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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 없이 산다 37

1. 피아노를 주웠다. 고물 중에서도 상고물, 나는 대충 푼돈 들여 고쳐서 대충 뚱땅댈 생각이었다. 내 피아노 수준이 대충이니까. 근데 이게 54년에 오스트리아에서 만든 피아노란다 =_= 상고물은 상고물인데 클레식이 된 고물이라는 거다. 이쁘게 닦고 꾸미면 앤틱이 되는 상고물인 것이지. 일단 고쳐 놓으면 소리도 퍽 좋단다. 하긴 좋을 수 밖에 없다. 지금 수리비로 견적 나온게 1000만원. 천 만원. 천. 10,000,000원. 들어는 봤나, 수리비에 천만원. 천만원 들여서 소리 안 좋으면 죽여버리죠 ㅋㅋㅋㅋ (솔직히 업자가 성능에 대해 뻥도 친 것 같지만.)

버려야 한다. 버리는 게 맞다. 내 주제에 안 맞는다. 근데 못 버리겠다. 내가 피아노가 '필요'하긴 하지. 기왕이면 좋은 걸 갖는 걸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보통 수준의 need와 want를 훨씬 뛰어 넘는 것이다. 조금 무리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건 정말 주제에 안 맞는 거라고. 나도 안다. 이건 버려야 한다. 버리는 게 상황에도 맞고, 내 수준에도 맞고, 무엇보다 이건 쓸데없이 욕심부리는 거다. 이걸 고쳐서 내 방에 갖다 놓는다고 해도 마음이 좋지 않을 거다. 볼 때마다 쓸데없이 욕심부린 것에 대해 후회할 거다. 피아노는 덩치가 커서 숨겨놓을 수도 없어. (왜 쇼핑 중독자들이 산 물건 숨겨놓잖아? ㅋㅋㅋㅋ)

생각해보면 나는 물욕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거였다. 그리고 대체로 한번 내가 가져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무조건 갖는 편이다. 난 중딩 때 백과사전을 싼 경력이 있다. 그게 그렇게 갖고 싶었걸랑. 그래도 그때는 동아백과사전 샀지. 브리태니커는 안 산게 아니라 못 샀지 ㅋㅋㅋㅋ 지금은 돈은 없지만 돈을 끌어올 수는 있다. 이젠 못하는 게 아니라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걸 3일을 고민했더니 잠은 못자고, 머리는 아프고, 짜증나고, 기분도 나쁘고. 이야~ 이 물욕이라는 게 사람 참 미치게 만드는구먼-하다가 이제는 될대로 되라. 이젠 생각하기가 싫다. 뭐 이 생각 뿐-_- 생각하기가 싫어! 내다 버려!

이러다 문득 악기박물관 생각이 났다. 아니 이게 왜 일주일 전에는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이러면서 바로 연락. 바로 선택하라고 종용을 해서(--;;) 박물관에서 가져가기로 했다. 무슨 기증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궈먹 듯... 근데 또 업자가 워낙 징징대니 나도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어쩔 수가 없었다. 박물관엔 미안하고 업자는 슬슬 좀 짜증이 나기 시작. (내가 물욕에 눈이 뒤집혀 있을 때는 좀 참을만 했는데, 이게 떠나가니 슬슬 뭔가 올라오는 걸! 하지만 나도 잘한 건 없으니 참는 거지!)

 

2. 태권도장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줄넘기를 한다. 2단뛰기가 죽어도 안되더라고. 그렇게 5개월을 채우자 드디어 한 개 됨. 그리고 3주가 지난 이번주에 두 번을 뛸 수 있구랴. 진짜 내 몸뚱이의 시간은 참 더디구랴.

서예 (다시) 시작 한지 5개월 만에 '마음에 드는' 글자가 나왔다. 호옥. 좀 씐나는데?

피아노는 손가락 찢기나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은 8도인데, 9도는 되야 소나타를 칠 수 있어서 열심히 찢어대고 있슴돠. 손가락 독립->양손독립하는 테크닉 수업을 듣는데, 이것도 거어어업나 느리다. 괜찮다. 그래도 재밌다.

 

태권도를 하다보면 피식피식 웃게 된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하는 꼴이 너무 웃기거덩. 서예도 피아노도 되도 않는 곳에서 실수하면 웃음이 나온다. 예전깉으면 마음대로 안되면 짜증을 낼텐데, 이제는 이런 쪽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나. 정확히는 이런 건 연습한 만큼 천천히 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바심 내지 않고 그냥 쭉~ 할 뿐이지만. 일단 하는 거 자체가 재밌다는 건(정확히는 다른 생각을 안하고 거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다. 잡생각이 안 든다.) 정말 좋은 듯. 아주 좋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