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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타인의 고통 2

1. 별이 지다.
달리 무슨 수식어가 필요한가.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하다.
그 죽음 앞에서도 루머나 흘리고 있는 자들도 그 이름은 어쩌지 못했지.
그는 그저 현대사회에서 사는데 능수능란하지 못했을 뿐이다. 
도대체 다른 사람을 그렇게 괴롭혀서 얻는 게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먹고 산다면 그게 깡패와 다를 게 뭔가.


2. 스브스의 SOS라는 프로그램.
내가 사람의 취향을 볼 때 몇가지 경계하는 아이템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저 SOS라는 프로그램이다.
SOS는 시사프로그램이 아니라 버라이어티다. 그 프로그램의 성격 자체가 그렇다. 아무런 것도 시사하지 않고, 자극을 줄 뿐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인상을 쓰며 '사람이 어떻게'라는 말만 던지고, 아무런 자각도 없이, 프로그램 내에서 해결 된 상황에 대해 마치 제가 착한 짓이라도 한 것 같은 착각만을 얻을 뿐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행동하지 않고, 감정만 소비하는.
*웃기지도 않았던 기억 중에 탑텐에 꼽히는 것. '정치엔 관심없지만 북한 인권엔 관심있는 사람과 크로싱을 봤고, 그가 영화를 보며 울었다'는 것이다. 한 문장 안에 얼마나 상치되는 사회적 단어와 의미가 많은지 그는 끝까지 모를 것이다.


3. 나는 내 감정에 공감할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정말이지 마음처럼 쓰잘데기 없는 게 없다. 정말 마음을 쓰고 있다면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정말 문제가 생겼을 때 밑도 끝도 없는 위로처럼 쓸데없는 게 없다. 어떠한 힘도 없고, 실질적으로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다.
어차피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내 고통을 모르고, 내 우울을 모르고, 내 어둠을 모른다. 공감을 원하지도 않고, 위로도 내다버려라.
내가 원하는 건 적어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을 몇몇 알고 있고, 때로는 같이 행동하기도 한다. 내가 새 친구,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런 이유겠지. 솔직히 100명 만나면 한두명 겨우 건질까 말까해서 이젠 골라내는 것도 귀찮다.
그리고 끼리끼리 논다고, 내 주변엔 이미 내 감정에 공감하는 사람 많다. (우울증 환자 천국이로세.)


4. 공허한 경악
인류의 불행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은 매혹적인 요소도 갖고 있지만 어떤 비밀스런 동의를 요구한다.
불의에 가담하는 모든 사람의 내부에 숨어 있는 사악한 마음이나 충만된 삶에 대한 증오는 너무나 커서 위기의 순간에는 내재적인 복수의 형태가 되어 자기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된다.
-계몽의 변증법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문학과 지성사


5. 인간이 얼마나 끔찍한 동물인지는 잘 알고 있다. 재차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내 유전자에 새겨져 있을 만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런 사진이나, 그런 프로그램이나, 그런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다.
무뎌지기 싫고, 그런 인간으로 남는 것이 싫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