게 해서 안 매운데다가 싱겁기까지 했는데--;; 한국음식이 맵긴 매운가?
파월은 정부기관(정확히는 유럽연합)에서 일을 하면서 귀촌을 꿈꾸는 이제 막 도시농업도 시작한, 그리고 커뮤니티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뭐 좀 비슷한 걸 하고 있는 나름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파월 부인 아가는 직업고등학교에서 폴란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젊은 부부가 굉장히 삶에 찌들어있다는 게 느껴지는데, 폴란드 사회에 대한 분노 혹은 환멸이 좀 강하다고 느껴진다. 한동안 이걸 못 봐서 그렇기도 하고 생활이 당사자가 생각하고 잇는 걸 못 따라가는 게 눈에 보여서 더 그런 것 같다. 광고 싫고, 자본주의적인 삶이 싫은데 딸년들 방에 산처럼 쌓여있는 마루인형과 곰돌이 인형을 보면 또 그냥 평범한 부모같거덩. 그래놓고 애들이 물욕이 없길 바라면 안되지 않나여. 애들이 물욕이 생기는 건 부모가 그렇게 만들어서인데 물런 사회에 저항하며 사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애들방을 그렇게 꾸며놓고 무조건 사회탓만 하면 곤란하잖아.
그렇다고 파월이 짜증이 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직 공부 많이 해야겠구나 싶기는 했다. 더군다나 자기 생각을 알아주거나 공감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나를 상대로(혹은 나를 벽으로, 스폰지로) 자기 생각을 끊임없이 쏟아내는데 애새끼 둘은 처음 본 아시안한테 인상을 심어주고 싶어서 나대지, 아저씨는 내가 10년 전에 생각하던 걸 반복하고 있으니 내가 좀 피곤했겠져. 하긴 이 엉아가 공부를 안할 것 같아서 더 피곤하긴 했다. 보통 공부를 하려면 내가 지금 부족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본인 스스로가 굉장히 계몽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아마 멀고 먼 것 같아유. 그래도 파월이 싫지 않은 이유는 그런 생각을 안하는 인간보다 하는 인간이 낫고, 어쨌든 뭐라도 하려고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뭔가를 하고 있고, 육아의 60%이상을 맡아 하기 때문입니다요. 애들이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른다. 육아방식이 어떻고 저떻고를 떠나서 일단 애아빠가 애들을 더 많이 보고 그것 때문에 일도 집에서 하는 걸로 바꿀 정도로 애들한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아홉째날 : 5월 19일
파월, 그의 두 딸, 남의 집 딸, 나. 이렇게 넷이서 오전엔 민속촌을 다녀왔고, 오후에 애들 수영대회에 가 있는 동안엔 혼자 집에 있다가 오후엔 외곽에 다녀왔다. 헬스리조트(요양원인 듯)하고 바르샤바와 루블린 사이에 있는 문화마을. (이름은 나중에 업뎃)
폴란드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거라면 자연. 뭔가 친근한 구석이 있다. 아무래도 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언덕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농지도 많지만 숲도 많고... 아, 강하고 언덕하고 같이 있는 걸 봐서 그런가? 색깔같은 건 굉장히 다르다 싶으면서도 어떤 풍경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친근해지다니 나도 참 별꼴이구먼.
어쨌든 수영대회 안 가서 다행, 밤에 집에 올때는 애들이 정말 참기 힘들었다. 중간에 빵터지지 않은 내가 자랑스럽다.
루블린->바르샤바, 바르샤바->베를린 버스티켓 샀다. (카드 25유로 이하) 바르샤바->베를린은 기차표 살걸 그랬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터리가 부어 타져서 츌혈과다로 죽으면 어쩌지.
열번째날 : 5월 20일
루블린에서 바르샤바오는데 3시간 좀 안 걸렸다. 버스역에서 센터까지 센터에서 서역까지 서역에서 카샤 집까지... 길고 긴 여행이로다.
카샤 집에 와서 카샤가 해준 밥에 닭튀김을 먹고 산책하고 돌아다니다 들어와서 쉼. 카샤한테는 딸 하나, 말 두마리, 개 한마리가 있다. 말을 그냥 풀어놓고 키우는데 @.@ 나 안 그래도 말 좋아하는데, 카샤 보고 저쪽에서 실실 걸어오는 말 두마리에 또 @.@ 아, 나도 키우고 싶다. 염통이 쫄깃해져. 딸 릴리는 아동 당뇨병. 애가 하나라 그런지 파월네 집 애들보다 상대하기 편하다. 파월네 딸애들이 파월한테 하는 것만 봐도 피곤했는데 릴리는 그런 게 없다. 뭔가 굉장히 많이 말하고 싶어하긴 한다. 릴리 할머니(카샤 엄마)까지 합세해서 막 이야기 해댈 때는 심하게 피곤하긴 하더군--;; 저녁으로 빵 뜯어먹고 놀다가 취침.
열한번째날 : 5월 21일
승마 한시간. 내 가랑이 ㅠ 그래도 말이란 건 참 멋지므로 또 타고 싶을 뿐입니다요. 말 위에 앉아있으면 시선이 달라진다.
빈둥대다 점심으로 카샤가 해준 스파게티 먹고, 간식으로 떡볶이 소스에 당면 삶아서 볶아줬더니 되게 잘 먹는다. 맛 있어서 먹는 건지 신기해서 먹는건지 잘 모르겠음. 그리고 카샤가 영어선생 노릇하는 학원 가서 청소년들을 만나 보고 이야기도 하고 했다. (이것들은 세계 어딜가나 하는 짓이 비슷하구나. 그래도 이쪽 애들이 생기가 좀 더 있는 편. 고삐리가 되면 방학도 반납하고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한다는 말에 =ㅍ=???? 이런 표정만...) 애들한테 보여줄까 싶어서 궁이랑 무한도전 몇개를 돌려봤는데 바로 덕질로 이어짐 ㅋ 그러면서 탐나는도다 캐이블판 받기 시작. 이렇게 피곤한데 덕질을 하는 나는 참 멋진 년. 어쨌든 동영상은 안 보여줬음. 어차피 집중력 3분이라 틀어줘도 못 봤을 것이다.
저녁은 카샤의 전남편 집에 가서 조지아 음식을 처묵처묵. 아시안 사람은 왠지 고기를 많이 먹을 것 같지 않아 채식으로 준비했다는 말에 급 애정 뻗... 그래도 조지아 사람이 영어 하는 건 처음 들어서 처음에는 계속 뭐? 뭐라고? 한 십분 있으니까 적응되더만. 이 적응 시간 줄이는 방법 없나.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르타.
열두번째날 : 5월 22일
마지막으로 말 한번 더 타주시고~ 허벅지 안쪽이 조금 뻐근하긴 한데 잠깐만 그런다. 익숙해졌나봐~♡ 한국 가면 승마 배워야지.
카샤 이웃에 사는 사람이랑 만났는데 (정확히는 그 딸 둘. 어제는 작은 애, 오늘은 큰 애) 둘다 아티스트 지망생. 아티스트 지망생-특히 어린 것들의 특징은 지가 벌써 아티스트인 줄 안다는 거지. 이것도 국적을 막론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음. 애들은 참으로 귀엽더군. 큰쪽은 애니메이션도 가끔 만드는 일러스트레이터 공부하는 이제 2학년. 빈에서 만났던 예술가 지망생(베로니카)이 생각나는 이유는 실력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모르는 것을 봤을 때의 반응. 베로니카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정보에 대한 수집욕도 있고 반응도 극적이다. 이 자매 가족은 예술가 가족인 것 같은데 바탕에 비해 아는 게 별로 없고, 말하는 거에 비해 실력이 별로 없...는게 아니라 나이로 보면 당연함. 여하간 자매가 모두 재밌다. 난 예술가든 예술가 지망생이든 이야기 하는 거 좋아하는 편. 뭔가 핀트가 나가있어도 일단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호스트인 카샤 어머니도 예술가. 회화를 하는데 선물을 준다길레 '헉, 왜 나한테 선물을 줘?' 하면서 봤더니 자기 작품 팜플렛 ㅋㅋㅋㅋ 진짜 빵터졌다. 첫날 만났을 때 자기 작품 계속 보여줬던 걸 생각하면 당연한거지. 재밌어, 예술가란 종족은. 물론 예술가가 되려는 종족도 재밌다.
오후엔 카샤 딸 릴리가 다니는 사립초등학교도 구겅 가고, 어제에 이어 카샤 중딩 학생들도 만났다. 사립인데 학교 자체도 작고 건물이 구려-외에는 별로 탁히 큰 인상이 없다. 리라초등학교같은 척봐도 느껴지는 엽기적인 면도 없다. 그렇게 부잣집 애들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고 하던데 말이 두 마리나 있는 아줌마 말은 적당히 걸러들어야 하죠. 장애아동이 다닌다고는 하던데 뭔가 일반학교보다 자유롭고 학생이 소수라 더 잘 돌보는 면은 있는 것 같은데 공부 위주는 아닌 모냥. 그러고보니 고르자가 사립학교가 별 특별할 것도 없다고 했었지.
그리고 오늘 중딩은 어제 고삐리보다 덜 찌들었고 더 애 티가 난다. 맑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 하여간 중고딩을 볼 때마다 내가 저때 얼마나 등신같았는지가 생각나서 걔들이 뭔 짓을 해도 그냥 헐헐 웃으면서 반응하게 된다. 나는 더 했던 것 같앙~ 이럼시롱. 실제로 내가 좀 더 하긴 했지. 잘 커라 꼬꼬마들아.
6시에 바르샤바 시내로 나와서 걸어다니다 발에 물집잡혔다. 대부분 앉아서 빈둥 거리다 밤 11시 버스 타고 베를린으로 고고고~ 컴퓨터 하고 누워자고 앉아자고 별별 포지션을 다 취하며 놀았음. 폴스키버스는 싸기도 엄청 싸고 인터넷도 되고, 젊은 층이 사용하기에 괜춘한 회사인 것 같다. 나는 이걸로 끝이다. 목이 아프다--;;
현금이 남았다. 17 츠로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