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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없이 비싼 아이슬란드

첫째날 :

쾰른으로 가서 인터넷 커뮤니티로 이름만 알던 분과 만나서 5시간 동안 떠들고 쾰른중앙역 바로 앞에 있는 거대 성당에서 비비적거리다 나도 모르게 공짜 공연을 보게 됐다. 공연 보고 공항으로 고고고. 쬐깐한게 귀여운 쾰른/본 공항. 참 싸서 좋긴한데 아이슬란드 항공은 물도 안 준다. 아흐 목 말라. 근데 도대체 몇시간째 깨어 있는 거지...하며 멍때리는 사이 현지시각 새벽 2시 반에 케플라비크 도착. 8시 반까지 공항에서 개김. 공항 인포메이숑 센터에 있는 여행 자료를 열심히 공부했으나 더럽게 비싸고, 나는 열흘밖에 시간이 없고, 아이슬란드는 남한만한 사이즈. 여행규모를 축소하고 있는 곳을 열심히 파겠습니다-라기 보다는 열심히 쉬겠습니다. 그 뒤로는 미쿡에서 온 아티스트랑 수다 퍼레이드.

피곤하기도 더럽게 피곤하고 북쪽 지방에 처음 온 게 아니라 (옐로우나이프에서 3개월 넘게 있었다. 거기는 3개월 넘게 살면 자격증 같은 거 준다. 이런 오지에서 살아남았음을 증명함. 이런 거. 하는 짓이 귀엽다.) 백야도 익숙하고... 다만 여기는 확실히 북쪽같다. 옐로우나이프보다 훠얼씬 북쪽같은 인상. 아, 인간이 침범하지 말아야 할 곳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언듯 들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 종일 블루라군에서 온천하고 밥 사먹고 샤워하고 온천하고 무료 인터넷 있어서 뉴스룸 4화 받아보고... 호옹, 며칠째 잠을 못 잔거 치고는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으헝헝. 버스가 공항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그렇게 말했다. 시내로 가는 버스 없다고) 웬걸, 기사 아저씨가 집근처까지 데려다 줌. 여기 이런 서비스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집에 와서 아이두아이두 보고, 로맨스가 필요해도 보고. 뉴스룸 한번이 아니라 두어번 더 보고 잤음.

블루라군 왕복 차비, 블루라군 입장료, 밥값... 대략 13만원 쓴 듯? 뭐랄까... 비싼 듯 싼 듯한 느낌=_= 온천의 특색으로 따지면 싼 것 같긴 하다. 차비랑 밥값이 너무 쎄서 그렇게 느껴지는 모냥. (한국에선 2만원 안 되는 런치부페 퀄리티에 4만원) 아, 공중전화 기본요금 500원 ㅋㅋㅋㅋㅋㅋ 핸드폰으로 걸었더니 20초도 통화 못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슬란드에서 공중전화로 핸드폰으로 전화 걸었을 때 30초 채우려면 천원은 있어야 함. 독일은 돈 없으면 오줌 못 누고, 아이슬란드는 돈 없으면 전화 못한다. 오줌 누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공중전화나 우편은 정부에서 최대한 싸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기본 물가가 쎈 나라라고 해도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염. 갑자기 생각났는데, 스위스에서 공중전화가 어찌나 내 돈을 드시던지... 돈이 남았는데 뱉어내질 않아요. 나쁘다.

 

둘째날 :

지난 3일 동안 못 잔거 치고는 일찍 일어났다. (8시 반) 그리고 하루 종일 치즈인더트랩 봤다. 두번 봤다. 세네번씩 본 회차도 많다.

잠깐 나가서 산책하고, 슈퍼가서 구경하고, 인포메이숑 센터를 찾아봤지만 없고. 다시 와서 또 치즈인더트랩 보고, 아이두아이두 마지막회랑 로맨스가 필요해도 봤다. 저녁은 닭도리탕. 닭, 감자 2알, 양파 2개, 마늘 5개 샀는데 2만원이 넘게 나왔다. 푸흘흘흘. 이 나라 좀 심한 것 같지 않아요? 물론 여기까지 와서 치즈인더트랩을 보고 또 보는 나도 좀 심한 것 같긴 합니다요. 이거 이제 막 보기 시작했는데 또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파고 들 것 같다.

 

셋째날 :

케플라비크->레이캬비크->란드 어쩌고 선착장->베스트만(서쪽남자)섬에 왔다. 케플라비크에서 베스트만섬으로 바로 오는 게 없드라고. 아이슬란드에서 모든 길은 레이캬비크로 통한다. 베스트만 섬음 바이킹의 섬이라나 뭐라나. 좋다 여기. 몇십년 전에 활동했고, 지금도 찾아보면 뜨뜻한 곳이 있다는 화산에 밤 열시에 노을을 등지고 올라갔다. 사람 아무도 없고 경치도 좋고 기분 참 좋더라는 말씀이돠. 여기 계속 뭉개고 있을까=_=

또 봤다. 치즈앤더트랩. 이제 감이 온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인간들이 이 작품을 보고 왜 그런 감상을 하는지, 작가의 특기가 뭔지, 작가가 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알겠다. 한 서너번 더 보면 작품이 손바닥 위에...(그래서 뭐하게? =_=;; 아오.)

웹툰이라도 글편집은 편집자가 최종 감수를 해야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이건 뭐 작품수로 승부하는 판이니. 그래도 웹툰에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댓글이다. 회당 별점이랑 댓글란이 없는 게 더 낫다. 게시판에도 회의가 들고, 이메일도 사실... 즉각적으로만 반응을 하지 생각을 안 해. 그러니까 감상, 평가, 해석이 산으로 가지. 평소에 그런 댓글 전혀 안 읽는데 스크롤 신나게 내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몇개 보게 된다. 읽지 않아도 눈에 들어와서 머리에 입력. 하긴 제일 가관이었던 건 윤태호의 이끼에 현실 정치를 되는대로 막 찍어붙이는 (지가 사회적이고 똑똑한 줄 아는 덜떨어진 놈이 쓴) 댓글이었지. 그게 또 추천을 받은 덧글이었음 ㅋㅋㅋㅋㅋ 그것도 제일 위에 올라와있어서 눈에 들어왔는데 뭔 소리를 하나 읽었다가 시간은 낭비하고 눈은 버리고 그지 같았다. 뭘 처 알고 떠들든가 말든가. 하긴 요즘은 독자 뿐 아니라 평론도 가관이긴 하다.

친구랑 이야기를 하는데, 윤태호는 작두를 타나봐~ 만화 보다가 연출이나 컷구성을 좀 보려고 다른 작품 들춰보는 경우가 있는데 몇몇 만화가, 작품은 드는 순간부터 뭐하러 그 만화를 보기 시작했는지를 까먹고 그냥 본격 작품 감상을 한다. 그 중 하나가 윤태호 작품. 너무 좋다. ㅠ

 

넷째날, 다섯째날 :

비가 와서 집구석에서 계속 계속 계속 계속 덕후질을 했다. 헐.

집 주인 아줌마는 고래 노래 소리도 들어봤다고 한다. 나도 듣고 싶다. 고래 노래 부르는 거 ㅠㅠ 나도 듣고 싶어요 ㅠㅠㅠ

동네 쪼만한 아쿠아리움에 가서 바닥에 퍼져있는 생선 구경. 내가 사람이 아니라 다른 걸로 태어났다면 나무늘보나 저 게으른 생선으로 태어났을 것 같음. 이상은 고래나 나무지만 말입니다?

 

여섯째날 :

섬의 서남쪽을 죽도록 걸어다니다가 말이 앉아있는 걸 봤다. 말이 앉아있는 거 첨봤다. 신기해!! 이 놈들(아이슬란드 말)은 달리는 것도 되게 희얀한데, 앞다리는 뛰고 뒷다리는 걷는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뛴당께. 그리고 다른 말처럼 등이 들썩이지 않기 때문에 말 탈 때 맥주잔을 들고 있어도 넘치지를 않는다고 한다. 신기한 놈들이 귀엽기까지!!

 

일곱째날, 여덟째날, 아홉째날 :

이동없음. 섬에서 계속 머물렀다. 낮에 잠깐 산책하고 멍때리며 경치 구경하다가 프린지 보고, 웹툰(신과 함께 등) 보고, 할 일 까먹고 멍때리고... 영혼이 외출을 하셨음. 원래도 감히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데 요즘 그게 더 심해진 것 같단 말이지.

아놔 그나저나 아이슬란드 물가는 왜이렇게 비싼 거냐능. 경제쇼크 오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뒤로 이모양 이꼴이 됐다고 한다. 경제정책 중요하지요. 하하하. 아, 아이슬란드 테레비 되게 재미없음--;;

 

아이슬란드는 전반적인 느낌이 '아, 괜히 왔다'. 침범하지 말아야 할 곳에 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뭘 여기까지 꾸역꾸역 와서 쓰레기 더하고 가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냥 해변가에 앉아있다가 보면 모를까 배타고 따라다니면서 고래 구경할 생각도 없고, 괜히 빙하구경 가서 스틱구멍이나 만들 생각도 없긴 했었다. 그런데도 요상하게 떨떠름하고 죄책감이 든다. 불편해!! 뉴질랜드도 깨끗하고 대자연이지만 그런 느낌이 안 든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사는 곳 같거덩. 근데 여긴 뭔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열째날 :

베스트만 아일랜드 -> 란드 어쩌고 선착장 -> 레이캬비크 -> 케플라비크 -> 쾰른 -> 쾰른에 얼굴만 아는 사람 (첫째날 만난 사람) 집에서 역시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성향이나 성격, 출신이 무의식중에 말투나 태도에서 드러난다는 게 보고 있으면 재밌긴 한데 참 무섭다. 아오, 내가 어렸을 때 선생님들이 날 뭘로 봤겠어 ㄷㄷㄷㄷ 아니, 뭘로 봤는지가 내눈에 보인다아아아;;;; 아오, 쪽팔려.

 

최근 20대 초중반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대차이인가... 생각하는 게 우리 또래랑 많이 다르다고 느꼈는데, 어제 떠들다 보니 이게 세대차이인지 계급차이인지 모르겠다. 20대 초중반 밖에 안됐는데 돈에 연연하는 것도 그렇고 (가난해본적이 없는데 가난을 무서워하는 것도 좀 독특하다고 느낀다. 아니 사실 들어보면 하나도 안 가난했는데 다들 한번쯤 가난했었댐.) 간판에 연연하는 것도 재밌다. (난 왜 여기까지 나와서 쓸데없이 고학력자를 만나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간판에 연연하는 고학력자라니. 님 쫌...) 사실 이 사람들이랑 나이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한세대가 지날만큼도 아니다. 기껏해야 10년.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이랑 나의 제일 큰 차이는 계급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도시빈민에 공고 나온 여잔데 상대방은 가난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른데다가 석박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세대차이인가? 했던 게 아니라 계급차이에서 오는 게 더 클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