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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내가 만화 덕후인데, 드라마는 그냥 빠이기만하고 덕후가 아닌 이유.
만화는 재미없어도 읽는다. 드라마는 재미없으면 안 본다. 아주 간단한 도식임. 덕후는 꽂혀있는 장르에 대해선 물불을 안 가린다. 그래서 요즘은 안 그러는 편이긴 하지만 일단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체크하고 보는 버릇이 있다. 다 사서 볼 수 있는 경제력은 안되니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하는 것이다. 하긴 요즘은 이것도 좀 귀찮긴 해. 그래서 (다른 덕후보다) 조금 늦게 알게 된 작가가 한명 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국내 출간 된 작품으로는 마녀, 해수의 아이, 리틀 포레스트, 영혼이 있다.
좋아 하는 만화도 많고, 재밌게 본 만화도 많고, 좋아하는 캐릭터도 좀 있는 편이지만, 작품의 세계관이 이렇게까지 나와 맞는 경우는 처음이다. 아마 영화와 드라마 내가 읽은 모든 책을 통 털어서 이 사람 나하고 동인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계관이 나와 비슷하다. 심지어는 감수성까지 조금 비슷. 물론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과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걸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만 보고 살았기에 좀 놀라울 정도로. 그리고 조금은 기쁜가? 저기에 나와 같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다... 혼자가 아니다? 글쎄, 혼자가 아닌 거에는 별 큰 감흥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 이렇게 멋지게 자기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도 굉장한 일인데 그게 나와 같은 세계라면. 어찌 슴가가 뻐렁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 그림. 장식적인 면을 배제하고 주로 펜(과 볼펜)으로만 표현하는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구현하는 자연은 단연 압도적이다. 그래서 더욱 이가라시의 작품세계는 힘이 있고 다채롭다.

세상에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 할리 없다는 생각. 인간 목숨이나 다른 생명체(동, 식물)의 것이나 그 무게가 다를 수 없다는 사실. 작품 속의 생명체, 사물에 대한 호기심, 사고와 행동의 방식. 건조한, 쿨한 척하지 않는 감수성. 거창하게 굴지 않는 표현력. 자연 순환구조에 대한 관념. 무엇보다 다른 것(타자)에 대한 이해. 언듯 '친환경주의'와 동일시 될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유사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가라시 다이스케 뿐만은 아니다. 과학에서 찾는다면 '움벨트'라는 개념. 만화 충사, 기생수. 팜 시리즈?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이쿠haiku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죄다 일본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다. 외국 쪽은 있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안 나고(근데 창작이 아니라 대부분 인류학이나 과학 계열 전문서적에서 본 것 같다), 국내에서는 거의 이런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가진 작품을 못 본 것 같다. 하긴 내가 만난 한국의 친환경주의자 역시 뭔가가 '달랐지'. 일단 내가 만난 외국의 환경주의자는 죄다 '평범한 일반인'이었는데 내가 만난 한국의 보통 사람 중에는 환경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고, 그런 상황 때문인지 한국의 환경주의자는 대다수 '인간을 위한' 환경주의자였다. 내 경우는, 나는 내 스스로 환경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주변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_-;;;

돌아온 일지매 보러 가야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작품에 대한 리뷰는 나중에.
결론은 이가라시 다이스케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 일본어 공부를 결심하다. 일본 워홀도 받을까 생각 중. <-또 오버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