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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56

 

그래서 아무것도 안하고 드라마만 보고 있다. 거의 뇌기능 정지 상태라 자연히 몸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일년 운동해도 2-3주 폐인짓 하면 몸뚱이 그냥 원래대로 돌아와버림. 놀라워라 놀라워라. 여튼 이 상태로 영상물 보기 대회 나가면 난 상위권일거얌. 드라마 하나를 보는데 17부작 기준으로 이틀 걸리고 있음. 으캬캭=_=

 

 

-김명민 때문에 드라마의 제왕

여러가지 이유로 김명민 작품은 안-못 봤기 때문에 나에게 김명민이란 배우 자체는 알게 된지 몇년 안된 배우이기도 하고, 작품도 별로 본게 없다. 다시 보기로 뭔가 보려고 해도 베토벤 바이러스, 하얀거탑은 각각 다른 이유로 일부러 안 본 거였기 때문에 지금도 땡기지 않아 안 보고, 불멸의 이순신도 그 작가가 나랑 영 안 맞아서 보기가 싫다. 영화도 딱히 땡기는 게 없어서 드라마의 제왕을 봤다.

이 드라마는 특별히 전환점이 없는데도 앞부분에선 무지하게 사건사고가 많고 뒷부분엔 그게 싹 없어지고 멜로라인만 남아서 두부분으로 확 갈린다. 멜로라인이 특별히 잘 된 것도 아니라 앞부분에서 나온 사건을 뒤로 좀 밀면 보기 편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음. 속도감이 있다고 드라마가 성공하는 건 아닌데 말입니다. 특히 마지막 3회는 진짜 좀 다른 드라마 같았다. 게다가 앤서니 병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건 뭥미'스럽게 진행된다. 뭐, 눈이 멀게 될 거라는 건 좋아. 그럴 수도 있음. 근데 의사가 괜한 희망을 줄까봐 미쿡에서 하는 임상실험 이야기를 안했다거나, 그게 기적적으로 대기명단에서 임상실험자로 올라갔다거나, 그런데 드라마 때문에 안 간 거까지는 또 이해가 가는데 그 와중에 교통사고라니=_= 도대체 사건은 더럽게 많은데 하나도 흥미진진하지가 않고, 사건이 하나씩 나올 수록 짜게 식어버린다. 그래도 보는 순간엔 그럭저럭 재밌게 볼 수 있음. 근데 보고 나면 다시 보고 싶다거나 기억에 남는다거나 하진 않는 구먼.

어쨌든 김명민 때문에 본 거니까...남들 다 하는 얘기지만 김명민은 연기를 참 잘하네효.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시간이 지났으니 그만큼 발전을 했겠지), 개과천선 쪽 연기가 더 좋음. 개천에서도 얼굴에 시멘트 바른 것 같은 1, 2회보다 기억상실 이후에 김명민 표정이 나오니까 훨 좋음. 멋있쪄 >.< 아무렇지도 않게 웃기는 것도 좋아용.

 

 

-다시 커피 프린스

연애감정 혹은 사랑에 대해서 잘 그린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커피 프린스, 인현왕후의 남자, 로맨스가 필요해 2를 꼽는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로코물이 많고 그게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다 연애를 하고, 다른 나라보다 연애 그 자체에 대해서 잘 그리는 편이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연애 '감정' 그 자체만 이렇게 후벼파면서 다루는 나라도 없다. 우리 결혼했어요도 굉장히 도식적으로 연애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을 보여주는데 드라마도 대충 그거랑 비슷하다. 호감을 갖게 되고, 스킨쉽하고, '남자' 혹은 '여자'로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뭐 대충 그런 것. 그래서 상대적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가까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대충 취미 몇개 공유하고 말기 때문에, 정서적 지적으로 공유하는 일이 거의 없음. 데이트도 도식적으로 한다. 어디서 뭘하건 내용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서 뭘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지요. 이건 실제 연애도 꽤 비슷한 현상이라 재밌는 점이 있다. 대체로 한국 사람들 연애하는 거 보면 대화가 없다. 뭔가 떠들기는 하는데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각각의 것을 떠드는 것에 가깝고 거기에 리액션을 해주는 것에 가깝다. (어쩔 때 보면 굉장히 괴상망측함.)

뭐, 어쨌든간에. 여튼 그래서 보통 연애를 엉망으로 다루는 드라마를 보면 저런 걸 대놓고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어떻게 보면 괴상망측한 이런 한국적 특징도 잘 그리면 좋다. 그런 연애 감정이 실재로 존재하긴 하는 거니꽈! 그 중에서도 커피프린스는 진짜 이 연애 감정에 대해서 '겁나 잘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요. 하나만 꼽으라면 이거임. 물론 다른 장점도 많다. 연출도 굉장히 잘했고, 촬영도 신경써서 해서 화면도 굉장히 예쁘고, 이야기도 큰 줄거리 빼고도 잔재미가 많고, 캐릭터도 주연 조연 할 것없이 잘 구축되어 있다. 이야기도 쏠려있지 않아서 뒤에 가면 재미없어진다든지 그런 것도 별로 없고. 잔 설정에서 별로 쓸데없다 싶은 것도 많은데 (여주가 독립적이려고 애쓰는 거? 아예 대놓고 '남자가 봉인가' 할 때는 실소가...=_= 애초에 재벌집 아들이랑 사귀는 설정인데 이런 대사 뭐하러 넣나)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져서 언제봐도 좋음. 난 남주가 성정체성(성지향성)을 고민하는 걸 비중있게 다룬 것도 참 좋았다. 여기에 너무 감정이입한 나머지 집에 처박혀서 좌절하고 있는데 여주가 와서 '사장님 왜 그러세요'하는 거 보고는 '저 쌍년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능. 성정체성 고민을 하는 30대 엉아한테 왜 그러냐니 ㅋㅋㅋㅋㅋㅋ 아무리 로코 여주는 필연적으로 무신경해야한다지만 이건 좀 심했어요.

여튼 한번 날려먹고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로코 1뜽인데'하며 파일을 다시 받아서 한번 쓱 훑었는데 여전히 재밌구만.

 

 

-로코가 땡겨서 주군의 태양

내가 이 드라마를 귀신이 나와서 안 봤나, SBS라 안 봤나, 그 때 드라마를 전반적으로 안 보던 때라 안 봤나. 아, 예고편이 졸라 구렸던 건 생각이 남. 여튼 재밌다. 왠지 자꾸 손이가요, 손이가. 특히 후반부에 손이가요.

대본만 놓고 보자면 최고의 사랑보다 더 좋다. 구성도 그렇고, 캐릭터도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졌음. 최사에서는 쩌리였던 여주가 주군에서는 꽤나 활동적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여주는 보통 설정만 있고 남주 캐릭터에 있는대로 휘둘리는 편인데, 이 드라마는 끝까지 여주가 이야기의 중심축에 서 있는다. 처음에 여주에 캐릭터를 부여했던 드라마도 연애를 시작하면서는 쩌리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난 이런 드라마엔 무조건 점수 2배 주고 갑니다. 다만 이런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남주가 좀 약해진다. 울 나라는 남자가 좀 터프하게 벽도 치고, 억지로 키스도 하는 거에 설레여하는 풍토라=_= 주도권을 절대적으로 남주가 갖고 있는 걸 무의식적으로 좋아하거든. 당시에는 어떤 반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고랑 비교하는 게 좀 있던데 주연 캐릭터 둘이 최사랑 비슷한 면이 대본만 봤을 때도 꽤 비슷하다. 대사도 대놓고 겹치지는 않아도 은근 비슷하고 성격도 좀 비슷함. 차승원은 거기에 캐릭터를 더 부여해서 강하게 만든 거고, 소지섭은 안 그랬고 하는 거지. 소지섭 여기서 밝게 연기하는 거 꽤 잘 어울리던데, 그렇다고 차승원처럼 테크니컬하게 오버하는 연기를 잘 할 것 같진 않다. 그걸 바라지도 않고, 소지섭은 소지섭 대로 하는 거임. 아, 남주에게 폭력적인 성향이 없었던 것이 참 좋았다. 러브라인도 최사보다 이쪽에 한표 더 주겠음. 이쪽이 더 두 사람이 연애하는 것 같으니꽈. 최사는 하나는 사람이고 하나는 그에 반응하는 게임 캐릭터 같기도 해서리.

귀신이 있어서인지 억지로 로코 특유의 막장 코드를 안 넣어도 되었고 전반부는 귀신과 관련한 에피소드 위주로 흘러간다. 후반은 주요 캐릭터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딱히 늘어지는 것 없지만, 귀신 에피가 재밌던 사람들은 후반이 재미없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드제도 이런 식임. 앞부분은 드라마 관련 에피소드 배치, 후반은 메인캐릭터 멜러. 다만 드제는 멜러라인이 망했고, 드라마 에피소드는 쓸데없이 과장되서...) 주요 사건 봉합도 그럭저럭 잘 됐다고 생각한다. 뭐 대단한 거 있는 줄 알았는데 맥빠지는 건 쓸데없이 앞부분에서 '상처있는 과거'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설정 때문인데, 그건 우리나라 드라마가 다 그래! 별 것도 아닌데 엄청 과장된 감정을 갖는 부분이 말이다. 물론 남주가 납치에 죽음을 목격했다는 건 충분이 상처겠지만, 그럼 그 상처를 일부라도 끝까지 안고 가는 설정이어야 하는데, 결말은 꼭 해피엔딩이어야 해서 다 씻어 버리니까. 15년 동안의 괴로움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버린다. 인생이 어디 그러냐.

 

어쩔 수 없이 계속 최사랑 비교를 하게 되는데, 연출이 최사보다 되게 못함. 홍자매 대본은 연출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본에 있는 코믹한 설정을 재치있게 영상화해야 하기 때문에 연출이 평이하면 재미가 확 떨어진다. 그런 재치를 제외하고라도 진짜 연출이 좀 구린데, 편집은 더 못했음 ㅠㅠ 하긴 내가 예고편을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는데 대충 '로코도 아니고, 호러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는' 드라마같긴 했었다. (예고 편집이 잘 됐으면 '로코이면서 호러이기도 한 드라마'처럼 보였을 거라능. 하긴 편집이 보통 연출이 잘 되야 잘 나오드만.) 내가 여간해선 컴플레인 안하는, 분장도 별로. 귀신 분장을 그냥 누가봐도 별 의미없이 처음엔 무섭게 성불할 때는 안 무섭게하는데다가, 그 무서운 분장도 그냥 되게 도식적임. 그리고 비서실과 사장실에 파일넣는 장이 하나도 없는 게 이상하게 계속 눈에 거슬림 ㅋㅋㅋㅋㅋ 배우 잘 생긴 건 알겠는데 망측하게 클로즈업 좀 안 했으면...

 

 

-홍자매 때문에 또 최고의 사랑

개인적으로 홍자매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 꼽으라면, 환상의 커플과 최고의 사랑. 환상의 커플은 주연 뿐 아니라 조연까지 캐릭터가 굉장히 좋다. 글씨기 교본이나 소설 작법 같은 거 보면, 조연이 주연처럼 행동하게 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각각의 조연이 독립되어 있고, 자기 이야기를 갖고 행동하는 편이다. 반면 최고의 사랑은 독고의, 독고에 의한, 독고를 위한 드라마라 독고 이외의 캐릭터는 설정만 있는 편이다. 독고 이외에 사건을 만드는 사람도 없고 해결하는 사람도 없고, 독립적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사람도 없다. 독고를 빼면 모든 게 무너져 버림. 보통 이렇게 모든 캐릭터가 하나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도는 드라마는 재미가 없는데, 이 드라마는 독고 때문에! 재미가 있다=_= 내가 본 영상물 중 최고 캐릭터 꼽으라면 독고를 꼽을 것 같을 정도. 내가 당시에 이걸 실시간을 볼 때도 엔돌핀이 뇌에서 쭉쭉 나오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봐도 독고는 정말 최고시다 ㅠㅠ 당시에 초반엔 차승원이 오바한다고 욕을 좀 먹었던 것 같은데, 나는 1회부터 독고에 미쳐있었다. 특히 고백씬-감자 이야기 하면서 협박할 때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음. 보통 시청자들의 터닝 포인트는 수염 깎고, 구애정이랑 극장에 데이트 갔다가 먼저 나가버린 구애정 찾으러 걸어나오는 씬이라고 함. 누워있는 시청자를 일으켜 세웠다는 전설의 씬임. 하긴 그 씬이 연기도 좋고, 연출도 좋았음요. 차승원 걸어나오고, 카메라는 차승원 쪽으로 들어가면서 얼굴 클로즈업하는 거. 종종 보게되는 연출-편집인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효과 만점임. 나는 궁에서 이거랑 똑같은 연출에서 정줄 놔버린 적도 있당.

 

여튼, 최사는 거론되면 독고하고 연출 이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당시에 볼때도 연출이 좋아서 과하게 핥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전반부에, 즉 촬영일정이 쫓기기 전에 촬영한 부분은 정말 좋다. 재치도 있고, 대본의 영상화가 잘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미쳐 날 뛰는 독고 캐릭터와 중심 잘 잡아주는 구애정 캐릭터가 어디에 쏠리지 않고 균형을 잘 잡아주기도 하고.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다른 로코물에 비해 남주에 대한 감정상태도 잘 보여주지 않는) 여자주인공이 그나마 매력적이게 만든 건 순전히 공효진 연기 덕분이지만.

흠, 보고 나니 커프를 제외한 세편이 남주가 죽네 사네 이러네=_= 왜 자꾸 되도 않는 죽음 설정을 넣는 거지. 좀 싫은 게, 추리물에서 범인이 싸이코패스였다!!! 하는 효과랑 비슷하다. 그 설정이 갈등을 제시하거나 하는 것보다 그냥 모든 걸 해결해 버리는 장치라고나 할까. 작가 지방생 습작 중에서도 처음에 쓴 걸 보면 이래저래 이야기 봉합이 안된다거나 해결 못할 것 같으면 캐릭터 다 죽여버리는 거랑 같음.

 

 

덧.

헐리우드에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데, 우리나라 영상물 볼 때는 감독 위주로 보는 걸 드라마 보다가 깨달았다. 하긴 우리나라에선 전반적으로 영상 작가의 비중이 적긴하다. 영상 작가가 있어도 감독에 의해 휘둘리는 경우도 많고. 그리고 감독 자질에 따라 드라마 퀄리티가 워낙 널을 뛰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기도...

 

덧2.

뭔가 외화도 보고, 영화도 보고, 다른 것도 봤는데 어떤 건 아예 기억이 안 나고, 기억 나는 건 쓸(혹은 쓰고 싶은) 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