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일없이 산다

마블

1.

미국에서 브리 라슨이 욕을 먹게 된 계기?는 브리 라슨이 출연도 안 했던 '시간의 주름' 프레스에 대한 코멘트 때문이었다. 시간의 주름은 흑백 혼혈 10대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영화였고 타깃도 그러했다. 근데 이 영화를 홍보하는데 온 기자의 대부분이 늘 그랬듯이 <백인, 남성, 중년>이었다. 브리 라슨은 영화의 주인공도 타깃도 그렇고 '40대 백인 남성보다 그에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으면 더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리고 전체 이야기를 쏙 빼고 기사는 '브리라슨, 40대 백인 남성 싫어함!' 이렇게 나왔다. 내가 알기론 당시엔 독자와 팬이 해당 기사에 항의를 해서 제목을 바꿨는데 이게 캡틴 마블 홍보하면서 또 나왔다. 이번엔 '브리 라슨은 40대 백인 남성이 캡틴 마블을 보길 원치 않는다'로 바꿔서. 이번엔 기사보단 트윗이나 유튜브 같은 걸로 퍼졌음. 그러다 캡틴 마블을 보이콧하고 샤잠을 돕자며 지지하는 운동을 펼쳤는데, 샤잠의 주인공인 재커리 리바이가 '누가 누굴 돕냐'며 때려 치우라고 했다. 그리고 브리 라슨은 최근에 다른 인터뷰에서 말을 좀 거칠게 했다며 사과하고 40대 백인 남성을 내쫓자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의자를 놓자는 뜻이었다고 말했음.

 

당연히 페미니스트라 미운털이 박힌 것도 있음요. 캡틴 마블 트레일러가 나왔을 땐 트레일러에서 브리 라슨이 한 번도 웃지 않는다고 컴플레인을 했고 요즘은 주로 '말을 하는 방식 맘에 안 든다'는 식이다.

미국과 한국의 브리라슨에 대한 혐오가 다른 점은 한국은 주로 2-30대가 싫어하는데, 미국은 40-50대 백인 너드가 싫어함. 이 백인 4-50대 너드는 토르 라그노라크에서 발키리에 테사 톰슨이 캐스팅됐을 때도 발키리는 백인이라며 지랄염병을 했고, 블랙팬서가 대박 나니 영화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거든? 하면서 진상을 부렸다. (피곤...)

 

 

2.

솔직히 나도 캡틴마블 기대했단 말이지. 딱히 페미니즘 영화일 거라고 생각해서 기대한 건 아니다. (여자가 폭력 쓰면서 남의 엉덩이 빵빵 차고 다니는 건 속이 아무리 시원해도 페미니즘이 아니다. 남자가 쓰든 여자가 쓰든 폭력은 폭력임.) 최근 몇 년간 여성 캐릭터 비중을 높이긴 했지만 여자 주인공을 겨우 스물한 번째 영화에 세운 걸 갖고 감지덕지할 정도의 말랑한 멘탈을 갖고 있지도 않으.

 

그럼에도 마블스튜디오가 캡틴 마블을 꽤나 밀어주긴 했거덩. (블랙팬서도 꽤나 밀어줌.) 마블 히어로 중에서 제일 쎄네 어쩌네 하는 건 관두고, 인피니티워에서 마지막에 티저를 넣은 거 봤나여. 여자가 주인공이든 아니든 그렇게 홍보하면 당연히 성공하지 이 따샤. 여튼 그래서 난 영화가 좀 잘 빠졌나 보다 생각했다.

 

제대로 된 리뷰를 쓸까 했지만 딱히 그럴 맘도 안 든다. 그렇저럭 볼만하고 그럭저럭 재밌고 그럭저럭 시간도 잘 간다. 아주 못 한 것도 없지만 장점을 생각하려고 해도 장점이 생각 안 남;;;
아이언맨1, 스파이더맨1, 가오갤1, 블랙팬서1을 기대했지만 토르 1, 퍼스트어밴져가 나왔넹. 앤트맨 1이나 닥터스트레인지 1 정도의 개성만 있어도 좋았을 텐데 이 영화는 스타일이 없음. 캐릭터의 성격이나 액션은 물론이고 미장센 색감도 그냥 무개성으로 준수함. 그나마 대사가 좀 괜찮은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근 2년 간 스파이더맨홈커밍-토르라그나로크-블랙팬서-인피니티워-앤트맨와스프로 신나게 달렸는데 갑자기 1기 수준의 영화가 나오니 내가 당황하지 않겠니. DC나 폭스마블이 이 영화를 냈다면 다른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마블이잖아.
여튼 깎아 내리지 못해 안달인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고 치켜세워줄 영화도 아님.

 

그리고 이제야 알았는데 마블 스튜디오 작가진이 대본을 겁나 잘 써서 여태 성공을 한 건 아니었다. 다 감독빨이었네요. 캡틴 마블 감독은 제임스 건, 존 왓츠, 타이카 와이티티, 라이언 쿠글러 등등 (사실상 마블의 대부분의 감독들)처럼 인디에서 바로 뽑혀 나온 남녀 한 명씩 두 명인데... 돈과 기회를 날려먹음. 왜 자기 스타일조차 살리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랬냐고 ;ㅁ; 잘 되면 얼마나 좋으냐. 루쏘 형제는 아예 회사를 차렸고, 타이카 와이티티는 이제 지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다닌다고. 제임스 건은 마블에서 잘리자마자 디씨+워너에서 집어갔어. 이거 잘했으면 인생 펴는 건데... 왜 남의 커리어를 내가 아쉬워하지--

 

근데 이건 시나리오도 그렇지만 연출이 역시 제일 문제라고 봄. 액션을 잘 찍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액션을 많이 넣은 거냐. 음악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맥락없이 넣은 건지 모르겠음. 그리고 인물이 많은 영화도 아닌데 주요 인물인 캐롤 댄버스의 친구인 램보네 가족은 그냥 서사를 위해 존재하고 소비된다. 딸네미 대사는 다 적어 놓으면 웃기지도 않을 거임. (속상) 욘-로그 캐릭터도 엉망이고. 로난이랑 콜슨은 써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넣은 거?
무엇보다 여성서사가 너무 단편적이고 직접적이고 유치하다. 90년대는 배경이지 90년대 나온 영화가 아니잖수? 그나마 캐롤 댄버스와 마리아 램보의 우정이 좀 좋은데 그건 순전히 두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지 잘 보여줘서가 아니다.

 

난 뭔가를 기대하는 일이 없어서 그 기대감이 무너진 적도 없다. 그래서 이런 기분 처음이라 황당함. 솔직히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든 부분은 처음에 스탠리를 추모하는 마블 인트로였다.

 

 

1+2

영화에 대해 떠드는 유튜브 채널을 꽤 많이 본다. (씨네마윈, 필름조이, 콜라이더, 알피지, 릴리젝트, 케빈 스미스, 뉴락스타, 슈퍼히어로뉴스, 스크린정키 등등. 진행자가 죄다 너드네 ㅋㅋ) 아무래도 필드 성격 상 30-40-50대 백인 남성 오타쿠도 많은데 내가 골라 보는 거니 의견은 다르더라도 어떤 성향은 (나와) 비슷한 경향이 있긴 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채널이 캡틴마블 이야기 할 때 굉장히 방어적인 어법을 사용한다. 이 영화가 그다지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트롤들이 착각하게끔 말을 하고 싶진 않은 거지. 나도 이딴 블로그 누가 보냐 싶지만 잘 나가고 있는 영화에 괜히 초치고 싶지 않거든. 게다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의의를 생각한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동시에 이 영화가 겁나 좋진 않지만(혹은 MCU의 최고의 영화는 아니지만) 즐길만 하긴 하다고도 하는데 이런 말은 개별히어로영화에서는 좀처럼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로 시빌워, 인피니티워가 MCU 최고의 영화냐 아니냐 하는 이야길 하지. 개별 영화 중에서 그것도 첫 영화로는 드물게 거론 되는 건 아이언맨과 블랙팬서 정도가 그런 식응로 거론 되고 앤트맨이나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경우는 아예 내려놓고 시작했음 ㅋ 

워낙 밀어주다 보니 이 영화가 겁나 좋을 거라고 착각/기대한 사람이 꽤 많았던만큼 이 영화가 개망작이길 바랐던 사람도 있어서 평론을 할 때도 조심스럽게 계속 말을 덧붙여서 하게 되는 모냥이다. (피곤2)

 

갠적으로 재밌는 현상이라 적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